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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06. 2019

능력은 없는데 욕심만 부리는 것에 대하여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 하더라도 나의 길을 가야 할까?

 유독 나 자신이 못나 보일 때가 있다. 뭐든 해보려고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기대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가 않는다. 재능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주구장창 도전만 한다.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쯤 되면 '과정을 즐겨라!'라는 말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로 살아야 하는 나는 실망감과 패배감 더미에 파묻히게 된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봐...'

 '역시, 내가 그러면 그렇지...'

 '도대체 뭘 기대한 거니? 니 주제에...'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쏟아낸다. 마치, 그런 취급을 받아도 마땅한 것처럼. 그런다고 상황도, 기분도,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상반기에 도전했던 공모전에 줄줄이 떨어졌다. 반전이 없는 너무나도 정직한 결과였지만 마음속에서는 김칫국을 여러 번 원샷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꿈깨!' 고개를 저으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만약에 뽑힌다면?' 이런 식으로 한 달 내내 차례로 나타나 속삭이던 두 개의 자아들.


 결과가 나면 차라리 후련할 줄 알았다. 후련은 개뿔. 노력은 별로 안 했으면서도 기대라는 풍선이 뭉게뭉게 부풀어 올라서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갑자기 뾰족한 나뭇가지가 톡, 하고 건드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와르르 추락하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런 기분이 꽤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능력은 없는 놈이 욕심만 부린다



 마치 속담 같은 이 말은 MBC 공채 개그맨 박명수가 신인 시절 듣던 평판이었다고 한다. 패배감에 젖어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뜬금없이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능력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은 걸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진 재능보다 욕심이 많았었는데..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난 능력보다 욕심이 많구나.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상황이 바뀔수록 새로운 꿈이 생겨났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이가 들면 현실에 순응하고 욕심을 차츰 버리게 된다는데, 왜 난 아직도, 여전히, 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지.


 내 욕심은 허황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걸까. 견디는 것도 재능이라는데 포기하지 말고 뭐든 도전해야 하는 걸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하는 걸까.


 박명수는 자신의 욕심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지만 그건 그가 나중에 성공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 아니었을까?


 계속 그 길을 갔다가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며칠 전에 읽은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의 저자 강은경 작가가 떠올랐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신춘문예를 30년 동안 지원해 30번 다 떨어진, 결국 소설가라는 오랜 꿈을 이루지 못한, 그 대신 노안과 가난을 얻은 50대 여성이다. 그녀는 스스로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했다.'라고 말한다.

 

 공모전에 여러 번 낙방한 사람은 많아도 30년 동안 한 공모전에 도전한 사람은 처음 봤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하더니 결국 해냈다!라는 모두가 기대하는 결말은 우리를 배신한다. 그녀는 끝끝내 등단하지 못한다.


 무려 30년 동안 소설가라는 그 꿈에 매달리느라 그녀는 사회적 지위, 돈, 명예, 사랑, 결혼, 가족, 꿈 모든 것을 잃었다. 철저하게 실패자가 된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실패를 찬양한다는 나라, 아이슬란드를 직접 보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다. 가진 게 시간뿐인 그녀는 햄버거가 2만 원이나 하는 나라에서 야영과 히치하이킹만으로 71일간 장기 여행을 했다. 아이슬란드 여행 전문가조차 혀를 내두르는 지독하게 가난하고 고단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할머니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털어놓았고, 그녀는 그녀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는다.


 "당신, 인생 실패한 사람 맞아요?"
 "네?"
 "당신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난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겐 산다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죠?"
 - 강은경,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454p



 정말, 그런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았으니 됐다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은 거 맞을까?


 난, 50대에도 여전히 '원하는 내'가 되지 못할 것 같아 두렵기만 한데, 강은경 작가도 30년 동안 글 쓰는 것을 마냥 즐기기만 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그랬으면 됐다, 라니. 나는 아이슬란드 할머니의 말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와 달리 그녀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산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은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고.


 그녀는 이 힘든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이 겪어 온 남다른 인생과 처절한 여행기를 버무려 한 권의 책을 펴냈고, 마침내 '작가'가 되었다. 꿈에 그리던 소설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기어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해내고야 말았다.




 그녀의 실패담은 나의 실패와 맞닿아 있다. 그녀의 경험에 비하면 내 실패는 너무나 미약하다. 하지만 자신의 새끼손톱 밑에 난 상처가 다른 사람의 큰 상처보다 더 아픈 법이니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능력은 없는데 욕심만 많이 부리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부딪히고 넘어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이슬란드 할머니가 그녀에게 물었던 질문을 나에게 해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야겠다.


"당신에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죠?"

 "What exactly does life mean to you?"




*표지 사진출처 : MBC '무한도전'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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