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살려주세요 오스메냐픽 (feat. 50cc)

본격 사진 없는 여행기의 시작

by 우주

본격 사진 없는 여행기의 마지막 날.


대망의 오스메냐픽 데이가 밝았다. 사실 오스메냐픽을 굳이 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세부에서 최고봉이라고는 하나 등산을 할 정도의 높이도 아닌 데다, 주행거리는 짧으나, 산길이라 편도로 1시간 30분의 시간이 걸리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며칠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빈둥빈둥 대보자. 으흐흐. 신난다. 조식으로 하루를 시작해보자. 숙소의 식당으로 향한다.


자리에 앉아 미국 조식(American breakfast)을 주문 후, 눈에 들어차는 자연을 즐겼다. 뷰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라디오 어플에서 방송(smooth jazz florida)을 골라 틀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방송사인데 초당 전송 데이터량이 많아서인지, 인터넷이 느려서인지 버퍼링이 걸린다. 어쩔 수 없지 2안으로 간다. Best of 1jazz를 틀고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음악과 함께 순간을 즐겼다. 행복이 터진다. 터지는 행복도 잠시 미국 조식과 함께 베드 뉴스가 전달되었다.


"헤이 워렌, 미안한데. 이따가 10시부터 단수, 단전될 거야. 미안해. 어떡하지?"

"음.. 어쩔 수 없지. 알겠어. 그렇게 알고 있을게."


오 마이갓쉬. 10년 전 처음 필리핀에 왔을 땐, 단수와 단전이 일상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었지만 아직도 단수와 단전이라니. 다이빙하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하루 종일 굴러다닐 나의 잉여로운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다시 한번 짱구를 굴려볼 때이다.


그래. 내일은 다시 세부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니 미리 모알보알로 돌아가서 짐을 풀고 오스메냐픽을 가보자.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우아하게 미국 조식을 먹고 이 순간을 즐겼다.(바다가 참 아름다웠는데 들어가 보지 못한 게 다소 아쉽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조식을 즐긴 탓에 이미 10시가 넘었다. 단수 시작. 과감히 샤워를 포기하고 체크아웃 후, 모알보알로 향했다. 가자 모호로. 오늘은 달려가는 이 길이 너무 나 여유롭다. 기분 좋은 드라이빙을 시작한다. 광고의 한 장면인 양 청량감이 터지는 바다를 눈 안에 담뿍 담고, 흘러가는 구름을 흘려보내며 그렇게 행복하게 모호에 도착했다.(행복한 드라이빙 끝, 불행한 드라이빙 시작.)



오늘도 운 좋게 이른 체크인에 성공했다. 올레! 간단하게 씻은 후, 오스메냐픽을 향해 출발하려는데 슬슬 출출해진다. 뭐, 금방 다녀올 텐데 점심을 먹고 가자. Ven's kitchen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루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음.. 루트가 2개다. 하나는 짧고, 하나는 조금 돌아가는 코스다. 둘 다 주행시간은 거의 같았다. 그렇다면, 갈 때는 짧은 루트로 가고, 올 때는 조금 돌아오는 코스로 와야겠다.(베트남과 세부에서 구글맵을 사용했을 때, 오토바이 루트가 따로 검색이 되었고, 아주 잘 사용했다. 트래픽이 심한 동남아에선 자동차 보다 오히려 빨랐으나, 이때는 최악의 루트 선택이 되었다.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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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다소 늦게 나와 먹고 출발을 하니 이미 1시 30분이 넘었다. 해가 뜨거운 게 문제지 시간은 그리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 가즈아. 구글맵을 확인하고 이제는 익숙해진 길을 달려갔다. 드디어 왼쪽으로 진입하는 산악로가 보인다. 오, 여긴 비포장도로에 완전 산으로 들어간다. 오스메냐픽이 산 정상이니 당연한 거겠지. 좀 더 진입하니 상가들이 점점 없어지고, 주택들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여기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여행을 하면 항상 익사이팅 한 것들을 찾아다니고, 가끔은 미친 짓(?)도 잘 하는 나지만, 모알보알에서 오스메냐픽을 오토바이로 가는 분이 있다면, 꼭 돌아가는 루트를 택하길 바란다.(루트는 사진을 확인.) 나는 대한민국 해병대다!, 내가 유디티다! 나는 육군 병장 만기 전역병이드아! 라며 곧 죽어도 숏컷을 택하겠다라는 분이라면 말리진 않겠다. 다만, 절대 혼자는 가지 말길 바란다.


한국에서 산악오토바이를 즐기거나, 적절한 오토바이(적어도 택트는 절대 아니다.)를 빌렸다면 오히려 추천해주고 싶은 루트다. 하나, 택트를 타고 도로상황도 모르고 간다면 나처럼 된다. 10분가량은 달릴 만한 길이었다. 포장된 곳도 있고, 비포장도 있고 전형적인 산길이었다. 우둘두둘한 길을 게임하듯 요리조리 피해 가며 올라갔다. 한데 점점 민가는 사라지고, 돌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속도를 전혀 낼 수 없는 길이었다. 땅에 박힌 돌들이 아니라 주먹만 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길이 시작됐다. 경사도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인지 아니,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돌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왜 이때 돌아 내려갈 생각을 못 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정신 차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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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0분가량은 다소 즐겼던 거 같다. 재미있었다. 못 올라갈 것 같은 길을 나의 택트와 나의 드라이빙 스킬(?)이 이걸 해내고 있었다. 사실 올라오는 30분가량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사람들도 만났다. 실제 거주민들인 거 같았다. 나 혼자 반갑게 인사도 나누며(그들은 날 너무 신기하게 쳐다봤기에) 그렇게 첫 번째 언덕에 도착했다. 뷰가 끝내준다.


여기가 오스메냐픽이 아닌가 싶다. 굳이 오스메냐픽을 안 가도 될 것 같은 광활한 자연이 내 눈앞에 오롯이 나에게만 펼쳐졌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즐기는 자연의 선물에 뿌듯함과 벅차오르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몸을 휘감고 사라지는 바람의 청량감 또한 최고의 옵션이었다.(아마 이 때문에 이 미친 드라이빙을 계속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준비를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코스이기도 하다.) 올라오는 길에 살짝 흘린 땀을 이렇게 날리며 다시 드라이빙을 시작했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어제 내린 비로 젖은 땅과 구르는 돌들은 나와 내 오토바이가 이 산을 더는 올라갈 수 없게 막았다. 바퀴가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보다 헛바퀴를 도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땀이 흘러나오고, 엔진이 점점 과열됨을 느꼈다. 그렇게 30분 이상을 더 달린 거 같다. 끝도 없어 보이는 언덕을 오르던 중 그렇게 사달이 났다. 구르는 돌을 밟고, 오토바이가 1초 간(체감 상 3초. 부우우우우웅. 일케요.) 하늘을 날며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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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왼쪽은 절벽인데 오늘 쪽으로 넘어져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토바이는 다행이 전혀 파손이 없었다. 일단 오토바이를 세우자. 정말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오토바이를 세웠다. 바닥이 돌이라 계속 미끄러져서 세우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시동을 걸어보자, 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십여 차례 시도를 했으나 시동이 걸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좋았는데, 광활한 자연은 그대로인데 민가도, 사람도, 낯빛 하나 바뀜 없이 오롯한 자연을 바라보는 나는 오롯할 수 없었다. 이 광활하고 그대로인 자연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맵을 확인해 보니 채 절반가량을 왔을 뿐이다. 이럴 수가. 이미 1시간 이상 주행을 했는데 어떡하지.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생각이 들다니 정말 늦은 후회였다. 슬리퍼를 신은 발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오토바이와 함께 1초 간 공중부양을 즐긴 대가로 무릎과 발목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아.. 막을 수 없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려 보자. 자동으로는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 수동으로 걸어야겠다. 한 번, 두 번. 될 것 같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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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는 안도감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길을 먼저 확인해 본다. 잘 생각해보자. 1시간 이상 달려서 절반가량을 왔다. 실제 주행시간은 1시간 30분 여 였다. 그럼 저 끝이 없어 보이는 언덕을 넘으면 아마도 포장도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2시간 이상 남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 가자. 두려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렇게 끝이 없어 보이는 언덕을 올라갔다.(이하 골고다 언덕) 더 이상 주변 경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하며 10여 분을 더 올라간 거 같다. 골고다 언덕의 끝이 보인다. 해냈다. 자연 경관이 다시 달라 보인다. 나라는 놈이 간사한 건지, 인간의 본능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그래. 벽에 X 칠 할 때까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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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돌산은 이어지지 않았다. 비포장도로였지만, 흙으로 덮인 아주 훌륭한(?) 도로였다. 골고다 언덕을 넘고 나니 사람도, 민가도 심지어 학교도 보였다. 묻고, 물어 에스메냐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오래지 않아 포장도로가 나왔다. 엄청난 희열이 몰려왔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달려 간 도로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드라이빙이었다고 하면 과할까? 느낌만은 그러했다. 정말 즐겁고 신나게 모든 것에 감사하며, 지금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오스메냐픽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도 주차비가 있다.(주고 싶은 만큼. 다녀와서 20페소를 주었다.)


(한국 돌아오기 전날 폰을 잃어버려서 오토바이 루트를 찾을 수가 없다. 현지에서 검색하면 루트가 나온다.)


주차를 하고 슬슬 올라가 본다. 작은 입구가 보인다. 입장료(잘 기억이 안 난다. 40-50페소쯤?)를 내고 들어가려는데 기념품들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팔찌도 있다. 오, 아주 예쁘다. 75페소에 하나 사서 손목에 차고 올라간다. (이건 한국에서도 사용 중이다. 맘에 든다!) 좋다. 산은 완만했다. 크게 어렵지 않게 20분 남짓 걸어서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멋있었지만, 사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음엔 나도 꼭 텐트를 가져와서 1박을 하리라 다짐했다. 정상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셀피를 정말 찍지 않는 나지만, 사진이 한 장 찍고 싶어졌다. 개고생했다. 수고했다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인생샷이 떴다!)


남부 여행 중 유일한 셀카


사진을 한 장 찍고, 주변 경관을 음미하며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잠시 책을 읽었다. 영민 누나가 한국에 가며 주고 간 선물이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그 외 단편 3편이 더 들어있었다. 문학보단 비문학을 좋아하지만 왠지 똥폼을 잡고 감상에 젖고 싶었다. 벤자민 버튼은 이미 읽어봤고, 영화로도 봤기에 수루룩 넘겨가며 본 후, 다른 단편들을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네 개의 주먹" 한 남자가 생을 살아가며 네 명의 사람에게, 네 번의 주먹을 맞은 후, 자기성찰과 깨달음을 얻는 내용이다. 난 이미 주먹을 다 맞은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오늘도 그렇게 늘 그렇듯 준비 없이, 몇 번째 주먹인지 모를 주먹을 맞고 인생을 돌아보았다.(만날 돌아만 본다. 앞은 언제 보냐.) 돌아갈 시간이다. 산을 내려와 주차비를 지불하고 돌아갈 길을 확인했다. 아마 1시간 이내로 어두워질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대략 1시간 30분.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바닷가의 큰 길에 진입해야 한다. 서두르자.


돌아가는 30분가량은 별다른 일이 없었으나 생각보다 해가 빨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 길을 달리고 있으니 괜찮다. 구글맵을 확인하며 그렇게 달리던 중. 경로를 벗어났다. 음.. 이 길이 아닌가 맵을 다시 확인하고 오토바이를 돌려 경로에 다시 들어섰다. 한데, 길이 골목으로 들어간다. 길이 너무 좁은데 여기가 맞나. 재차 확인해보지만 이 길이 맞다. 좋아. 그럼 가자. (그렇게 다시 한번 나의 강렬한 생존 욕구를 확인한다. 하아...ㅋㅋㅋ) 도로 상태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반복했지만, 올라온 길에 비하면 정말 감사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기름이 1칸 밖에 남지 않았는데 핸드폰이 되지 않는다. 어두워진 길, 지나다니던 오토바이도, 사람도 없어진 이 길을 나 혼자 달리고 있다.


분명 민가는 있었던 거 같다. 단지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람이 있었으면 더 무서웠을 것 같다. '날 위협하면 어떡하지?', '일부러 장난치려 엉뚱한 길을 알려주면 어떡해.' 매일같이 열심히 본인의 삶을 살아갔을 저 선량한 사람들을 내 안의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마음대로 재단하기 시작했다. 머리에 가득한 걱정, 두려움과는 달리 내 몸은 사람이 나타나면 다가가 길을 묻고 있었다.


"이 길이 모알보알로 가는 길이 맞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응, 이 길로 가면 돼."

"아니, 이 길 아니야. 반대로 가야 하는데."


묻는 사람마다 답변이 다르다. 하아.. 난 분명 바다로 가야 하는데,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어렵게 사람을 찾아 물어도 기대하던 공통된 답변은 돌아오지 않는다. 분명 맵으로 이 길임을 확인했고, 다른 길은 없었다. 이 길이 맞을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길을 달려간다. 민가도, 사람도 사라지고, 기름도 사라져 바늘이 점점 빨간색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민가라도 나와야 기름이라도 살 텐데' 오늘은 일이 꼬인다.


갑자기 지나간 날들의 무섭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무인도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낸 기억, 산 길에서 미끄러져 절벽으로 떨어질 뻔했던 기억, 심지어 군대에서 행군한 기억까지.(이거 진짜 힘들었다. 무식하게 군장을 너무 잘 쌌어..)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뒤엉켜 날 더욱 힘들 게 만들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나. 그래. 죽기야 하겠나. 이 길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가야지. 그냥 가자. 그렇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산 길을 기술에게도,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그 길을 그렇게 갔다. 어쩔 수 없어서 갔다.


주유등이 켜진지도 이미 10분은 지난 거 같았다. 그렇게 10분여를 더 달렸을까. 저 멀리 뭔가 보인다. 불빛이다! 민가들이다! 오! 살았다! 사람이 있다. 다가가 물어본다.


"나 오스메냐픽에서 모알보알 가고 있는데 이 길로 가면 되는 거 맞아?"

"어, 이 길 따라서 조금만 가면 큰 도로 나와 거기서 우회전하면 돼."


올레! 진심을 담아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마워. 나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이 친구가 막 웃는다. 나도 마주 보고 덩달아 웃는다. 기분 좋다. 뭔가 해냈다는 느낌보단 이 무식한 놈 너 이러다 한번 큰일 나겠다 하는 느낌. 오늘도 운이 좋았다. 신이 있다면 크게 도와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는 금방 나왔고, 오래지 않아 주유소를 찾을 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돈 내고 주유하는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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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내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떠올랐다. 그중 톰 행크스가 무인도에서 윌슨을 잃어버리는 장면. 어쭙잖은 마음에 그 당시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떠올려 보았다. 어떤 감정이 그를 지배했을까? 외로움? 두려움? 절망? 포기? 모든 감정이 다 휘몰아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사실은 망했다.) 여행이 너무 떠나고 싶어서, 이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온전하게 돌아오겠다는 포부로(라는 등의 여러 가지 굿 익스큐즈를 대며) 한 달여의 여행을 떠난 지 어느덧 4주가량 되었다.


본래 계획했던 프리다이빙 트레이닝은 끝내지도 못했고, 굉장한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어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태. 난 뭘 한 거지. 여행은 왜 온 거고 무엇을 기대한 거지. 거대한 실망감이 나를 전복 시킨다. 문득 생각이 든다. 참, 웃긴다. 내가 뭐라고. 피식거리는 웃음으로 잡생각들을 날려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니 씻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자. 그렇게 잠이 들뻔했다. 본능에 충실한 배고픔에 눈이 떠진다. 씻고 밥 먹자. 오늘도 타코가 당긴다. 샤워를 하고 오늘도 타코바로 향했다. 브리또 2개, 필슨 1병. 작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침대로 돌아와 시간을 보니 8시가 한참 지났다.


사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오스메냐픽이 아니었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바로 "모알보알 클럽!" 두둥. 사실 모알보알엔 변변한 클럽이 없다. 하나, 매주 토요일마다 문을 여는 클럽이 있으니 파낙사마 비치 드게코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파시타스" 였다. 뭐, 말이 클럽이지 그냥 길바닥에 음악 틀어놓고 노는 수준이지만 여길 꼭 가보고 싶었다. 파시타스는 좀 더 있어야 핫(?)해지는 시간이 되니 오늘 밤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기로 한다.


좋아. 조금만 자자.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클럽을 가겠다는 의지로 꿀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을 잔 걸까. 눈을 떴으나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단 시간을 확인하자. 2시. 응? 내 눈을 의심. 2시!!? 망했다. 9시쯤 잠들었는데 새벽 2시라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김장할 때만 쓰는 거라 들었던 포기를 들이 마셨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다. 졸려 죽겠는데 그냥 자자. 내일은 세부로 돌아가는 날이다. 6일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세부 남부 여행을 이렇게 마친다.


비용 정리.


아침 - 미국조식 120페소

점심 - 그린카레 150페소. 보틀 오브 워터 20페소.

오스메냐픽 입장료 - 40페소

주차비 - 20페소

팔찌 - 75페소

저녁 - 타코바 - 150페소


주행거리 - 약 125km

주행시간 - 약 5시간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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