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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Mar 13. 2016

1. 외향적인 사람들의 세계

내향적인 사람이 글로벌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글로벌 IT 회사에서 컨설턴트와 기술 영업 쪽 일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고객 앞에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 내 업무의 일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대기업에서 6년 정도를 일한 후 미국 회사로 옮긴 게 나의 글로벌 회사의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바로 약 300명 정도의 사람들 앞에서 대중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임무가 맡겨졌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지금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큰 발표도 해내고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는 편이지만 (물론 항상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진맥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나는 사실 내향적인 사람이니까.


이제는 한국 회사들도 많이 글로벌화되었고 발표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졌지만, 글로벌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여전히 다른 차원의 용기와 외향성을 필요로 한다. 아시아나 유럽보다 미국이 이런 성향이 확실히 강하다. 나도 내향적인 성격을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버거운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교육


작년에 2주간 미국 캘리포니아로 교육을 갔던 동안에 엄청난 충격을 겪었다. 너무 힘들었다. 

2주간의 교육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강의를 듣는 걸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교육에서 강사는 아주 잠깐 콘텐츠를 얘기한 다음  테이블 별로 토론해서 결과를 내고 그걸 돌아가면서 발표하라고 했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매혹적으로 발표를 하는 방법이 주제인 시간이면, 약 20분 정도 강사가 주요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리고 1시간 동안 각 테이블 - 보통 6명 정도가 한 테이블 안에 있었다. - 에서 토론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점은 이렇다, 이렇게 하면 잘 되더라 등등,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그러고 나면 정리해서 40분 동안 각 테이블 별로 발표자를 정해서 토론한 내용을 서로 발표하고 다시 토론.

이 생활을 2주간 했다. 영어로. 한국 사람은 나 혼자. 아시아계는 나를 포함해서 단 2명.


정말 이런 과정들이 고통스러웠다. 테이블 안에서 들어보면 물론 좋은 의견들도 많고 경청할 경험들도 있었지만, 약 반 정도는 다 아는 내용들을 다시 한번 유창한 영어로 말하는 미국인들이 대화를 주도했다. 처음에는 내가 영어가 짧아서 그런가 했지만 나보다도 영어를 못 하는 멕시코와 브라질의 동료들이 그림을 그려가면 큰 소리로 대화를 주도하는 걸 보고 그 생각도 접었다.


거기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세계였다. 누가 확신에 찬 목소리와 태도로 대화를 주도하는지,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얘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누가 내용을 잘 아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절망스럽게도 (적어도 나에겐) 기술적인 교육을 제외한 일반적인 교육은 이런 토론식 교육이 일상적이 되어 간다. 팀에 공헌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외국 동료의 질책이 섞인 눈초리를 어떻게 할까? 역시 콘텐츠로 미는 수 밖에는 없다. 

I contributed to the team enough today. It's your turn now.  자신은 충분히 공헌했다고 내가 하라고 등 떠밀던 미국 동료의 말이었다.


스탠딩 파티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맥주나 와인잔을 손에 들고 서서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  

실제로 글로벌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콘퍼런스의 저녁은 대부분 이런 방식이다.  음식은 주로 Finger Food (핑거 푸드)가 서빙된다. Finger Food는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류를 지칭하는 단어로 작은 튀김, 꼬치, 딤섬, 빵 종류들이 주를 이룬다. 


외국 동료들, 특히 서양사람들은 정말 잘 서 있는다. 말 그대로 서.있.는.다.  몇 잔의 술과 간단한 음식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서서 쉬임 없이 얘기를 한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하고 소개받고 작은 이야기에 큰 리액션을 하며 서로 네트워킹을 한다. 


 우리(자랑스러운 한국인들)는 익숙하지 않다. 앉아서 편하게 먹고 싶다. 얘기보다는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콘퍼런스에서 시달렸는데 저녁 먹으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그래서 우리는  행사장에서 문이 열리면 몇 개 안 되는 테이블과 의자를 향해 돌진한다. 왜?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과학적인 온돌을 가진 민족이니까. 그리고 우리끼리 앉아서 주구장창 맥주와 와인을 마셔댄다. 글로벌 회사의 파티에서 가장 먼저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것은 대부분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이다.


물론, 글로벌 회사에서 책임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 (혹은 그 위치에 가려는 야심이 있다면) 그래서는 안된다. 계속 친근하게 굴어야 하고, 정말로 반갑게 맞이해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받고 소개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나중에 일하면서 막힌 일을 풀어줄 사람들을 알게 되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  

Let me connect you with Jackie who is in charge of Product marketing in Japan.
 관련된 업무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흔히 쓰는 말이다.


즐기려는 노력


대부분의 글로벌 회사에서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속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중국계, 일본계나 동남아시아계가 많다. 물론 본사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유럽에서 시작한 회사다 보니 독일 사람들과도 일을 많이 한다.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확실히 외향적인 부분이 덜하다. 콘퍼런스 콜이나 교육을 해도 미국과 유럽 동료들에 비해 질문도 적다. 미국에 2주간 교육을 다녀온 후에 싱가포르에 출장을 갔을 땐 그 전에 못 느꼈던 친근감까지 느껴버릴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글로벌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중요한 위치에 서려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봐온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향적이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면 위와 같이 교육이나 파티 같은 경우는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끝나고 기진맥진해질지라도 1년에 몇 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면 된다.  조금 익숙해지면 심지어 살짝 즐기기도 시작할 수 있다. 


외향적이면 편한 세계이긴 하지만 내향적이어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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