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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Aug 12. 2019

선택할 자유가 있는 삶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다

2013년 9월 추석 연휴 언저리.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했던 시기였다. 서른을 갓 넘긴 시점이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던 달이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능력 있는 직원이 되기 위해 오직 일에만 몰두하며 몇 년을 달려왔었다. 야근을 훈장처럼 생각하던 때였다. 잠이 부족하고 몸이 피곤한 것이 직장인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을 때였다. 지금의 희생이 내일의 성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여길 때였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를 지우고 혹사시킨 시간들로 인생을 채울 때였다.


부끄럽게도, 사회초년생 때보다 한 발 나아진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 착각에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대로 조금 더 '노오력'한다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질 것 같은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무리 더 희생하고, 더 노력한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란 것을.


이달이나 다음 달이나, 올해나 내년이나, 그 후년이나, 5년 후나... 9시에 출근해서 6시 (계약상에 명시된 퇴근시간)에 퇴근하는, 내 에너지를 갈아 넣으며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매해 물가상승률만큼만 오르는 연봉으로 빠듯하게 살아낼 그 시간들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마치 미래에 다녀온 듯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이렇게' 살기는 싫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출처 : Unsplash)



인생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어왔다. 인생에 대한 위기감, 공포에 가까운 서늘한 기분이 그 당시 나를 덮쳤다. 다람쥐통에 갇힌 다람쥐가 더 빨리 달린다고 다른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이 트렉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 한 현재의 삶에서 나아지는 일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이렇게' 살기는 싫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후,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로 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회사는 계속 다녔지만 '회사 안에 존재하는 내'가 아닌, '인생의 주체로서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의도적으로 가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가.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몇 개월도 되지 않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지향점,

선택할 자유가 있는 삶



선택권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 세상에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권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배우 유일한의 꿈은 '오디션을 안 볼 수 있는 배우'라고 밝혔다. (출처 : MBC '놀면 뭐하니?' 0810편 캡처)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배우 유일한 씨가 출연했다. 그는 현재에도 아침에는 남대문에서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는 역할을 따내기 위해 프로필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꿈을 묻는 사회자의 말에 그는 단호히 말한다. 오디션을 보지 않는 배우가 꿈이라고.


그는 '선택권을 가진 배우'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자신을 찾아오고 스스로 원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적어도 자신을 알리고 증명하는 수고로움 없이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배우의 삶 말이다.


배우 유일한 씨의 꿈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2013년 9월의 내가 떠올랐다.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 선택권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 목표는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아직 목표를 이루지는 못한 채 현재에도 '선택할 자유'를 갖기 위한 과정에 있는 나는 그에게 감정이입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가는.

내 시간을 오로지 나 자신의 의지, 감정, 기분,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면서 돈은 부족하지 않은 그런 삶을 말이다.


하다못해 우리는 길을 걷더라도 자신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되는 거리에서 걷고 싶어한다고 한다.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고, 왜 어떤 거리는 걷기 싫은지에 대한 답도 '선택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 주도적인 삶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연성이 넘친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리가 더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 유한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31p


결국, 자신에게 그런 선택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리라.

행여 그 선택이 종종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도.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고민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39p

 


나 역시 주체적인 인격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육체,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로 살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끝내, 선택할 자유를 가진 인생을 살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설사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런 삶을 꿈꾼다. 선택할 자유가 있는 삶이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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