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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YER SYSY Apr 13. 2022

클라이밍은 재미있는 게임이다.

클라이밍에서 찾아낸 좋은 게임의 조건

들어가는 말


최근 클라이밍 열풍이 대단하다. 젊은 남녀, 특히 대학생과 직장인 초년생 사이에 클라이밍은 ‘인싸’ 스포츠로 여겨지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실내 암벽을 등반하는 클라이밍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취미로 즐기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클라이밍이 종목으로 채택된 2018년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대중적인 취미 운동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클라이밍은 단기간에 주류 스포츠가 될 수 있었을까? 다른 운동과 구분되는 클라이밍만의 특징이 있을까?



클라이밍은 문제를 푸는 놀이다


신기하게 클라이밍은 운동을 넘어 ‘놀이’의 느낌이 든다. 클라이밍에 놀이의 느낌을 부여하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문제와 풀이’라는 요소가 클라이밍을 놀이 같은 운동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운동은 주어진 것이다. 기구를 사용해 근력을 키우는 피트니스, 주어진 산에 올라가는 등산처럼 주어진 것을 사용한다. 이때 이 주어진 것은 어떠한 의도가 없이 주어진 것이다. 무거운 바벨에는 의도가 없다. 등산로에 배치된 돌 하나하나 역시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기에 운동을 하는 것이다.


" 어서 와, 클라이밍은 처음이지?"

이와 달리 클라이밍의 홀드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의도가 담겨 있다니 홀드가 살아있기라도 한 걸까? 클라이밍 암벽을 기획하는 기획자는 홀드의 모양과 배치에 의도를 넣는다. 이동이 불가능해 보이도록 홀드를 배치하지만, 노력을 통해 할 수 있는 코스를 구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코스는 어떤 기술을 사용하면 더 편하게 갈 수 있게, 저 코스의 홀드는 팔의 힘이 아닌 손가락의 악력을 이용하도록 세팅을 한다. 즉 클라이밍의 홀드에는 기획자의 의도가 담겨있고,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은 기획자의 의도를 간파하며 코스를 올라간다. 이러한 양상은 마치 퍼즐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내면, 유저는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며 퍼즐을 풀어간다. 클라이밍은 퍼즐이 접목된 운동과 같기에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수학은 풀기 싫은데?


사람들이 문제 풀이를 그렇게 재밌어한다고? 만약 사람이 문제 풀이를 즐기는 존재라면 왜 수학은 그렇게도 싫어하는 걸까? 문제를 주고 풀게 하는 클라이밍처럼 수학도 주어진 문제를 기술을 활용해 풀어내는 행위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수학 문제 푸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이 문제 풀이를 좋아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 수학을 싫어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하다. 수학은 싫어하는데 클라이밍은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종목의 차이점은 풀이 방법에서 발생한다. 수학은 그동안 배운 공식과 법칙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간다. 공식과 법칙이 기억나지 않거나 적용 방법을 정확하게 모르면 풀이는 거기서 멈춘다. 스킬이 없으면 진행되지 않고 거기서 멈춰 야만 하는 것이다. 클라이밍 역시 다양한 기술과 이론이 존재하며 이것들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온다. 그런데 클라이밍은 설령 기술과 이론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기술을 모르면 힘을 더 쓰면 된다. 힘이 없으면 유연성을 활용하면 된다. 이처럼 클라이밍은 의지만 있다면 풀이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문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풀이 방법으로 풀어가는 ‘능동적 통제’가 가능하다.



공포와 스릴 사이


클라이밍과 수학의 차이점은 풀이 방법 외에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재미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위험과 목표'의 직관성이다. 클라이밍은 위험과 목표가 명확하다. 여러 가지 선택을 내릴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내리면 체력이 빠르게 소진된다. 잘못된 선택이 누적되어 체력이 고갈되면 벽에서 떨어지는 최후를 맞이한다. 마치 게임 오버와 같이 말이다. 보상 또한 명확하다. 목표 지점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문제를 해결했다는 쾌감을 줄 수 있다.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하며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만들어진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없다. 문제를 못 푼다 해서 뚜렷한 위험이 가해지지 않는다. 그저 점수가 낮아질 뿐이다. 직접적으로 신체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낮추는 방식은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보상은 명확할까? 정답을 맞힌다면 쾌감은 있을 것이다. 정답을 맞힌다는 조건이 붙는다. 즉 풀이 자체만으로는 뚜렷한 보상을 얻지 못한다. 풀이 ‘과정’은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문제를 풀어야 할 목표도, 위험도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수학 문제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것으로 다가온다.



게임에서도 찾아보자


클라이밍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든 ‘능동적 통제’‘위험과 목표’는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능동적 통제’부터 살펴보자. 젤다 야생의 숨결에서 플레이어는 주어진 퍼즐을 풀어야 한다. 필드에는 퍼즐을 풀 수 있는 힌트를 주지만 꼭 그러한 방식으로 퍼즐을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풀어내면, 게임은 그것을 인정해주고 보상을 제공한다. 젤다의 이러한 문제 풀이 방식은 큰 호평을 받으며 많은 게임이 오마주를 해갔다. 이런 문제 풀이 방식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다.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제공하고,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든 자유롭게 만들어 플레이어가 스스로 상황을 해결하고 있다는 능동적 통제를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크소울의 전투 방식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진다. 플레이어는 여러 가지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정면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패링을 사용할 수도, 구르기를 통해 적의 공격을 회피할 수도, 이마저도 어려우면 때리고 도망가는 ‘때튀’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전략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사용하며 플레이어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절대로 필수로 요구하는 기술은 없으며 전략은 직관적이다. 이 역시 많은 게임사가 오마주 했지만, 핵심을 빠뜨린 채 어려운 난이도만 가져간 경우가 대다수이다. 다크소울 시리즈의 핵심은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다. 어려운 난이도 속에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가며 상황을 점점 능동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위험과 목표라는 측면도 마찬가지로 인기 게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뚜렷한 위험이 없다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신이 되어 돌아다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물론 신의 역할을 하는 게임이라면 다르겠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제한이 필요하며 그 제한은 생명의 제한과 같은 위험일 때 흥미를 느끼게 된다. 간혹 전투가 과도하게 간단하거나 적이 너무나 약한 게임들이 존재한다. 혹은 시간 때우기 용 수집 콘텐츠를 끼워 넣어 위험 없는 이동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게임들을 하고 있으면 ‘내가 죽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지루함이 몰려온다. ‘수면제’라는 별명은 게임의 필수 요소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리는 경고다.


목표가 보이지 않으면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된 동기부여를 심어줄 수 없다. 다수의 수집형 콘텐츠들은 제대로 된 목표를 제공하지 않는다. 컬렉션을 모아간다는 의미만 전달할 뿐,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의미를 가질만한 목표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이드 요소들은 게임의 메인을 즐긴 충성 유저가 아니면 지루하고 재미없어 찍어 먹어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이드를 만드느라 노력은 다 썼지만 정작 플레이어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수많은 마커가 찍혀있지만, 반복적이고 보상도 명확하지 않기에 노동일뿐이다.



재밌는 게임과 클라이밍


클라이밍을 통해 게임이 퍼즐로 사람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조건을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좋은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멈춤을 강제하지 않는다. 개발자가 의도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고 플레이어를 멈춰 세우고 익히도록 때를 부리지 않는다. 기술이 없으면 불편할 수 있겠지만, 게임의 진행은 막히지 않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많은 게임은 편리한 UX를 내세우며 플레이어가 특정 기술을 습득할 때까지 튜토리얼 지옥에 가두는 행태를 보인다. 게임을 진행하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개발자도 있겠지만, 플레이어는 그 기술이 없을 때의 어려움도 겪어야 한다. 벽을 느끼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기술을 배울 것이고, 정면 돌파할 사람은 우직하게 자신의 전략으로 깰 것이다. 그 문제를 고민하고 선택해서 풀어내는 과정이 진정한 문제 풀이의 재미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둘째, 게임은 명확한 위험과 목표가 존재해야 한다. 위험과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재미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무소불위의 신이 되길 기대하고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기대하고 긴장하며 게임을 즐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목표가 없다면, 플레이어는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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