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다음은 어떤 외국어를 공부할지 선택 기로에 서 있던 한 후배의 이야기다. 대학교 4학년이던 당시 나는 이미 영어, 일본어를 편안하게 활용하고 있었고, 중국어를 추가로 공부하고 있었다.
'형, 일본어랑 중국어 중 뭘 공부하는 게 좋을까요?'
'뭐가 좋을 것 같애?' 내가 대답했다.
'글쎄요..제가 일본어 초급도 수강했고 공부하고 있기는 한데, 일본 경제가 요즘 안 좋잖아요..일본어를 공부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중국이 경제도 성장하고 있으니, 중국어를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후배는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나에게 확신을 다지기 위해 질문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중국어를 공부하라'고 말했다. 더 길게 토론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외국어를 공부할지 선택하는 기준이 경제 논리로만 치장된 사실이 다소 안타까웠다. 경제 논리로만 본다면 중국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유창한 중국어 실력자도 많아질텐데, 공대생이 취미로 중국어를 공부해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도 중국이 핫해서 중국어 공부한다는 지인이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해봐야 조선족보다 한중 언어를 잘할 수 있겠냐. 오히려 사업 본질에 더 충실하고, 조선족을 통역으로 모시는 게 어떠냐'라고 진담반농담반 조언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외국어를 시작할지 선택할 때, 얄팍한 계산에 앞서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학습자가 일본, 중국 또는 그 외 특정 나라의 문화와 정서적 교감을 느끼고 있는지 여부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궁합을 보는 것과도 같다. 외국어도 사람도 궁합이 맞아야 오래 함께 갈 수 있다. 그대가 대륙의 장구한 역사와 웅장한 질감에 존중심을 갖는다면 중국어를 공부하면 좋겠다. 그대가 조용하고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개성과 독특함이 넘치는 문화에 취할 준비가 되었다면 일본어를 공부해도 좋다. 그대가 쌈바의 열정과 구릿빛 향흥에 환상을 갖는다면 스페인어를 공부하면 좋겠다. 그대가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는 상식적인 소통력을 갖고 싶다면 영어에 보다 집중해도 좋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서 좋은 것이다. 우리는 느낌 좋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직관은 계산을 리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제논리를 앞세워 외국어를 선택하겠다면, 한 가지 기억할 사항이 있다. 사회에는 이미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이미 유행을 탄 외국어 실력자들이 넘쳐 흐른다.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돋보이기 어렵다. 어중간한 실력은 가까운 미래에 기계에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어, 인니어, 힌두어, 아랍어 등 아직 유행을 덜 탄 외국어를 공부하면 그 희소성 자체만으로도 기회가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다. 길을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에게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보라. 별로 신기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 그 외국인이 아랍인이라면 아랍어로 말을 걸어보라. 베트남인이라면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보라. 그 사람은 당신을 자기 나라로 초대하고 싶어 할 만큼 친근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외국어학습은 '생존'이 아닌 '삶'을 지향해야 한다. 학습자 스스로 즐겁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외국어를 공부할지 고민 중이라면 지금까지 읽었던 책, 보았던 영화, 들었던 음악, 만났던 사람 중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지는 순간을 되뇌어보자. 그런 게 없다면 한국어로 보다 폭넓은 독서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보자. 그러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고, 왜 거기여야 하는지.
어떤 외국어를 선택할지는 그 경험이 알려 줄 터.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좋아했다.
독일에 가본 건 아니지만, 독일어를 공부하면 독일이라는 나라의 풍미가 느껴졌다. 당시 나는 이과생이라 제 2 외국어가 내신과 수능에 주는 영향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공부가 너무나도 즐거워 자발적으로 교재를 읽고, 쓰고, 외웠다. 당시에는 교재가 다양하지 않아 책 한 권을 두세 번 반복해서 보았다. 독일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술술척척 반응하는 나를 보고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았어?'하며 신기해할 정도였다. 당시 부산에서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외국어 말하기 대회가 매년 개최되었었는데, 나는 모교 학생으로선 이과생 최초로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독일어로 할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다.
'Danke Schoen.' -감사합니다.
'Ich liebe dich.' -사랑합니다.
'Woher kommen Sie?' -어디서 오셨나요?
'Wie heisst du?' -이름이 뭔가요?
발음과 문장이 맞기나 한건지. 그 또한 확실치 않다.
이후 독일은 두 번 방문했다. 2006년에 컨티키(Contiki Holidays)라는 여행사 인턴을 위해 한 번, 그리고 2010년 인천시 세계환경회의 준비를 위해 한 번. 두 방문 모두 독일어 대화는 전혀 시도하지 못했다. 고마울 때 '당케쉔'만 연발했을 뿐. 이후엔 모조리 영어 대화였다. 한때 독일어 공부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건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고 말았다. 미안하다. 나의 잃어버린 시간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외국어통역 자원봉사를 했었다. 하지만 수능시험만 잘 봤을 뿐 실제 소통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바닥은 곧 드러났다. 결국 배치받은 역할은 주차장 안내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직진하세요~!' 정도면 충분했다. 누가 복잡한 설명을 요구해오면 허둥지둥 피하기 일쑤였다.
외국어학습은 '생존'이 아닌 '삶'을 지향해야 한다
외국어학습은 학교에서 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 아닌 지구촌에서 삶을 즐기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대학 시절 나는 그간의 아쉬움을 반성하며 독자적인 외국어 학습법을 개발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제대로 성취할 수 있는 방법. 토익, 토플 공부를 하거나 스터디 모임을 다니거나 또는 유학을 다녀오는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경제학자가 말했다.
“사람이 변하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환경’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가장 무의미한 행위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다.”
우선 외국어 공부를 위해 만나는 사람, 그들에게 배분하는 시간, 그리고 그들을 만나는 장소를 달리하자.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결정이 있었다.
01. 만나는 사람: 드라마, 애니메이션 속 외국인
- 한국인과 그룹 스터디는 않는다. 하향평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02. 시간과 장소: 걸을 때, 지하철, 버스 이용 시 그리고 기숙사 방
- 그리고 해우소 뿌쌰뿌쌰 중..
- 토익/토플 학원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
월드컵 직후 군입대한 나는 병장을 달자 일본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월드컵 자원봉사 당시 쓰라린 경험을 곱씹으며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실제 말하고 쓰는 공부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마침 가수 보아는 매우 좋은 자극제였다. 당시 일본 진출을 시작한 보아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던 터라 야간 근무를 나갈 때마다 보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본어의 풍미를 익혔다. 이후 자연스럽게 일본 엔카, 우타다히카루, 아무로 나미에 등 일본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게 되었다. 학습 순서로 말하자면 무작정 들리는 대로 따라해보는 게 첫째고, 의미를 이해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리고 매일 반복해 들으며 들리는 대로의 느낌을 통째로 외운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일본어 어휘와 표현이 나의 언어체계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재패니메이션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같은 방법으로 영어,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해보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프랑스어를 익히기 시작했고, 인도여행을 할 때는 같은 원칙을 적용해서 힌두어와 소수민족 언어인 라다크어를 익혔다. 대원칙은 간단하다.
좋아하는 컨텐츠로,
매일 매일, 소리내어 연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일상은 이 원칙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져있다. 토익 시험문제는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똑같은 시험을 위해 똑같은 문장을 강요받는다. 그것은 문장의 폭력과 다르지 않다. 시험 점수가 나온 후에는 공부를 멈추기 때문에 매일 매일 공부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문장으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학습 동기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문을 읽고 정답을 찍기에 급급하므로 소리 내어 읽는 습관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이렇게 공부해서는 소통의 힘이 자라지 못한다.
우리는 집요하고 지독하게
잘 말하고, 잘 쓰는 학습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실제 나의 외국어 현장을..엿들어볼 수 있게 공개해드리고자한다.
영어의 경우 최근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와 유러피언드림(European Dream)을 원서로 읽으며 독서노트를 기록하고 있다. 영어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지만(-_-), 여전히 종종 낯선 어휘를 접하고 있으며,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역시 공부에 끝은 없다. 그리고 독서 중 특별한 통찰이라 생각되는 부분이 등장하면 반드시 큰소리로 소리 내어서 한두 번 더 읽어보고 지나가는 게 원칙이다. 원어민과 대화를 할 때 혹시, 무의식으로라도 해당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채워지지 않는 쫀득쫀득한 실전 회화는 미드로 충족한다. 요즘은 하우스오브카드(House of Cards)에 푹 빠져있다.미국 정치인들의 수사와 화법을 배우고 싶은 내면의 욕망일까. 드라마를 보는 방법은 일본어 공부를 예로 알려드리겠다.
https://www.evernote.com/l/AEBOcBmzw8pC_pvVquRLWrtqWFkntZFoTO8
https://www.evernote.com/l/AEBDXMQkdMlDxqyw0rm-Zn03zfkXpUVGLwo
일본어 공부의 경우 유튜브를 가장 많이 활용한다. 많은 방송 채널을 구독하고 있지만 특히 요즘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님처럼 프레젠테이션을 한 번 해보는 게 목표라 그것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LVUnwG1dg&index=41&list=LLZ3vWvJ-AlW9tBfm6T7PgrA
헌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점은 그냥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우고 싶은 마음이 크니 반복해서 보는 건 기본이고, 일어나서 몸짓과 표정까지 흉내 내려 애쓰며 본다. 나아가 문장을 곱씹기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본다.
https://plipradio.com/items/1187655787619551175
중간중간에 회장님의 소리가 멈추는 것은 키보드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된다. 한번 더 누르면 재생되고^^
중국어는 공부를 시작하던 초창기에 동영상 소스를 구하기가 어려워 무작정 책을 사서 읽었다. (성조도 안되면서...ㅠㅠ) 한때, 마오쩌뚱의 공산당어록을 원서로 읽다가 중국어 공부를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즘은 드라마도 종종 찾아보고, 영어나 일본어에 비해 아직 뭔가(?) 모르겠는(?) 중국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기위해 일반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중국어 공부에는 시간 배분을 많이 하고 있어 걸을 때나, 지하철, 버스, 해우소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중 가장 심취해있는 서비스는 차이나탄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 차이나탄 중 4인 4색 중국이야기 편은 가장 흥미롭다. 4인은 중국의 중앙, 남북 발음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며 에피소드별로 약 10분 정도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 토론한다.
우리가 중국의 대세! 90년대생
세계를 흔드는 큰손! 중국 온라인 쇼핑족
중국인들의 화끈한 연애관!
다정다감 중국 남자, 집안일까지 해준다?!
중국 10대 미녀 도시 이야기
중국에서 정계 지도자가 되려면?
등등
이것은 휴대폰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학습법은 일본어와 동일하다. 예를 들면..
https://plipradio.com/story/1187665285813897163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6년 목표는 스페인어 공부 시작! & 중급 수준 진입!!이다. 그렇다. 쌈바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작년 말부터 카우치서핑이라는 서비스로 집에 외국인 손님들을 많이 받다 보니, 그들의 국가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문화에 대한 호기심 또한 증폭된다. 중국어 기초를 처음에 잡아두지 않아서 고통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며(영어는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받다 보니 자연스레 잡혔고, 일본어는 어순이 동일해 별달리 잡을 기초가...없었던 듯), 스페인어는 아예 기초 첫걸음부터 구매했다! 공부 방법은 책 순서를 따라가지 않고, 제공되는 음성 자료와 회화를 일단 처음부터 딸딸딸딸 듣고 큰소리로 따라해보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외국어 공부법 '거의' 전부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천재가 아니냐며 말할 때가 있는데,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조금이나마 다르게 한 것이 있다면 나는 지난 15년 동안 아래 문장을 꾸준히 지켜왔다는 점 뿐일 것이다.
좋아하는 컨텐츠로,
매일 매일, 소리내어 연습한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노력을 특별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