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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sonAbility Sep 28. 2020

변호사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2020. 9. 28.
-법이란게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라
매 수업시간 진도를 마치고 나머지 10~20분은 학생들에게 질문받는 시간으로 할애하고 있다.

-지난주 수업시간, '저작권법은 공식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해석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는 어느 학생의 말을 듣고 나의 눌언이 조금이나마 통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

-이제 4주차이지만 실무가 출신 교수의 장점을 살려 저작권법을 강의할 때 실제 소송에서 법원이 저작권 침해여부를 판단하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그 시각에서 법리에 따라 문제되는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배운 법리에 더해 나름의 해석을 도출할지언정 더이상 앞뒤 다 자르고 기계처럼 저작권 침해다/아니다라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변호사의 무료상담/유료상담을 가르는 기준은 '해석'이 필요한지 여부이다.
모든 경우에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교통사고 처리방법 같이 법적 대응방법이나 공소시효나 처벌수위 등 단순한 법률지식을 요하는 건 무료상담으로 해결될 수 있다. 반면 사안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가장 흔히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이러저러하게 다른 사람 사진(혹은 음악이나 영상)을 사용하려 하는데 저작권 침해인가요?' 다.
하지만 자판기 커피 뽑듯이 그 질문 하나로 바로 예/아니오 답변이 나오는게 아니다.

-전후 사정을 파악해서 법리적 해석을 해야하는데 저런 질문을 받으면 변호사는 바로 '무슨 사진인데요? 어떻게, 얼마나 사용할건데요?' 를 물어보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당사자는 '별로 안돼요~아주 조금요' 라고 가치섞인 대답을 하곤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안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마련이고, 대개 답은 자신이 이미 정해놓고 변호사에겐 자신의 답이 맞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게 보통의 심리이기 때문에
변호사는 '아주 조금, 약간'이라는 불명확한 대답에 휘둘리지 않고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책임있는 답변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결국 변호사는 일단 원저작물이 무엇인지, 저작물성은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사용 범위나 방법은 어떻게 되는지, 이용하는 부분이 전체 저작물에서 차지하는 범위나 의미 등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다 보고 들어 파악을 해야하는데 이는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젊은 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낸 것이다.
숫자를 공식에 대입하듯 계산식만 알면 답을 도출해낼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돼요/안돼요, 맞다/안맞다로 단숨에 대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 오늘도 무료 자판기 커피가 되고 있는 변호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판기커피는동전이라도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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