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제주도 여행

엄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by 라프

얼마 전부터 엄마는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쉬운 엄마, 앞으로 엄마의 로망은 아들딸들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했던 엄마다. 30년 이상 테니스를 쳐 왔기에 건강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아파 그렇게 좋아하는 테니스도 못 치는 상황이 오니까 엄마가 하루라도 젊을 때 여행을 부지런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설 연휴에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월화 수요일은 설 연휴여서 토요일부터 비행기를 알아봤더니 역시 연휴 기간이라 왕복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연휴가 시작되기 전 평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아직 저렴한 항공편이 있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박 5일 제주도 여행이 일정이 정해졌다.



평소 엄마와 워낙 자주 싸우고 다투었기 때문에 엄마가 무언가 내게 얘기를 하면 눈을 보고 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 때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 보기로 했다.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기, 함께 있는 시간 외에 최대한 다른 일정을 만들지 않기 등.


또 한 가지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엄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우리 딸과 하는 거라면 엄마는 뭐든지 좋아'라고 얘기하는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을 찾는 여행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엄마가 해 보고 싶은 것, 체험하는 것을 몇 가지 여행에 넣어 보기로 했다. 여행 시작 전에 에어비앤비 체험으로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고, 엄마에게 세 가지를 고르라고 했다.


1. 은반지 만들기

엄마가 첫 번째로 고른 것은 은반지 만들기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꽃꽂이 자격증도 있는 엄마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한다. 여행 첫째 날 아침 제주도에 도착해 렌트를 하고 근처 채식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주얼리 공방으로 향했다. 카페와 공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호스트 분이 아주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알고 보니 원래 우리가 도착한 수요일은 체험을 쉬는 날인데, 엄마가 해 보고 싶다고 얘기해서 특별히 예약 일정을 잡아 주신 거였다.



각자 손가락의 크기를 재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체험할 때 주로 사용하는 굵은 은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는 얇은 반지는 만들 수 없냐고 물었다. 다행히 얇은 은반지도 있었고, 우리는 그걸 사용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따라 하기 쉽게 아주 상세히 알려 주셨고, 은반지를 만드는 내내 선생님과 엄마의 티키타카가 매우 좋았다. 물론 선생님이 엄마에게 아주 잘 맞춰주셨다. 공방에 있는 가구들이 몹시 독특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 아버님이 목수여서 대부분의 가구를 만들었다는 것. 집에 붙박이 가구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엄마는 수업하는 내내 선생님의 아버지를 소개해 달라고 서너 번 얘기했고, 선생님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ㅎㅎㅎ



은반지 안쪽에 글씨를 새겨주시는데 엄마는 본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겨 달라고 했다. 아가들 팔찌나 목걸이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새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웃으며 새겼지만, 왠지 마음이 짠했다. 엄마에게 전화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무언가를 늘 착용할 필요가 있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2. 가방 만들기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체험은 라탄 가방 만들기였다. 여행 셋째 날에 예약을 해 두었고, 첫 번째 숙소와 체험하는 곳의 거리가 60킬로미터 정도로 꽤 멀었다. 게다가 아침 10시 예약이었는데, 평일이라 출근 시간과 겹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2시간이나 걸렸다. 아침 7시 전에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한 우리는 내비게이션 어플이 알려주는 대로 갔다. 큰길을 피해 시골길로 알려주는데 사려니 숲과 말 농장 등 다시 찾아가지 못할 굉장히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차에서 엄마와 내 입에서는 계속 이어지는 멋진 풍경에 감탄사가 저절로 쏟아졌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라탄 가방 만들기 선생님과의 만남. 만들기가 시작되고, 역시 엄마 특유의 붙임성으로 선생님과의 티키타카가 이어졌다. 이번 주제는 제주도 귀촌과 교육 문제 등등이었다. 7년 전에 제주도 1년 살기를 하러 왔다가 제주도행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선생님. 지금 살고 있는 집과 펜션 3채를 남편 분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제주도 땅값이 많이 올랐다는 말에 몇 년 전 제주도에 왔을 때 땅을 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 물론 엄마는 그때 제주도에 땅을 사서 현금을 안 가지고 있었더라면, 당시에 유학 간 동생이 엄청 힘들었을 테고, 엄마가 빌려준 내 빚도 전혀 못 갚았을 거라고 얘기했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라탄 가방 만들기가 끝이 났다. 나는 집에 필요한 라탄 조명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기존에 정해져 있는 가방 바닥보다 조금 더 넓은 가방을 원했고, 수업 시작할 때 얘기했으나 선생님이 안 된다고 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엄마가 원하는 것을 얘기해 원하는 대로 바닥이 조금 더 넓은 가방 만들기에 성공했다.


3. 산방산 탄산온천

무릎이 아픈 엄마는 요즘 서울에서도 거의 매일 사우나에 가고 있다. 제주도 체험 리스트 중 유일했던 온천. 산방산 탄산온천에 같이 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거나 사우나실에 들어가면 숨이 막혀 오래 있지 못하는 나인데 탄산온천에는 다행히 완전 냉탕이 아닌 적당한 온도의 시원한 탕도 있어서 열탕과 시원한 탕 사이를 오가며 평소보다 오래 탕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2시간가량 엄마와 함께 온탕과 각자의 취향에 맞는 냉탕을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은 가져간 때타월로 열심히 빡빡 때를 밀었다. 거의 몇 년 만에 때를 미는 내 몸에서는 엄청난 굵기의 때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에는 엄마에게 등을 맡겼다. 엄마 역시 놀라워하며 등을 밀어주었다. 수영복을 미리 챙겨가지 못해 노천탕에는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서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의 강점을 분석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점 혁명'이란 책을 사서 챙겨갔다.

첫날 저녁 일찍 숙소에 체크인해서 쉬면서 엄마에게 강점 혁명의 있는 코드로 엄마의 강점을 분석해 보았다. 졸린 와중에도 엄마는 끝까지 해 냈고, 엄마의 다섯 가지 강점 테마를 마침내 찾아냈다. 다음 날 다섯 가지를 읽어줬더니 엄마는 매우 재미있어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4박 5일의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예전에는 엄마와 몇 시간 같이 있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 몇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말만 하면 싸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모든 말들에 가시 돋친 듯 날 선 말로 받아치며 날카롭게 굴었던 딸이다. 엄마는 애착이 많은 큰 딸인 만큼, 그렇게 날카로운 딸의 눈치도 많이 봤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한 번도 안 싸우리라 마음먹고 갔지만, 결국 한 번은 싸웠다. 해녀의 부엌이라는 공연과 식사가 있는 프로그램을 예약했다가 다른 곳으로 잘못 가는 바람에 공연을 못 보게 되었다. 늦게 도착해 공연이 끝나길 기다리는 과정에서 한 번 다툼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서 금방 풀어지긴 했지만, 그 한 번도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도 나도 꽤 편안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다음 여행 때는 좀 더 엄마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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