프라이머 권도균 대표 인터뷰
길지않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처음을 장식했다는 것은 용기있는 시도다. 그런 의미에서 프라이머의 족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라이머는 인터넷 벤처 1세대가 주축이 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환경을 조성하고 후배 창업가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자 2010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프라이머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서비스, 마케팅, 경영 등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는 것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인큐베이터가 창업자에게 맡기는 형태인 반면에 프라이머는 비즈니스 모델을 같이 만드는 공동창업자의 역할을 한다.
더불어 프라이머 엔턴십(Enternship) 프로그램은 예비 창업가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고자 프라이머 파트너들이 직접 교육, 멘토링 하는 코스웨어 프로그램이다. 엔턴십에 참여한 팀은 프라이머로부터 투자를 투자 받고 인큐베이팅되어 본격적인 사업화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를통해 번개장터, 위트스튜디오, 데일리호텔, 텔레톡비, 온오프믹스, 스타일쉐어, 마이리얼트립 등 스타트업이 성장해왔다. 각설하고.
2010년 프라이머를 설립해 스타트업 발굴 및 성장에 매진하고 있는 권도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자.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고가며 업무를 보고있다. 한국에서는 프라이머 팀 멘토링과 강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데, 미국에서의 일상은 어떤가?
미국에서의 생활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보통 오후 3~4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이메일 체크하고, 6~7시 쯤에 운동을 한 뒤 저녁 먹고 오후 9~10시부터 스카이프로 멘토링을 시작해 새벽 2~3시까지 이어진다. 아침에는 느지막하게 10시쯤 일어나고, 낮에는 좀 여유있게 보낸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내년 여름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로 알고 있다.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는 없다. 올해 큰 딸이 대학진학을 했고, 내년 여름에는 둘째가 대학에 입학한다. 아이들이 기숙사로 가기에 주 거주지역을 한국으로 옮기는 것 뿐이다. 내년이면 미국생활 7년이다.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있고, 프라이머 업무 때문에라도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봤다.
한국에서는 인큐베이터이자 멘토 역할을 하고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는 어떻게 자녀교육을 하나? 혹여 부친의 영향으로 창업에 관심이 있거나 하지 않나?
가정교육은 여느 집과 다른 게 없다. 아이들이 창업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견이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져주는 거다. 청소년기 때 부모가 아이에게 자존심을 세우면 관계가 깨진다. 부모가 져주면 아이가 나중에 깨닫고 돌아온다. 그때 잘 받아주면 좋은 관계가 지속되는 거다.
아이 기르는 것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이 비슷하다. 인큐베이팅 팀 중 일부는 사업에 대해 조금 알만하면 우리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그런데 2 ~ 3년 혼자 하다가 잘 안될때 다시 찾아오곤 한다. 그때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도움을 주면 관계가 오래간다. 프라이머 시즌1에 참가했던 스타트업 중 후속투자를 받아 시집보냈던 팀 중 일부도 근래 다시만나 현재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하고 있다.
지난 6년 간 현지에서 실리콘밸리를 봐 왔을텐데,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어떤 것이 다르다고 보나?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엔젤투자 같은 구조는 실리콘밸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수준 또한 근접해 있다. 다만 규모가 다르고, 정부지원이 많다는 것이 다른점이겠다.
정부지원을 받으려는 창업자들 중 상당수가 절차와 과정을 번잡해한다.
공공부문에서 형식과 절차는 필요하다. 정부지원을 받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초기 스타트업에 정부지원이 많은 반면에 실리콘밸리는 순전히 펀드레이징을 통해서 사업을 진행해야한다.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는 펀드레이징이 더 클거다.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국내 환경이 더 좋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정부지원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스타트업 본연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주의해야 한다.
늦은 질문이긴 하지만,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이나 엑셀러레이션이 생소했던 2010년에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이유가 뭔가?
처음에는 대안학교를 생각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부재되어 있지만, 필요하다고 본 것이 사고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길게 볼 때 제대로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훌룡한 인생을 산다고 믿었고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 ‘사고하는 힘’을 가진 인재가 된다. 그런 인재는 사업을 해도 잘 할 거다. 리더라는 것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런 리더의 역량은 영어단어 하나 더 안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사고하는 훈련이 된 사람, 겸손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지인의 대안학교에서 경영고문을 하는 등 참여해 봤는데, 대안학교가 사업보다 더 힘들더라. 회사는 고객만 만족시키면 모든 이해당사자의 관계가 정렬이 된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게 안 되더라. 내 능력밖에 있다고 판단했다.
대안학교와는 별개로 엑싯(Exit : 회사가 성장해서 매각되거나 상장되는 것)이 결정되는 날 자금의 일부를 후배 창업자에게 환원한다고 전 직원에게 공표했었다. 원래는 운영에는 관여 안하고 펀드로만 투자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살펴보니 투자만으로는 부족했다. 경영을 잘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그거라고 판단했다. 백지상태인 초기단계 창업자에게 경영을 가르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말이다.
당시 실리콘밸리에 Y콤비네이터와 테크스타 등이 떠오를 시기였다. 그래서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고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다만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션 모델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터가 창업자에게 맡기는 형태인데 반해, 프라이머는 공동창업자처럼 투자 팀과 함께한다.
왜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하나? 어느정도 셋팅이 된 팀이 수월할텐데.
백지상태의 창업자가 가르치기도 쉽고 더 빠른길이라 봤다. 리스크가있다고 해도 이러한 프라이머의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거다. 더불어 그들과 함께 성장하려 한다.
경영은 백지상태라 해도 사업가로서의 덕목이나 자질은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하려는 사업분야, 제품에 대한 인사이트가 가장 중요하다. 그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창업가의 재산이다. 이러한 인사이트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창업자가 해야하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의 분야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노하우와 인사이트가 있다면 그것이 창업가의 본질이다. 투자나 사업에 대한 전문가는 의미가 없다. 그로스해킹이니 펀딩이니 하는 것은 나중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
그간 만났던 초기 창업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가장 부족하다 여겼던 점도 그것이다. 얄팍한 지식만 가지고 창업에 뛰어든 이들이 많다. 책 몇 권 읽은 정도로는 부족하다.
반대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본질은 무엇이라 보나?
단순하다. ‘좋은 팀을 발굴하고 투자하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프라이머의 방향이기도 하다.
프라이머 7기 팀인 미티영은 1인 법인이다. 다수의 VC가 1인 창업자에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음에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1인 기업에 대해 별 다른 차이를 두지 않는다. 팀 창업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팀창업이 시너지나 나면 좋겠지만 관계에서 잡음이 생기면 오히려 1인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팀창업을 선호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본다. 이런 경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본 룰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본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팀은 내부에서 의견이 달라도 일에서는 협력을 잘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게 잘 안된다. 공동창업자끼리 의견이 다르면 쉽게 와해되는 사례가 있다. 이런경우 팀 창업이 사실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혼자서 하기에 부족하면 직원을 뽑으면 된다.
여담이지만, 미티영 김병철 대표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개발자 출신이지만 마케팅 감각,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다. 지금도 좋은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더 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으로 본다.
프라이머의 투자 기준은 무엇인가?
프라이머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 프라이머 파트너들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좋다고 판단되면 투자한다.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합리적 기준이라는 틀에 우리를 가둘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단 투자는 프라이머 파트너가 만장일치로 동의할 때 진행한다. 객관적 기준을 만들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바대로 가는게 맞다고 봤다. 그게 프라이머의 투자 기준이라면 기준이다. 다만 시즌마다 파트너 성향에 따라 포트폴리오 방향이 조금씩 다르다. 다음 시즌(시즌4)에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프라이머의 성공 기준은 기존 VC 기준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 VC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찾는데 반해, 우리는 유니콘이 아니어도 투자한다. 규모가 큰 기업보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우리기준에서 성공한 기업이다. 직원 5명이라 해도 10~20년 가는 기업의 싹이 보인다면 투자한다.
만장일치가 안될 경우 파트너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경우는 없나?
나는 그런 사례가 없지만, 파트너들이 별도로 투자한 경우가 있다. 이번 시즌 주요 멘토인 이기하 대표가 프라이머와 인연이 안 됬던 미래식당과 맵씨에 투자했다.
7기 엔턴십 팀을 모집해 두 달 가량 인큐베이팅을 진행중이다. 졸업팀에게는 전원 투자라는 조건도 있었고. 현재 진행사항을 알려달라.
프라이머 올해 투자 규모를 밝힐 수 있나?
총규모는 20억이다. 평균 5천만 원에서 1억 사이다. 지분율은 10~20%사이다.
VC입장에서 올해 하반기 투자 트렌드가 어떻게 흐를것으로 보나?
VC마다 의견이 다를거다. 사견을 전제로 이야기 하자면, 앞으로 2~3년 정도는 모바일 쪽이다. 특히 세탁특공대나 원모먼트와 같은 O2O쪽에 투자가 많아질거라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모바일과 소셜이 연동된 형태의 사업이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고와 멘토링, 강연 내용을 엮어 첫 책(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을 냈다.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글의 방향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객관적 자료조사 차원이었다면 보다 수월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 생각을 정리해 기술한 것이라 부담스러웠다. 벌거벗고 무대 위로 올라간 기분이 든다. 내용도 3/4은 새로썼다.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저술했나?
우선 (예비)창업자가 첫 번째 타깃이다. 그 다음이 직장인이다. 이제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없어졌지 않나.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해야한다. 창업할 때가 되서 고민하면 늦다고 본다.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회사의 대표가 어떤 마음가짐, 어떤 시야를 갖고 업무에 임하는지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은 언제 창업하는 것이 좋다고 보나?
자신 위에 고수가 없고,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할 때가 아닐까 싶다. 창업의 시기가 도래했는데 본인이 최고가 아니라면 베스트인 사람을 공동 대표로 해서 창업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아이템없이 창업의지만 가지고 나오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아이템이 없을 때는 하던일을 하면서 내공과 아이템이 생길때까지 버티는게 좋겠다.
개인적으로 직장인들에게 스텔스모드 창업을 권한다. 회사 일 충분히 잘 하면서도창업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것이 부족한지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알기위해 회사생활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겠나.
책에서 대학에서 창업 과정을 필수과정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어떤 의미인가?
현재 우리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사회에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 수영관련 교본만 잔뜩 읽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얕은 수영장에서 연습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나. 대학에서 창업과정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은, 수영장에서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창업교육이 창업외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거라고 보나?
지식과 지혜를 예로들어 보자. 어떤 상황에 맞딱뜨릴 때 지식이 도움은 되겠지만, 지식대로 딱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지혜에서 나온다. 지혜는 현실감각이 필요하다. 현실감각은 이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길러진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잘 된 의사결정이 사회와 사람에게 호응을 얻었을 때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물 중에 하나가 창업이라고 본다. 창업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현실감각을 반영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창업을 통해 얻어진 경험으로 얻어진 지혜와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 가치에 대한 안목은 창업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직군, 분야에서 일을 할지라도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틀이 될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은 지식을 배울뿐 지혜의 틀을 못 배우는 구조다. 그래서 더욱 창업교육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창업과정을 전공필수, 혹은 교양필수로 가르친다면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될거라 본다. 굳이 창업을 안 하더라도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본다. 무슨일을 해도 두 가지 이상의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창업을 해본 사람은 달의 뒷면을 본 사람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영역을 본 사람인 것이다. 이렇듯 창업은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과정이다. 창업을 해본 이와 안 해본 이는 같은 사안이라 해도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수의 창업자들이 권도균 대표를 만나고 싶어한다. 관련해 메일이나 메시지를 많이 받고있다고 들었다. 프라이머 팀이 아니라면 어떻게 연락을 해야하나?
메일이 많이 오긴 하는데, 거의 대부분은 인터넷 서치만 하면 나오는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하는 답장이 ‘회사 사이트 FAQ를 읽어보라’는 거다. 나 뿐만아니라 다른 VC도 마찬가지일거다. 해당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액세스(access) 절차나 방법이 다 나와있다.
아무래도 평상시에는 프라이머 팀들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기에 외부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2011년부터 진행중인 ‘창업가들과의 저녁식사‘와 같은 네트워킹 행사 때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놓는다. 더불어 디캠프나 마루180 등에서 진행하는 멘토링 데이, 대학생 창업세미나도 좋다. 자신만을 특별하게 대해주길 바라지 않는다면 해당 행사를 적극 활용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