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걱정을 덮고 잠을 잤건만 하나도 따뜻하지 않았다. 아주 추워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아침까지 살아남았다. 이제 드디어 GT를 만나러 갈 때다. 올랭이를 끌고 오토마트로 직행하고 싶었으나, 추위에 너무 일찍 일어난 관계로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트렁크를 열고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을 살아갈 새로운 힘과 희망이 저 깊은 곳에서 불끈 솟아오를 리 없고 배가 고파온다. 아침을 먹으러 가야겠다.
오토마트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라면과 딸기 우유를 먹고 드디어 GT를 보러 갔다. 내가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여전히 문이 닫혀있었다. 잠시 후 직원분들이 오셔서 문을 열어주셨다. 535i GT를 보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차량 키를 주셨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드디어 시동을 걸어본다. 우웅. 오! 문제없이 시동이 잘 걸린다. 다행이다. GT야 살아있었구나ㅠ 고물상에 보내고 술이나 한 잔 하자던 친구 1, 2의 얼굴이 떠오른다.
실내에 앉아 작동하지 않는 것들이 있나 확인해본다. 선루프는 천이 뜯어져서 천장에서 늘어져있다. 이건 알고 있었던 것이니 고치면 된다. 띠링 수리비 55만 원 당첨입니다. 공조기 장치 이상 없이 작동한다. 히터는 잘 나오는데 에어컨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냉매가 없는 건지 정비소에서 확인해봐야겠다. 시트는 전체적으로 까짐 없이 상태가 괜찮다. 돈이 굳었다. 전조등, 후미등 전부 살아있다. 와이퍼가 삐걱거리는 게 얘는 갈아줘야겠다. 다행히도 내부는 선루프 외엔 돈이 딱히 들 것 같지 않다.
엔진룸도 열어서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확인을 한다. 잘 보이진 않으나 각종 오일 누유가 있다고 했으니 하부는 엉망일 것이다. 일단 엔진 캡을 열어보니 오일이 부족해 보인다. 역시나 엔진오일 부족 경고등이 뜬다. 오일류는 어차피 다 갈거니 큰 문제가 아니다. 노킹 현상 전혀 없고 다행히 블로우 바이 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배기관에서도 맑은 물이 맺혀 나온다. 연기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엔진도 소리가 좋은 게 상태가 아주 좋다. 크으. 올레!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 시운전을 해 볼 수 없으니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미션과 하부를 체크해야 한다. 기어를 천천히 변경해보고 빠르게 변경해보면서 미션 상태를 체크해본다. 이 정도로는 문제가 없다. 일단 미션도 통과. D를 놓고 앞으로 출발했다 급브레이크도 밟아본다. 잘 멈추고 차체가 크게 흔들림이 없다. 완벽하진 않지만 로워암이나 텐션 스트럿 같은 하부류의 이상을 체크할 수 있다.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열심히 점검을 하고 있으니 오토마트 직원분께서 다가오신다.
직원님 - 차 상태 괜찮지요?
나 - 안녕하세요. 네, 진짜 걱정 많이 하고 왔는데 다행히 상태가 좋네요.
직원님 - 내가 점검했는데 누유가 좀 있고 오일이 부족한데 당장 운행해도 돼요.
나- 아! 정말 다행이네요.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요. 입찰금 포기해야 하나 진짜 고민 많이 했거든요.
직원님 - 이 차는 회원사 공매잖아요. 회원사 공매는 당장 운행해도 될 정도로 상태가 좋은 것들만 나와요.
아? 직원님께 좋은 정보를 얻었다. 직원분이 가시고 외관을 좀 더 살폈다. 정말 다행히도 에어 서스펜션도 멀쩡하다. 어제 봤을 땐 가라앉아 있었는데 며칠 시동을 안 걸어서 그렇다고 했다. 시동을 거니 공기가 유입되어 서스펜션이 올라온다. 진짜 다행이다ㅠ 돈이 굳는드아아. 그러나 복병은 따로 있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보다 차량 상태가 좋다. 이 정도면 잔금을 치르고 수리를 좀 해서 타면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분 좋게 키를 반납하고 마뉨께 전화를 드려 차량의 상태를 설명드리고 잔금을 완납하겠다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잔금을 완납했다. 이제 이 차는 제 겁니다. 우헤헤헤헤헤. 이때만 해도 수리비는 300만 원이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올랭이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다. 며칠 후 차량 이전이 완료되었다며 차량 탁송을 해줄지 연락이 왔다. 차량 수리를 위해 김포에서 미리 찾아놓은 OO모터스로 바로 보내달라고 했다.
일을 마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OO모터스에 전화를 했다.
나 - 안녕하세요. GT차주인데요. 혹시 견적 나왔을까요?
직원분 - 아, 네 안녕하세요. 어.. 이게 견적이 좀 나와서요. 제가 사장님을 바꿔드릴게요.
나 - 네!? 많이 나왔나요..?
직원분 - 잠시만요.
사장님 -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차주님 내일 한번 오시겠어요?
나 - 네, 그럼 내일 오전에 방문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뭐지!? 견적이 왜 많이 나온 거지? 누유를 잡다가 다른 문제들이 발생했나? 끄응. 일단 내일 방문해봐야겠다. 다음 날, 오전에 OO모터스를 방문했다. 사장님은 리프트 위에 띄워놓은 차량을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신다. 말인즉슨, 누유가 많이 심해서 교체할 게 많고 교체하는 김에 예방정비를 하는 게 낫다는 것과 브레이크 디스크 및 패드를 싹 다 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장님께 잠시 고민을 좀 해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마뉨과 상의를 한다.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마뉨께선 기왕 낙찰받은 거 싹 고쳐서 안전하게 타라고 하신다. 우리 마뉨짱. 견적비용을 다른 곳과 비교해보고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고 그렇게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마뉨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OO모터스에 전화를 걸어 전부 수리를 하겠다고 했다.
GT 수리비 견적서
두둥. 그렇게 나온 견적이.. 3,748,800원.. 아직 선루프도 수리하지 않았고 도색도 하지 않았지 않는데 이미 수리비만 300만 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래도 이걸 싹 다 고치면 10년식 새 차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나의 이성은 감정에 지배당한 채 눈이 멀어버렸다. 이때 수리하지 말고 오일만 갈고 탔어야 했는데.. 차량 수리비 대략 375만 원 + 선루프 수리비 55만 원 + 도색 80만 원 = 무려 575만 원이 나온다. ㄷㄷㄷㄷ
아니 908만 원에 낙찰받았는데 수리비가 575만 원 실화냐ㅋㅋㅋㅋ 하아. 이렇게 GT는 돈 먹는 하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대환장 파티가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제주에서 GT는 바둑이로 재탄생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