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타코바에서 환상적인 브리또와 필슨 한 병을 마시고 빙글빙글 대는 기분으로 들어와 이만 닦고 기절한 게 기억이 난다. 귀가 좀 아프다. 본능적으로 오늘은 다이빙을 피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수영은 괜찮겠지 하는 이중적인 생각이 고개를 든다.(결국 수영은 하는 걸로.) 타월을 하나 빌리고(이때는 무료인 줄 알았다) 치카치카를 하며 샤워를 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공용공간에 유럽 친구들이 몰려있다.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 해먹에 누워 잠을 청하고 인터넷을 하는 친구들 역시나 다양하다. 눈인사를 건네며 슬쩍 다가가 본다.
"헤이, 친구들. 안녕?" 응, 안녕.
"너희들 어디서 왔어?" 영국.
아하. 공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한 무리의 영국인들이 전부 여기 와있구나. 세부 시티나 막탄보단 남부나 북부를 선호하는 듯했다. 사실 여행 스타일의 다름을 떠나,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 등의 차이점들이 있는 유러피안들과 아시아인들의 선호 여행지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짧은 기간 동안 호핑, 쇼핑 등의 여유를 안전하고 편하게느끼고 싶은 한국인들에겐 막탄이나 세부가 최적의 여행지라 생각한다.
파란 눈의 노랑머리인 저들은 시간적 여유는 있으나오히려 금전적 여유는 우리보다 크지 않다. 2박 4일, 3박 5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금액을 안다면, 저들의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너 오토바이 빌렸어?" 응.
"어디서 빌렸어?" 여기 바로 옆에 있어.
"얼마야?" 하루에 300-400페소.
오키. 그럼 난 5일을 빌려야 하니 최대 1,500페소로 잡고 최대한 깎아보기로 한다.
오토바이 렌트샵은 호스텔 바로 옆에 있었다. 입구를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왼편에 있다. 매뉴얼이 오토보다 하루에 50페소 정도 저렴하다. 난 오토가 편하니 오토를 빌리기로 한다.
"나 5일 빌린 건데 오토로 하루에 200페소에 해줘"
아주머니가 기겁을 한다. 이건 좀 아닌가 싶었다.
"그럼 5일 빌리고 1,250페소 낼게.
"50페소를 올리고 5일 치를 한 번에 얘기했다.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도로록 돌아간다. 계산을 하고 있는 거 같다.
외국에 나오면 다들 느끼는 거겠지만 한국사람들은 암산을 참 잘한다. 이들은 계산기가 없으면 셈을 잘 못한다. 금액이 큰데 하루에 얼마인지 가늠을 못하는 눈치다. (해외에서 가격 협상을 할 때는 한 개의 가격을 깎지 말고, 살 것들을 다 합쳐서 계산한 후 뭉텅이로 깎아서 흥정을 하면 아주 편하다. 지금까지 이 방식이 안 통한 적이 없다.)
이제 협상을 마무리할 때다. "고마워요. 오토바이도 예쁘고, 너무 좋네요. 덕분에 여행 잘할 거 같아요."
오늘은 카와산폭포에 가 볼 예정이다. 시간이 이미 점심을 넘었다. 배가 고프니 금강산 구경은 식후에 하기로 한다. 오토바이를 몰고 파낙사마 비치로 가본다. 도도도도 슬슬 달리는 기분이 즐겁다. 비치는 호스텔을 나와 오른쪽으로만 가면 나온다. 다이빙샵들과 식당들을 지나쳐 금방 도착했다. 한쪽에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비치로 먼저 갔다. 호핑 하는 배들과 스쿠버, 스노클 하는 사람들이 동동 떠다닌다.
오기 전에 이미 절벽 지형을 갖춘 비치임을 알고 있었다.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도 수심이 나와 다이빙하기 최적이다. 아직 귀가 안 나았으므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 다시 오기로 한다.
다이빙샵 2층에 위치한 식당이 보인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뷰가 좋다. 여기서 밥을 먹자. 아도보(필리핀식 양념돼지고기, 비계가 많고 좀 짜다)를 주문하고 해변을 바라보며 망고쉐이크를 호로록 한 모금 마셔본다. 뭔들 맛이 좋다. 옆 테이블의 중국인들의 역동적인(?) 셀피를 도와준 후,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치고 카와산으로 출발한다.
구글맵으로 방향과 위치를 확인 후 나섰다. 하나 나는 지도를 들고도 반대로 가는 엄청난 길치이자 방향치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너무 믿지 않기로 한다. 역시나 대로를 나오자마자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럴 땐 꾸야(형, 오빠)에게 물어보자. 마농(삼촌)급의 꾸야가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살라맛 뽀.
가이사노 몰을 금방 지나면 오른쪽으로 베이디언만이 보인다. 청물이 넘쳐흐른다. 방카들이 여유롭게 지나다닌다. 베이디안은 해변이 아주 아름답다. 듣기로는 가라앉은 섬이 있다고 한다. (프리다이빙 101 바다곰 강사님으로부터 얻은 정보. 아쉽게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수심 20미터 아래에 있다고 하니 적어도 아이다3 레벨은 돼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라고사섬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드라이빙을 즐겼다.
조그만 마을도 지나고 카와산 캐녀니어링(이하 캐녀링)을 진행한다는 샵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온듯하다. 난 오늘은 캐녀링을 즐기러 온 게 아니니 가격만 슬쩍 협상을 해보고 떠난다. 참고로 몇 군데 협상을 해보니 운전을 해서 직접 오고, 점심을 빼면 1,000페소가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다.
실제로 캐녀링을 진행하는 입구까지 직접 운전해 가서 협상을 해봤으나 가이드비 800페소, 입장료가 200페소였다. 혹 모알보알에 묵으며 캐녀링을 즐기실 분들은 숙소에서 1,500페소 이하로 협상해서 즐기면 된다. 일반적으로 캐녀링샵들은 캐녀링 시작점부터 카와산폭포 사이에 거의 대분 존재한다. (모알보알에서 출발 시.)
캐녀링 시작점을 지나 좀 더 내려가니 폭포가 있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좌회전하여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갔다.
좀 더 진입하니 현지인들이 날 부른다. 무시하고 들어가니 오토바이가 진입금지란다. 왼쪽에 보이는 가게 옆 공터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폭포 입구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 공터에 세우고 가게 주인아주머니에게 20페소를 지불하면 물건과 오토바이까지 안전하게 관리해주신다. 다녀와서 내기로 한다.
계곡을 왼쪽에 끼고 살랑살랑 걸어가면 매표소가 금방 나온다. 40페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포장도로와 산길을 10-15분가량 걸으면 목적지인 카와산 폭포에 도착한다. 이미 수많은 현지인들과 몇몇 외국인들이 보인다. 아주 멋지다.
폭포 양옆으로 식당들이 있다. 음료나 식사를 주문하지 않아도 파라솔 아래 의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의자는 굳이 사용하지 않고 가운데 바위 위에 물건들을 올려놨다. 여기까지 왔는데 수영을 안 할 수 없지. 이미 수영복을 입고 왔기에 겉옷을 조신하게 훌러덩 벗어본다. 마스크만 착용하고 폭포로 뛰어들었다. 잠영으로 폭포 아래까지 들어가 몸을 뒤집어 온몸으로 폭포를 맞아본다. 우다다다 다다닥. 뒤집어지게 아프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역시나 날 부른다.
라이프 재킷 없이는 안전선을 넘어 폭포 안쪽까지 들어갈 수 없단다. 아쉽지만 선 밖으로 나온다. 다시 뒤집어진 몸으로 비산하는 폭포의 물방울들을 맞아본다. 좋다. 안 아프다. 뒤집어진 눈으로 폭포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하다. 항상이지만 다시 한번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감사와 행복을 눈 안에 담아 감아본다.
잠이 온다. 잠이 온다.
주문을 외워봐도 잠은 오지 않는다.
강력한 폭포에 바다와 같은 너울이 나의 코를 통해 입안 가득 들어찬다. 뭔가 멋짐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되지도 않는 짓이었나 보다. 시원하게 코 세척을 한 물을 입 밖으로 뱉어내며, 다시 바위로 돌아왔다. 이 조그만 바위가 마치 내 쉴 곳인 양 편안하다. 그렇게 몇 차례 왔다 갔다 쉼 없이 즐거이 쉬었다. 귀가 아픈 줄도 몰랐다.
이때 살짝 기압성 중이 외상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나의 귀가 꾀병이 아닌가 진단해봤지만 안전이 최고 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며 스스로 자위했다. 외국 애들이 물어볼까 봐 영명도 외웠는데.. Middle ear baro traumatic 남부 여행하며 한번 사용했다. 다행이다.
산속의 어둠은 소리 없이 금방 찾아온다. 정신없이 즐기던 중 어둠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돌아갈 시간이다. 돌아내려와 아주머님께 20페소를 드리고 물건을 찾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한데 비가 오려한다.
"혹시 오늘 날씨 봤어요? 이거 비 계속 오나요?"
"어? 나 날씨 못 봤는데 근데 오래 올 거 같지 않은데?"
어차피 돌아가는 길은 험하지 않고, 그리 멀지 않으니 아주머니를 믿어보기로 한다. 같은 길일진대 내려앉은 어둠 때문인지 같은 도도도도 소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신나게 달려가 본다. 길을 재촉한 덕분인지 오래지 않아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샤워를 마치니 노곤함과 동시에 급한 공복을 느낀다. 오늘도 브리또가 땡긴다.
한번 온 곳을 두 번 오니 주고받는 인사에 두 배로 정겨움을 느낀다. 단골이 된 듯한 뿌듯함에 절로 어깨가 넓어진다. 투 부리또, 원 필슨을 마시니 오늘도 돌아가는 길이 돈다. 두 배로 돈다. 숙소로 돌아오니 팔, 다리가 마사지를 부르는 듯하다. 마사지의 요구는 뇌와는 상관없는 본능적인 작용기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낮에 비치를 다녀오며 본 마사지샵이 생각난다. 생각을 했을 뿐인데 이미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다.
난 타이마사지(접는다, 아프다) 중국 마사지(찌르고, 누른다. 아프다)는 싫어하니 자연스레 스웨디시 마사지를 받는다. 300페소에 1시간의 행복을 느낀다. 좋구나. 시간은 이미 10시를 넘었다. 숙소엔 두런두런 모여있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엉덩이를 밀며 슬쩍 끼어본다. 모호(호스텔)는 이틀만 예약을 했기에 내일 숙소를 옮길지 더 묵을지 결정을 해야 했다. 이 친구들은 이미 주변 액티비티를 끝내고 누가 누가 더 늘어지나를 시전하고 있는 상태. 나에게도 병이 옮는 듯했다.
저녁쯤 받은 영민 누나(프리 다이브 101에서 만난)의 카톡과 사진이 떠오른다. 오슬롭 조금 위에 볼준이라는 지역에 누르드지(Noordzee hostel)라는 호스텔에 있다고 했다. 사진이 너무 멋지다. 이미 마음이 동한다. 숙소가 해변을 끼고 있고 해변 앞에 홈바가 있다. 수영장이 있으며, 누워서 쉴 수 있는 비치베드가 즐비해있다. 가야 할 이유가 10가지도 넘었다. 당장 예약을 했다. 이틀간 묵기로 결정 역시나 다인 혼성 베드로 1박에 500페소 정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일찍 마무리하기로 한다. 친구들(언제부터?)과 인사를 하고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