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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Dec 09. 2021

제주청년 농업학교를 가다. 2부.

오늘은 창고 정리를 합시다!

프로젝트명 - 폭풍전야.

전투를 시작하기 앞서 무기를 정비하듯 우린 농업을 배우기에 앞서 창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까짓 거 말년 병장으로 빙의해서 라테 한잔하며 손가락만 까딱하면 좋으련만. 다시 이등병이 되었다. 실화냐. 다행히도 꿈인듯하니 열심히 일을 시작해보자.

창고에 있던 짐들을 하나 씩 꺼내고 있는 모습

오래간만에 육체노동을 하니 몸이 비명을 지르지만, 보람차고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까지 좋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농기구부터 비료 등의 약품들까지 하나 씩 전부 밖으로 꺼내본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품들인지 먼지와 뒤엉킨 쓰레기들은 물론이고 물건들의 상태 또한 매우 좋지 않다. 이걸 다 치워야 한다니 오늘은 죽었구나 싶었다. 우리 팀원들은 나를 포함해서 전부 8명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줄 팀장까지 총 9명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리지만 다들 진취적이고 굉장히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 들이다.

창고의 짐과 쓰레기를 꺼내는 모습

가장 어린 친구가 스무 살. 올해 스무 살인 이 친구를 이곳으로 이끈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난 스무 살에 뭐 하고 있었지? 매일 술만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며칠 지나며 함께 일하고 식사를 하며 같이 이야기할 기회들이 많아져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 가게 되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한 명 한 명 정말 건강하고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20대를 반추해보니 이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고 배움이었다. 우리의 팀장인 디아(23세)가 우리 모두를 전화로 면접을 보고 뽑았다고 했는데 면접의 기준이 아주 확고했나 보다 싶었다. 젊은 인재들이 이곳에 다 모인 거 같았다. 농벤져스인가.

꺼내놓은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물품들의 재고를 파악하고 있는 모습

그렇게 9명이 달려들어 쉼 없이 물건들을 꺼내고 재고를 파악하니 어느덧 끝이 보이는 거 같다. 제주도에 내려와 아내와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쉼을 원 없이 즐기고 있었다.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나,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9시가 되어야 일어나는 습관은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고칠 이유도 없거니와 의지도 없었다.

쓰레기를 정리하는 나의 모습. 짠하다.

이런 나의 나약한 마음가짐은 농벤져스들에 의해 부서지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부서져서 조금 다시 쌓고 싶기도.. 이 젊은 친구들에 의해 내가 다시 태어나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느낌만. 느낌 아니까.  그렇게 모든 짐들을 다 정리해놓고 나니 매우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이게 뭐라고 이런 마음이 드는지. 혼자 피식거려본다.

정리가 다 끝난 창고의 모습

오랜만의 고된 육체노동 끝에 완성된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니 내가 왜 살이 안 찌는지 알 거 같다. 그냥 많이 안 먹어서인 거구나. 몸이 고되니 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채식을 하며 빠진 살이 다시 찌지 않아 몸무게가 최하를 찍고 있었는데 아마 곧 다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귤을 수확하고 선별 및 포장 후에 우리의 애마들을(트럭 및 스타렉스들) 세차한다고 한다. 내일도 뿌듯하게 보낼 하루를 기대하며 기절을 한다.


2끝.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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