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회사 내에서 실무가 가지는 중요성
최근에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자비스 프로젝트 결과를 공개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 개인비서 자비스 (Jarvis)를 구현했다.
영화에서처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니다. 사실 아마존의 에코(Echo)나 애플 Siri가 좀 더 섹시하게 구현된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듯 - 목소리 인식과 처리를 통해서 집의 조명과 토스트기 등 다양한 기기를 컨트롤하고 모건 프리먼 목소리로 대답하고 처리 결과를 알려준다.
사실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다. 모두 현존하는 API를 이용했고 시장에 나와있는 디바이스들을 활용해서 연결시켰다. 그렇다고 절대로 마크가 해낸 일이 대단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시장에 나와있는 적절한 기술을 찾아내고 그것을 잘 엮어서 매끈한 경험을 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해내는 사람은 이 지구 상에 그리 많지 않다. - 이 문장에서 누군가를 떠올리신 분? 빙고. 스티브 잡스.
놀랍게도 마크는 이 자비스 프로젝트를 직접 해냈다. Phython, PHP와 Objective C 언어를 이용해서 다양한 인공지능 테크닉을 구현하고 자연 언어 처리, 음성 인식, 얼굴 인식과 기계 학습까지 구현했단다.
마크 주커버그 자비스 프로젝트를 가지고 마치 글로벌 회사의 CEO들은 모두 마크 같다고 침소봉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페이스북은 지금 세계를 리드하는 한 축인 회사이고 마크는 그 회사를 직접 개발하여 창업한 사람이다. 세계의 거의 정상에 있는 천재다. 자비스 프로젝트에 총 100시간 정도의 개발 노력이 들어갔다고 밝혔다던가.
글로벌 회사에서 근무하는 Top Executive 들과 임원들이 코딩을 알고 직접 하고 실무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은 중요한 계획, 그의 실행 그리고 사람들을 리드하는 일들을 주로 한다. (이 모든 일들을 하면서도 매일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코딩에 할애한 마크는 정말 대단한 X) 하지만 한국의 임원들처럼, 그리고 중간 관리자들처럼 대부분의 일들을 이른바 아랫사람들에게 시키고 그 결과를 리뷰하고 다시 시키고 하는 일에만 머무르는 관리자들은 거의 없다. (한국화 된 외국계 회사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만)
완전히 Top Executive가 아닌 이상 많은 일들은 스스로 처리한다.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의 안건은 자신이 스스로 작성한다. 자신이 발표해야 할 내용의 프레젠테이션 장표는 직접 만드는 경우도 많다. 콘퍼런스 콜이 필요할 때 직접 아웃룩에서 미팅 요청 (Meeting Request)을 보낸다.
예전에 다니던 한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기조연설이 두 세션이 필요했다. 하나는 한국 지사의 지사장이 하고 하나는 내가 직접 리포트하던 외국 매니저가 하기로 되었다. 한국 지사장의 발표는 당연히 비서진에서 준비했다. 몇 명이 밤새며 발표 장표를 만들어가면 "이게 아니야 이렇게 저렇게", 다시 만들어가면 "음.. 저번 게 낫나?" 이 과정을 몇 번씩 거쳐갔다.
외국 매니저는? 나에게 메일을 보내 발표 건으로 콘퍼런스 콜을 하자고 했다. 나보고 다 만들라는 거 아닐까 하는 우려 반 근심 반으로 들어간 콜. 자신의 피씨 화면을 공유하며 장표를 하나 보여준다. 얼마 전에 다른 행사에서 발표했던 장표인데 설명해줄 테니 보고 맞는지 얘기해달라는 거였다. 이런 부분은 한국과 안 맞고 저런 내용도 필요할 것 같고 주저리주저리 주제넘게 코멘트를 해댔다. "Hmmm. I agree with you." 모두 자신이 고쳐서 다음에 다신 한번 콜을 갖자고 하는 매니저. 마치 그 매니저가 작업을 하고 내가 리뷰를 하는 듯해서 너무 미안해서 1-2장을 내가 만들겠다고 하니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은 모두 이런 경험들 한 번씩 있을 거다. 보고서를 써서 올리면 위에 과장이 리뷰하고 고치고, 과장 통과한 내용을 부장에게 가져가면 부장이 또 고치고, 부장 통과한 내용을 이사에게 올리면 또 고치고.
많은 인풋과 검증을 거친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왜 없겠냐만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써야 하는 보고서조차도 이런 과정을 거칠 때가 많으니.
그런 매니저와 임원들을 보면서 마치 실무에서 손을 놓은 게 승진의 대가나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는 주니어들이 생겨나는 것이 더 큰 문제. 얼마 전 팀의 한 주니어를 보면서 안 내던 화를 낸 적이 있다. 중요한 문서가 한국어로 되어 있어 영어로 번역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이었으니 당연히 그가 번역할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다. 그가 뱉은 말은, "아휴 이런 거 제가 계속해야 해요? 협력업체 어디에 시키면 안 될까요?"
작은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큰 일을 할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은 일을 할 수 없으며 더 중요한 일,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람들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접 어떤 태스크를 수행하는 건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관행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 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위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위해서.
자신이 시장을 보고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직접 보고서를 멋들어지게 만들고 발표까지 해내는 매니저. 멋지지 않은가? 다들 바쁠 때 같이 기초 자료를 분석해주고 정리해주는 임원, 다들 마음속으로 따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매니저와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맡은 작은 일들을 성의를 다해서 잘 해낸 세월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물론 일터.
누구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코딩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주커버그 따라 하기나 잠깐의 열풍이라도 좋다. 2017년에는 코딩으로 뭔가를 구현해보겠다는 목표를 가진 대한민국의 임원, 매니저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되지도 않는 기획을 세운 다음 쳐다도 안 보다가 젊은 개발자들 데려다가 다그치지는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