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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Mar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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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찾고 있나요?


▲ 영화 <소울> 스틸컷 속 주인공 조 가드너,출처: 디즈니&픽사

인생의 불꽃을 찾아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오차 없이 계획된 격자 모양의 도시 블록. 먹음직스러운 피자 가게와 저 멀리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 ‘호호만두’도 보여요. 이곳은 바로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주인공 ‘조 가드너’는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죠.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는데요. 그가 선망하는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재즈 밴드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지나치게 들뜬 마음이 문제였던 걸까요? 그는 첫 공연을 앞두고 거리를 거닐던 중, 열려있는 맨홀을 보지 못한 채 그 아래로 떨어지고 말아요. 정신을 차렸을 때 발견한 건, 사후세계로 향하는 길 위에 서 있는 파란 영혼이 된 자신이었다고!


▲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는 조(왼쪽)와 22(오른쪽),출처: 네이버 영화


영혼이 된 조는 사후세계인 ‘머나먼 저세상’을 피해 ‘태어나기 전 세상’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곳은 영혼들이 지구에 태어나기 전, 성격을 형성하는 공간이죠. 여러 경험을 통해 인격을 형성한 영혼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불꽃을 찾으면 지구 통행증을 얻어 지구에 탄생할 수 있게 돼요.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간절했던 조는 영혼 ‘22’의 멘토가 되어 함께 그의 불꽃을 찾기로 결심하죠. 하지만 22의 불꽃은 쉽게 찾을 수 없었어요.


그 이유는 그들 모두 어떻게 불꽃을 찾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 인생의 목적도, 마음을 뜨겁게 하는 열정도 정답이 아니었죠. 그러던 어느 날, 22는 지구에 있는 조의 몸으로 들어가 하루를 살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만난 일련의 경험들이 22의 불꽃이 되어 나타나요. 단지 하늘을 보고, 길을 걷고, 맛있는 피자와 빵을 먹었을 뿐인데 말이죠. 이를 통해 조 역시 ‘인생의 목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불꽃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드디어 불꽃을 찾게 된 22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런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숫자라는 게 특이한데요?

▲ 영화 <소울> 스틸컷 속 ‘22’,출처: 디즈니&픽사

이제 새로운 걸 해보자!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는 영혼들은 모두 숫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그곳에 도착한 순서가 곧 자신의 이름이 되기 때문에, ‘1082억 1012만 1415번’이라는 엄청난 이름의 영혼도 등장하죠. 그런 와중에 ‘22’의 낮은 숫자는 그가 얼마나 오래된 영혼인지 짐작하게 해요.


영화 <소울>을 제작한 픽사 스튜디오는 플로터들에게도 익숙할 텐데요. 픽사는 작품 속에 다양한 이스터에그*를 숨겨놓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한 영혼 22의 이름에도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했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픽사가 이전까지 만든 작품이 총 22개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해요. 이 작품은 이전 픽사 애니메이션과의 차별점을 갖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거든요!


*이스터에그(Easter Egg) : 영화나 책 등에 숨겨진 메시지를 뜻하는 말로, 부활절을 기념해 색을 칠한 사탕과 달걀이 담긴 바구니를 숨겨놓는 풍습에서 유래됨.

영화 <소울>이 기존의 픽사 애니메이션과 구분되는 독특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주인공 조 가드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조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례적인 중년의 나이로 등장해요. 뿐만 아니라 그는 픽사 최초의 흑인 주인공이라고!


▲ 마블 최초의 흑인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 <블랙 팬서>,출처: 네이버 영화


이는 현재 영화계에서 PC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어요. 문화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왔던 유색인종과 여성, 그 외 사회적 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건 이러한 움직임의 영향인 셈이죠. 마블의 <블랙 팬서>가 흑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아프리카 문화권을 영화에 담고, 디즈니가 <인어공주>의 실사화 과정에서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도 그 예라고.


*PC주의 :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뜻하는 단어의 약자로, 백인과 남성 중심의 문화를 벗어나 평등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뜻함.

이런 사회적 움직임이 영화계에 있었다니 흥미롭네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이 흑인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면서요?


▲ 영화 <소울> 속 도로테아 윌리엄스,출처: 네이버 영화

‘재즈스럽게’ 가볼까?


맞아요! 그건 이 영화가 ‘재즈’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 : 재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여기를 클릭해보세요!) 재즈는 흑인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장르인데요. 이에 따라 영화 <소울>의 감독 피트 닥터는 영화의 주제를 재즈로 선정한 뒤, 고민의 여지 없이 흑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대요. 조가 자주 가는 이발소,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양복점, 그가 동경하는 밴드에 흑인 인물들을 등장시킨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이러한 설정이 정해진 후, 흑인 문화를 오류 없이 전달하기 위해 공동 연출가인 캠프 파워스를 포함해 다수의 아프리카 문화권 출신의 제작진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영화의 제목인 ‘소울’은 영혼 22와 영혼이 된 조라는 주인공을 묘사한 단어일 뿐 아니라, ‘재즈 본래의 정신’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소울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1950년대 무렵, 당시의 재즈가 기교나 편곡을 지나치게 중시했던 점을 비판하고, 본래의 재즈에 담긴 즉흥성과 생기발랄함을 중시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죠. 도로테아의 밴드에 합류하기 전 오디션에서 조가 악보 없이 멋진 연주를 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 <소울>의 연출가 캠프 파워스는 인생이 즉흥연주와 같다는 점에서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완벽한 비유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재즈와 소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군요! 이 영화 알면 알수록 깊은 뜻이 담겨있네요! 


▲ 영화 <소울>의 감독 피트 닥터,출처: cine21

인생의 목적을 이루었더니…


이 영화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스러움’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감독인 피트 닥터의 자전적인 경험이 영향을 미쳤어요. 그는 8살 때부터 애니메이션에 매력을 느끼고,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종종 사로잡히곤 했대요. 그가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한 뒤 제작에 참여한 <몬스터 주식회사>와 <업>, <인사이드 아웃> 등은 많은 사람이 수작으로 꼽는 작품들이죠. 하지만 이런 그도 슬럼프는 피할 수 없었어요. 


피트 닥터는 영화만 완성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생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영화 제작을 마친 그에게 다가온 것은 기쁨이 아닌 거대한 상실감이었죠. 영화 <소울>은 그가 경험한 상실 이후, 제대로 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서 시작했어요. 영화에서 ‘22’의 지구 통행권으로 지구로 돌아온 조는 꿈에 그리던 밴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허무함과 실망감에 흠뻑 젖고 말죠. 이는 수차례의 수상 이후 이유 모를 허탈감을 느꼈던 피트 감독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거라고.


상실감을 짙게 느낀 피트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 영화 <소울> 스틸컷 속 떨어지는 꽃잎을 잡는 순간,출처: 디즈니&픽사

지구에 있는 당신을 위해


피트 감독은 항상 소박하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그가 연출했던 영화 <업>에는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이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죠. 이러한 그의 신념은 <소울>에서도 이어지고 있어요. 갖가지 노력을 해도 피어나지 않았던 22의 불꽃은, 조에게는 너무도 당연해서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모습을 통해 찾을 수 있도록 묘사됐죠.


영화 <소울>은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은 영화인데요. 개봉 당시,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태가 심각해 극장을 운영하지 못했거든요. 같은 시기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이전까지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상실하게 됐죠.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영화 <소울>은 삶의 목적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이제 막 지구에 태어날 준비를 마친 22의 순수한 시선, 그리고 맨홀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조의 시선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것 같지 않나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개봉된 작품인 만큼 일상의 소중함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삶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야겠어요!


▲ 영화 <소울> 엔딩 크레딧에 적힌 유 세미나 졸업생들(Recent You Seminar Graduates), 출처: 디즈니&픽사

유 세미나 졸업을 축하해!

플로터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꼼꼼하게 보는 편인가요? 아니라면, 앞으로 픽사 영화의 크레딧은 유심히 살펴보는 걸 추천할게요! 여기에는 귀여운 축하 메시지가 숨겨져 있거든요. 픽사는 매 영화의 제작 기간 동안 태어난 직원들의 아이를 크레딧에 적어둔다고 해요. 이름하여 프로덕션 베이비들! 영화 <소울>에서는 극 중 ‘태어나기 전 세상’의 별칭인 유 세미나의 이름을 따서 ‘유 세미나 졸업생’이라고 소개했다는데. 어떤 이름의 아이들이 지구 통행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면, 영화 <소울>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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