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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오들오들 카와산 캐녀닝 (feat. 50cc)

본격 사진 없는 여행기의 시작

by 우주

본격 사진없는 여행기의 시작.


다섯째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부터 도라와 제니퍼가 캐녀닝을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덩달아 같이 잠에서 깨지만, 난 인사만 하고 이내 다시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방이 다소 덥다. 온 몸을 배배 꼬며 기지개를 켜본다. 8시가 넘었네. 창 밖을 보니 날씨가 좋다. 비치 베드에 누워야겠다. 책과 아이패드를 들고 나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든다. 잠시 누워 생각에 잠긴다. 오늘 하루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잉여로움의 풍족함을 느낄 것인가. 무언가를 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다.


조그마한 섬의 리조트에 들어 앉아 있었다면 아마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나, 세부 남부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고 아직 캐녀닝을 하지 못했기에 고민이 든다. 내일은 다시 모알보알로 올라가야 할텐데, 숙소에 가서 캐녀닝을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 캐녀닝을 하러 가자.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의 귀찮음을 감수하고 도라와 제니퍼를 따라 나설 걸 하는 미련이 생긴다. 이미 지나간 것 또 다른 하루가 있겠지. 하루를 시작해보자.


결정했으니 빠르게 움직이기로 한다. 먼저 숙소를 검색했다. 캐녀닝을 하고 모알보알까지 바로 올라가긴 힘들 것 같고, 하루쯤 모알보알과 오슬롭의 중간 지점에서 묵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해변가의 숙소를 검색하고 밤부비치 하우스를 찾았다. 말라부욕에 위치해 있어 캐녀닝도 그리 멀지 않고 중간에서 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변에 개인실, 수영장까지 갖췄는데 가성비도 뛰어나다.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을 하고, 샤워한 후 가방을 싸서 체크아웃을 했다. 도라와 제니퍼는 돌아오면 내가 숙소에 있을 것이라 생각할테니 페북 메신져를 통해 행선지를 알렸다. 오늘은 카와산 캐녀닝을 즐기고, 오스메냐픽(세부 최고봉)에 올라 일몰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숙소를 나서니 9시가 넘었다. 배가 고파온다. 어제 영민누나를 수밀론섬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식당이 생각난다. 브런치를 먹기로 한다.


해변을 끼고 익숙한 길을 달려 웨일샤크와칭 장소 근처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여긴 뷰가 참 좋다. 어제는 리엠뽀를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은 너무 헤비하지 않은 음식이 땡긴다. 그래 찹수이 너로 정했다.(이 날 먹은 찹수이는 인생 찹수이였다. 찹수이는 필리핀식 야채볶음요리. 찹수이를 좋아하는 분에겐 강추) 찹수이와 스프라이트를 주문하고 바다를 구경했다. 음식이 금방 나왔다.


찹수이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양이 엄청나서 여성 2분이 먹어도 충분하리라 본다. 야채와 해산물이 같이 나왔는데 새우가 정말 맛있었다. 먹어본 중 최고의 찹수이에 최고의 가성비였다.(180페소) 간단히 끝내려던 브런치에 공기밥을 하나 더 추가해서 와구와구 먹어댔다.(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새우만 다 건져먹음) 행복하게 식사를 마치고 오늘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드라이빙을 즐기며 40-50분을 달려 오늘 숙소에 도착했다. 다소 일찍 도착했기에 짐만 맡기고 바로 캐녀닝을 하러 갈 예정이었는데 방을 바로 내주겠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방은 1인 침대 2개, 2층 침대가 1개로 무려 4개의 침대가 있었다. 정말 저렴하다. 조경도 잘 되있고, 식당도 좋고 수영장도 생각보다 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동욕실과 화장실이지만 그래도 맘에 든다. 저녁에 돌아와서 수영을 즐겨야겠다.



필요한 짐만 챙기고 미리 슈트를 입고 출발했다. 25분 여를 달려 카와산 폭포를 지나고 캐녀닝 업체들의 수 많은 러브콜(?)을 물리치고, 캐녀닝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저 앞에 라이프재킷을 입고 어딘가로 향하는 오토바이 무리가 보인다. 찾았다. 쫓아가면 되겠다. 오토바이를 따라 우회전을 하여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약 20여분을 달려 입구에 도착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매표소가 보인다.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올라오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매표소로 가서 캐녀닝을 하고 싶다고 얘길 해본다. (이때는 가서 흥정을 하고 무리에 낄 수 있을 줄 알았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나 장비 다 있어. 저기 있는 아무 무리에나 나 껴주면 안될까?"

"너 혼자 온거야? 가이드 있어야 돼. 라이프재킷이 없네? 신발도 슬리퍼잖아."

"아쿠아슈즈 신고, 라이프재킷 챙겨서 가이드랑 같이 와야 돼."


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간다. 매표소 반대편에 건물이 있고, 사람들이 보인다. 라이프 재킷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 크루에 껴달라고도 해봤으나. 이 입구까지 올라오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업체를 통해서 와야만 캐녀닝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걸 모르고 난 뻘짓을 한거다.


다행히 잠시 후,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 자기 크루에 껴주겠다며 따라 오라고 한다. 난 그렇게 그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갔다. (이렇게 1시간을 날렸다. 카와산 캐녀닝은 숙소에서 예약하고 오는 걸 추천한다. 실제로 입구에서 얘기하길 입장료가 200페소, 가이드비가 800페소라고 한다. 가이드비는 조절 가능하리라 본다.) 업체에 도착하니 1,500페소를 달라고 한다. 응? 날 호갱 취급한다. 모알보알에 있는 숙소에서도 캐녀닝은 1,400페소에 운영하고 있었다. 협상을 시작해본다.


"나 장비도 다 있고 우리 숙소에서도 1,400페소야. 내가 여기까지 왔잖아. 나 1,000페소에 해줘."


사장 이하 직원 일동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얘기한다.


"1,200에 해줄게."

"노! 1,100페소! 딜?!"


오키. 힘겨운 뻘짓을 끝내고 1,100페소에 하기로 한다. (아쿠아 슈즈가 없어서 100페소에 빌리고 결국 1,200페소에 했다.) 내가 200페소 아끼자고 여기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왔나, 깊은 자괴감이 몰려온다. 심호흡으로 심신의 안정을 꾀하며 같이 캐녀닝을 즐길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마닐라에서 온 2쌍의 커플들이다. 자, 이제 진짜로 가보자.



드디어 캐녀닝을 즐기러 다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매표소의 직원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고(말을 하진 않았지만 올라간 입꼬리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사서 고생한다 라는 듯했다.) 다시 한번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애써 무시하며 안내를 듣고 출발을 한다. 출발하기 전에 우산을 빌려주는데 챙겨가질 추천한다. 매표소를 지나 실제로 캐녀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약 30여분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가는 길은 그늘이 없는 산길이었다. (우산을 안 썼으면 난 아마 캐녀닝을 하기 전에 탈수증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산길은 험하진 않았으나 완만한 언덕을 계속 올라가야 했다. 이미 슈트를 입고 온 나는 엄청난 후회를 했다. 정말 땀을 한바가지를 쏟고 나서야 첫 휴식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잠시 쉬고 이번엔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거의 다 왔다. 업체에서 라이프재킷에 물을 한통 챙겨준다. (난 캐녀닝 시작하기 전에 이미 다 마셨다. 진짜 쭉을 뻔..)


그 물을 마시며, 천신만고 끝에 계곡에 도착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도착하기 전, 가이드에게 허락을 구하고 물에 몸만 담그고 있기로 한다. 계곡물은 예상대로 엄청 차가웠으나, 지금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물 위에 몸을 띄우고 하늘을 바라보니,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가 저절로 떠오르며 쓴웃음이 낫다. 그렇게 혼자 소리없이 웃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도착했고, 캐녀닝을 즐기기 시작했다. 30분은 즐거웠고, 나머지는 너무 추웠다. 1.5미리 슈트를 입었으나, 추워도 너무 추웠다. 3미리는 입어야 안 추울 것 같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동동 떠다니기도 하고, 점프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헌데 일행 중 한명이 반바지에 나시를 입었는데, 청색증이 나타나는 등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구를 배려하여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캐녀닝을 진행하게 되어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소모되었다.


나도 추위를 많이 타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15미터 점프만 남겨 놓은 시점에선 이미 7시가 다 되어갔다. 오스메냐픽은 오늘 갈 수가 없었고, 밤이 너무 어두워져서 돌아가는 길이 다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카와선 캐녀닝은 이렇게 고생으로 시작하여, 고생으로 막을 내렸다. 커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난 먼저 업체로 돌아왔다. 집으로 갈 시간이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어둠이 진하게 내려 앉은 탓에 꽤나 고생을 했으나,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남부를 여행하며 느낀 것은 해가 생각보다 짧아, 밤이 일찍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항상 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타입인데 오토바이 여행의 밤은 다소 두려움을 준다.(이 두려움은 내일 오스메냐픽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또 쭉을뻔.) 샤워를 하고 나오니 급격한 피로감과 공복감이 몰려온다. 밥을 먹자.


식사는 대체로 무난했다. 밥을 먹으며 오늘을 돌아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결과적으로 200페소를 아끼자고 쇼를 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나 처럼 사서 고생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캐녀닝은 예약하는걸로!) 수영을 하고 싶은데 몸은 자꾸 쉬자고 한다. 그래. 내일을 위해 쉬어주자.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지나간다.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내일이지만 이때는 몰랐지..)


비용 정리.


점심 - 인생 찹수이 180페소, 스프라이트 40페소
카와산 캐녀닝 - 1,100페소, 아쿠아슈즈 100페소

저녁 - 뭘 먹었지? 200페소.


주행거리 - 약 103km

주행시간 - 약 2시간


다음 이야기.

마지막 - 대망의 오스메냐픽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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