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우려를 기대와 환호로 바꾼 시연 빌드
2024 지스타에서 펄어비스는 기대작인 붉은 사막을 공개, 시연했다. 얼마 전 열렸던 게임스컴에서도 공개되긴 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붉은 사막이 이번 지스타 참여가 반가웠다. 이미 대중적으로 공개된 정보들도 많지만, 시연을 직접 참여했을 때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정보들도 많았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시연 장면을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 글로만 설명하는 점 양해를 구한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최적화였다. 붉은 사막의 트레일러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트레일러 영상에서마저 느껴지는 버벅거림(프레임 드랍)으로 많은 우려가 있었다. 특히나 그 시기는 사이버펑크 2077이 절망적인 최적화로 인해 게이머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긴 지 얼마 안 된 터라, 붉은 사막에 대한 게이머들의 우려와 의심은 커져만 갔다.
이번 시연에서 보여준 붉은 사막의 빌드는 최적화가 안정된 모습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게임에서 벌어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프레임 드랍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가지 상황에 집중해 보자. 1) 보스와 화려한 이팩트의 기술을 동시에 쓰는 경우. 2) 여러 몬스터가 나와 동시에 이팩트가 있는 기술을 쓰는 경우. 연산이 많아지고 프레임 드랍으로 이어지기 쉬운 장면이지만, 붉은 사막의 시연 빌드에서는 프레임 드랍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발적화로 기본도 안되었다고 욕먹는 게임들이 많은데, 붉은 사막은 기본을 갖춘 채, 자신의 개성을 쌓아 올리는 느낌이었다.
직관성은 게임에서 유저의 초반 이탈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흔히 떠도는 말이 있다. 이 게임 20시간만 해보면 정말 재밌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대작 게임이 분기별로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자신에게 맞는지도 모르는 게임에 20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으로 유저의 초반 이탈을 막아야 한다. 붉은 사막은 직관적인 게임이다. 스토리와 조작법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직관적이라고 느꼈다.
시연 빌드는 전투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초반 10분 정도(시연 시간은 30분)를 배경을 설명하는데 소모한다. 이 과정을 굉장히 잘 풀었다고 생각했다. 시네마틱 보여주거나 텍스트 위주의 배경 설명이 아닌 전투 튜토리얼과 함께 제공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인 클리프의 대략적인 캐릭터성과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뒤에 어떤 일이 이어지는지 궁금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스토리의 직관성은 그동안 펄어비스가 보여줬던 게임들의 스토리텔링 기법과 다르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초반부 한정으로). 텍스트 위주의 스토리 진행이었던 C9과 검은 사막과 달리 상호작용을 하며 배워가는 스토리는 몰입감을 주고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어려운 단어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단어들을 덜어내고 이야기를 풀어간 것 역시 붉은 사막의 스토리를 직관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붉은 사막의 전투는 꽤나 직관적이다. 첫째로 키 매핑이 직관적이다. 기본적인 전투에 사용되는 키 맵핑 (공격, 방어, 패링, 화살)은 소울 라이크 장르에서 따온 듯했다. 소울 라이크에 익숙한 유저들은 기본적인 조작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듯하다. 전투 기술 (스킬)에 사용되는 키 맵핑은 액션 게임, 혹은 격투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을 차용했다.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눌러 커맨드를 실행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격투 게임에서 보이는 키 등록 순서에 따라 커맨드가 달라지는 복잡한 조작은 지양하고 최대한 동시에 키를 눌러 조작하는 형식을 취했다. 기본적인 조작과 전투 기술이 합쳐져 화려한 전투를 선보일 수 있다.
전투 메커니즘 역시 직관적이다. 시연 빌드에서는 각 보스 별로 어떤 전투 기술을 사용하면 좋은지 추천해 준다. 적의 패턴에 따라 유리한 전투 기술이 있고, 이를 사용하면 쉽게 전투를 풀어갈 수 있다. 피하고, 구르고, 때린다 라는 기본 구조에서 상대의 기술에 맞추어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전투 기술을 넣어 명확한 연습의 방향성을 제공해 준다. 적의 패턴에 익숙해지고, 카운터 기술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지면 전투에서 승리한다.
대작 게임들의 공통점은 직관적이지만 엄청난 컨텐츠의 깊이를 자랑했다는 것이다. 위쳐3를 예로 들어보자. 파악하기 쉬운 게임이지만 컨텐츠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했다. 메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서브 스토리, 읽을거리에 영혼을 갈아 넣은 느낌이다. 직관성으로 유저의 초반 이탈을 막는 데 성공했다면, 이 유저를 계속 안착시킬 수 있는지는 깊이가 결정한다. 붉은 사막은 시연 빌드 기준으로는 전투 측면에서는 깊이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연 빌드 기준으로 다양한 전투 기술을 조합해서 화려한 전투를 만드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조작 외에 다양한 전투 기술을 제공한다. 긴 시전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기술 (강공격 느낌의 슬래쉬 기술), 카운터 류의 기술 (카운터, 패리, 반사), 스타일리시한 기술 (넥 브레이커, 발차기, 지정타)와 같이 개성이 뚜렷한 기술들이 있다. 이 기술들을 조합해서 스타일리시한 전투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숙련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종류가 좀 되지만, 이런 기술을 모두 알아야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신규 유저들의 진입 장벽으로 작동할 것 같진 않다. 전투 기술들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한 전투를 만들기 위해 실력을 깎아내는 유저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시연에서 보여준 정보를 보면, 중심이 되는 스토리는 걱정되지 않는다. 각 보스들이 들려주는 서사도 너무 흥미로웠고, 위쳐3가 생각나는 대사들이었다. 그저 때려눕혀야 하는 상대가 아닌 캐릭터성이 살아있는 보스로 느껴진다. 이 게임이 완벽해지기 위해선 서브스토리와 이에 관련된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쳐3가 전설적인 게임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서브 퀘스트에 연관된 인물들에 개성적이고 다면적인 캐릭터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붉은 사막이 명작 반열에 올라갈지에 이 부분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래 예상해 본다.
붉은 사막은 첫 공개부터 엄청난 대작이라는 기대를 받아왔다. 공개 후 개발되면서 다양한 대작들이 나왔고, 대작인 줄 알았던 졸작들도 많이 나왔다. 이런 결과물들을 보면서 붉은 사막에 대한 게임 유저들의 우려와 걱정이 많았기도 했다. 하지만 2024 지스타에서 공개된 붉은 사막의 시연은 이런 우려와 걱정을 기대와 환호로 다시 바꾸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잘해서 제2의 위쳐3가 아닌 '붉은 사막'이라는 대표 명사가 돼주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