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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Aug 26. 2019

나는 늘 평균 이하였다

지금의 나는 감정의 억압으로 점철된 내 유년시절에 기인한 것이다.

한 소녀가 있었다.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자신의 의견을 끊임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해볼래.

내가 한번 골라볼게.

이거 말고 저거 입을래.

아니야. 그거 싫어.

나 여기 가고 싶어.

난 이게 좋아.

이거 하고 싶어.

.

.

.


아이는 똑 부러지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지만, 부모는 아이의 의견에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향과 기질을 지녔는지, 그들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아이를 재우고, 음식을 먹이고, 학교와 학원에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바깥에서 생활했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아이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감정의 문을 닫고 마음의 벽을 쌓아갔다.  


어느덧, 어린 소녀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은 '겨울'을 주제로 동시를 지어오란 숙제를 내주셨다. 아이는 하루 종일 골몰하며 시를 적었다. 발표 시간이 다가왔고, 자신의 시가 꽤 마음에 든 아이는 기대에 잔뜩 부풀었지만, '우수한 시'로 뽑히지 못했다. 선생님께 인정받은 그 시는 빳빳한 코팅을 입혀 교실 뒤 게시판에 한 동안 전시가 되었다. 아이는 부러운 눈길로 그 시를 쳐다봤다.


아이는 시를 쓰고 싶어 졌다. 한 동안 시에 몰두하며 여러 주제로 시를 썼고, 완성된 종이를 문방구에 들고 가 직접 코팅을 했다. 코팅된 시들을 모양대로 오려서 여러 장의 카드처럼 만들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외가댁에 챙겨가 구들장 위에 그 코팅된 시 카드를 무심한 듯 바닥에 흩뿌려놨다. 그것을 엄마가 발견했다. 한 장, 또 한 장, 또 한 장. 엄마는 세 장의 시를 순식간에 읽었다. 그리곤 말했다.


이걸 시라고 썼니? 당장 치워라



아이는 그 말에 수치심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내심 엄마의 칭찬을 기대하며 기대 반, 떨림 반의 심정으로 시를 읽어 내려가는 엄마의 눈동자를 같이 따라 내려가던 아이였다. 아이는 흩뿌려진 시를 황급히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신이 쓴 시들이 갑자기 하찮게 느껴졌다. 시를 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공부를 못한다고 시험을 못 봤다고 야단맞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잘했다고 칭찬받아본 기억도 없다. 무언가 하고 싶다고 의견을 냈을 때, 받아들여진 적도 거의 없었다. 유별나다, 독하다, 이기적이다 등 온갖 냉소와 조롱을 견디며 투쟁을 하고 쟁취를 해야지만 겨우 몇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부모 밑에서 자라는 동안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묵살당한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자랐다. 늘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못난 부분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열등감을 키워나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쩌면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추스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한 번도 '훌륭'했던 적은 없었다. 성인이 된 그녀는 늘 평균 이하였다. 외모도, 학업도, 사회생활도, 경제생활도, 연애 생활도, 인간관계도, 가족관계도. 그 어떤 기준에서도 그녀는 늘 평균 이하의 삶을 맴돌았다.


한 번쯤, 평균 그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그녀는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겠다는 것에 집착하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다. 언제나 '위'를 갈망하는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과 상황에 있는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한 번쯤은 평균 이하의 삶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직면해야만 했다. 그녀의 도전은 크고 작은 시련에 맥없이 꺾여버렸고 언제나처럼 그녀는 다시 그녀의 자리로 미끄러져버렸다. 거기가 원래 그녀가 있어야하는 자리인 듯이.





지금의 나는 감정의 억압으로 점철된 내 유년시절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라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나는 내 유년시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아직 내 안의 작은 소녀를 껴안아주지 못했다. 그 소녀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지도, 용서의 손길을 내밀지도 못했다.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서 일부러 들춰내지 않으면 그런 파편들이 박혀있는지도 모른 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30여 년을 숨어 지낸 그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가 된 후, 꼬물거리던 아기가 쫑알쫑알 수다를 떠는 아이로 자란 이후였을 것이다. 매사 자기주장이 확실한 딸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아이와 대화를 하는 도중, 문득문득, 순간순간 내 속에 꽁꽁 숨어있었던 그 어린 소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딸아이가 세 살이 되고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내 안의 작은 소녀는 더욱 자주 나를 찾아온다.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애써 꾹꾹 눌러왔던 상처가 된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때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엄습한다.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모든 게 엉켜버려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이.


그래, 너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의 너에게도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너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표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렇게 수 십 년을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정말 대견하고 멋지구나. 어렸을 땐 너도 대단했구나.



켜켜이 묵혀있는 수십, 수만 가지의 기억들 중 어떤 것이 갑자기 나를 찾아올지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소녀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내 안에 아직 끙끙거리며 살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진심 어린 손길을 내밀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상처 투성이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세 살배기 딸아이의 엄마이면서 동시에 내 어린 시절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그 시절 그 어린 소녀에게 필요했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고 싶달까. 수시로 나를 찾아오는 소녀에게 따뜻한 눈길과 상냥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그동안 잘 해왔다고. 너는 '너답게' 잘 살아온 것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말고, 세상의 '평균'을 기준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때의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정말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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