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윙크의사 Sep 01. 2023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

넌 양 쪽 눈을 잃어갈 때 무섭지 않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 재혁은, 나의 한쪽 어깨와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한쪽 눈만 보이는 나는, 혹시나 걸음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며, 우리가 향하는 방향과 땅바닥을 번갈아 살피느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앞을 보면서도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나와 달리, 친구는 시각 외의 다양한 감각에 의지한 채 한껏 여유롭고 능숙하게 걷는다. 친구가 한쪽 눈씩 차례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내내 마음속에 머물렀던 질문이 떠오른다.


혹시나 실례일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왠지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기에 그랬다. 나는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한쪽 눈을 잃고 남은 반대쪽 눈 마저 잃어가고 있을 때, 두렵지 않았느냐고.’


친구는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두렵지 않았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오히려 빨리 실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예 빛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그 삶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머지 한쪽 눈을 잃을까 두려웠던, 그리하여 앞을 보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매달렸던 나의 과거를 떠올린다. 부끄러웠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 삶에 주어진 것이 앞을 볼 수 없는 운명이라면, 빠르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막상 해보니 할 만했다 말하고,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넘친다.


정상인보다 더 풍요롭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며 깨닫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임을. 그리고 마음먹기 나름인 것을.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운명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매거진의 이전글 내 예쁜 눈동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