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렌탈 및 판매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오픈갤러리를 처음 인지한 것은 지난해 여름 오피스 이전을 한 어느 기업 사무실에 걸려있던 그림들을 보면서부터다. 유니크한 섹터를 하고 있어 인상에 남았었다.
오픈갤러리는 국내 유망 작가의 그림(미술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렌탈 또는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화랑과 옥션 등 기존 판매 채널이 갖는 제한성을 렌탈과 온라인 방식으로 풀어 가격과 접근 장벽을 낮춰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동시에 유망 작가의 작품 판매 활로를 여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수요가 있는 대중을 타깃으로 렌탈 운영과 판매 중개를 통해 작가에게 경제적 수익과 마케팅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오픈갤러리에 등록된 등록 작가는 250여 명이며 작품은 약 4,000여 점이 준비되어 있다.
한편 오픈갤러리는 올해 10월 LB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억 투자유치를 했다. LB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주요 포인트는 중저가 미술품 거래 시장의 성장성, 작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렌탈 플랫폼으로서 사업 확장 가능성 크다는 점, 한국의 그림시장의 규모가 다른 OECD 국가대비 낮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특히 컨설턴트 출신 박의규 대표를 비롯해 서울대 미술관 출신 홍지혜(미술 담당 임원), 삼성전자 출신 고두이(IT담당임원) 등 미술전문가와 IT전문가로 구성된 탄탄한 팀 구성도 투자유치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후문이다.
오픈갤러리를 이끄는 박의규 대표를 만나봤다.
본인 소개 및 회사소개를 해달라.
오픈갤러리의 대표를 맡고있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커리어의 시작은 경영 전략과 관련된 일(*박대표는 부즈알렌 컨설턴트 출신이다)을 했다. 오픈갤러리는 미술품 플랫폼이다. 기존 갤러리들은 주로 고가의 그림을 유통한다. 비싼걸 팔아야 수익이 많이 남는 구조라서 수천만원 상당의 비싼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사람들이 그림을 구매하거나 소비하기 어렵다. 오픈갤러리는 일반인들을 위한 채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술품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 양쪽 다 니즈가 있지만, 공급자는 팔 곳이 없고, 수요자는 살 곳을 잘 모른다. 당장 신혼집에 그림 한 점 걸려고 해도 어디서 사야할지 뭘 사야할지 알 수 없다. 포털조차도 그림을 구매하게 만들어주는 인프라는 딱히 없다.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좋은 제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작가들의 유통 채널이 마땅치 않은거다. 대중과 작가군 사이를 연결해주는 시장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오픈갤러리를 시작하게 됐다.
창업 이전 경력은 컨설턴트였다. 언제부터 미술품에 관심이 있었나?
관심을 가진지는 오래됐다. 대학교 때 친구의 전시를 보러 인사동 갤러리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갤러리에는 사람이 없는 거다. 좋은 작품과 대중의 접점이 없었던 거다. 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창업을 고민할 때 다시 그 생각이 났다.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초기 팀 셋팅은 어떻게 했나?
창업 초기에는 아파트 독서실에서 계속 사업 계획서 쓰면서 6개월 정도 혼자 했다. 그 과정에서 지인들에게 VC규모로 엔젤투자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법인을 만든뒤 팀 셋팅을 했다. 초기 팀원은 직간접적으로 아는 지인들이다. 현재는 스무 명이 미술과 IT, 비즈니스팀으로 구분되어 함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없던 시장을 만들고 있는 과정이다. 될 거라고 확신했나?
처음부터 확신한 것은 아니다. 되게 만들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관련 분야 인터뷰를 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건 직관적으로 알았다. 인터뷰이들 다수가 그림은 사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미술을 즐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미술품의 가치를 좀 더 알면 사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역으로 말하면, 그 가치를 알게 해주는 기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살 거라고 봤다. 그게 렌탈이라는 형태였고, 계속 개선해 나가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하진 않았지만, 대중 입장에서 고민과 고민을 하다 확신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통계 자료를 보면 작가(화가) 40%가 월 소득이 100만이 안 된다고 한다. 기존 산업 구조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국내에서는 미술이 재테크 수단이자 소유의 개념으로 변질됐다. 1%의 작가의 예술품을 1%의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 구조 속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작가들도 많다. 슬픈일이잖나. 또 돈 많은 사람 뿐만 아니라 대중 역시 자신의 집에 멋진 그림을 걸고 싶어한다. 우리는 많은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시장 구조 속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 오픈갤러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생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1%라고 말하는 작가 중에 최근에 등장한 이는 거의 없다. 모두 다 이전 세대의 작가들이다. 그들 이후에 길이 막혀있는 것이다. 작품은 본질적인 퀄리티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식시키는 역할(마케팅) 역시 중요하다. 역사가 누적되면서 특별한 계기나 에피소드로 유명해진 작가들이 있지만, 지금까지 전문적으로 화가와 작품을 알리는 활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업체도 별로 없었다. 시스템화, 체계화되지도 않았고.
각 분야마다 유명한 사람 50명 인지하고 있을거다. 하지만 미술계로 한정지으면 아는 이가 몇 없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스포츠는 구단이 있고, 음악은 악단이 있고, 엔터테인먼트는 기획사가 있지만, 미술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없었다. 우리 팀은 시작부터 그런 채널이 되려 했다. 더불어 해외 진출도 하고 있다.
연예 기획사처럼 국내 작가들을 위한 에이전시나 채널 역할을 한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는 렌탈 사업 뿐 아니라 그림의 판매, 미술 작품에 대한 교육, 전시와 협찬 등을 통한 아트 마케팅까지 하고 있다. 앞으로 속도를 내서 저변을 더 확대해나갈 것이다.
작가들은 어떻게 발굴하나.
팀 내 큐레이터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 출신이다. 주로 그들이 의견을 주고, 그걸 팀 내에서 논의해 작가를 모신다. 사실 우리나라에 신진 작가 아닌 이들이 거의 없다. 아주 유명한 몇 분 빼놓고는 거진 다 신진 작가다. 거꾸로 중견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려울거다. 실제로 우리 작가들 중에 50,60대도 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해오신 분들이다.
지금 집중하고 있는 렌탈 서비스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자. 오픈갤러리 렌탈 서비스의 주 고객층은 누구인가.
법인과 개인 고객으로 나눌 수 있다. 법인의 경우 회사, 카페, 헤어숍, 병원 등 다양하다. 공간을 소비하는 사업 분야에서 수요가 크다. 일례로 네이버 사옥에도 우리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다.
개인의 경우 여성 고객이 많다. 여유가 있는 상류 계층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10호짜리 그림을 하나 대여하면 한 달에 39,000원이다. 하루 천 원꼴이기에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다. 주 고객 평균 연령은 높은 편이지만, 20대 고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우리 서비스를 찾고있다.
큐레이터가 직접 방문해 공간에 맞는 그림을 추천해주고 설치까지 해준다. 고객의 연령층이나 직업군에 따라 추천하는 그림 스타일이 달라지나?
우리는 각 개인의 취향이나 연령대, 직업군을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작품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IT 업계라면 팝아트 그림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팝아트의 특징이 자유분방함, 상상력 등이기 때문이다. 의사 직업군은 풍경화를 좋아한다. 항상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색채에 민감하고, 탁 트인 것들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물론 100%는 아니다. 다만, 분야별로 니즈가 다른것은 있다.
작가와 수익은 어떻게 나누고 있나.
합리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고 있다. 작품을 픽업해서 설치하고, 다시 회수하기까지는 손이 많이가는 작업은 모두 오픈갤러리가 맡고 있다. 작가는 오픈 갤러리와 미술 작품 대여 계약만 하면 별도로 할 일은 없다. 작품의 재고상황을 모두 전산화했기 때문에 작품의 렌탈 현황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작품 렌탈도, 판매 과정도 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작가와의 합리적인 수익 배분 방식 접점을 지금도 찾고있다. (자료 조사에 의하면 기존 갤러리의 경우 작품 판매 시 최대 70%까지를 수수료로 징수하고 있다.)
오픈갤러리는 없다고 해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서비스는 아니다. 시장이 얼마나 커질 수 있을 거라고 보나.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모든 상품은 감성재와 기능재로 나뉜다. 예를 들어 요트는 감성재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해 요트를 사지는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감성재적 성격만 있을 때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성재와 기능재 성격이 혼재된 것의 경우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가방으로 예를 들어보자. 명품 가방은 확실히 감성재다. 하지만 동시에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재이기도 하다.
그림 렌탈 서비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미술 작품을 장식의 의미로 구매하는 경우 기능재와 감성재적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하지만 동시에 특정한 공간에서 그림 액자는 기능재적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규모가 더 클 거라고 본다.
10월 LB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억 투자를 유치했다. IT 서비스에 투자가 집중되어 있는 벤처업계이기에 의외라는 시선도 있었다.
IT 서비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확실히 앱을 만드는 IT 중심 서비스는 아니다. 하지만 IT는 우리 서비스에도 중요한 수단이다. 현재 오픈갤러리 내 모든 오퍼레이션 관리와 고객 데이터 관리 서비스 등이 IT 기술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 비즈니스에서는 O2O 못지않게 IT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투자 유치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운 좋게 올해에는 여러 벤처투자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결과적으로 잘 끝났다. 작년의 경우 좀 사정이 어려웠다. 미술품 렌탈 사업이라는 것이 해외에도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생소한 분야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영국 등에서 갓 생겨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사업이나 투자 유치를 진행할 때에도 사업성을 증명할 선례를 보여주기 힘들었다. 창업 초기만 해도 90%가 안 된다고 했던 사업이기도 했고.
미술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결과가 안좋았다. 투자자들이 오픈갤러리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뭐라고 보나?
일단 우리 팀이 성과를 내는 속도가 빨랐다. 유의미한 수치를 보여줄 수 있었기에 우리가 구현시켜나갈 미래상이 어필되었다고 본다. 초기에 엔젤투자를 했던 지인들이 “이제 와서야 말하지만, 처음 사업한다고 했을 때 망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뭔가 될 것 같다”고 하더라.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도 돕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 작품에 대한 해외의 수요는 얼마나 있다고 보나.
넷플릭스에서 워쇼스키 감독이 제작한 <센스8>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를 찍을 때 한국 작품들을 협찬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컨택이 먼저 왔다. 전해 들은 바로 워쇼스키 감독이 당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칭찬했다고 하더라.
한국의 신진 작가 작품을 사려는 니즈는 분명히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시장이 척박한 편이다. 중국 미술 시장이 10조, 글로벌 전체 시장은 80조나 된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맨파워는 글로벌 상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스포츠, 야구도 해외 시장이 점점 열리고 있지 않나.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해외 어느 지역에 먼저 진출할 예정인가.
영어권, 중화권 등 기회 닿는 데로 시도할 것이다. 작가들이 우리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대중 역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그다음으로 보는 미션이 작가의 해외 진출을 돕는 거다. 팀 역량도 충분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하기 힘들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성장시켜나가면서도,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예술을 통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개인적으로 사업하게 된 동기 중 하나가, 사람에게 직업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생계의 수단을 선물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픈갤러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 활동의 터전, 예술을 통한 즐거움, 일자리를 제공하려 한다.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