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동생과 함께 2박 3일 여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가면 좋을 곳, 그리고 여행 전문가 성주님에게 추천받은 곳만 몇 군데 정해 놓고 떠난 여수 여행. 이번 여행 때 엄마와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엄마의 자서전 쓰기다. 지난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준 선물이 있었는데, 엄마에게 60개의 질문을 하는 작은 책이었다. 엄마 혼자서 써 보길 바랬지만, 그날 이후로 책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이번 가족 여행 때 책 한 권을 완성해 보기로 했고, 여행 전날 가족 채팅방에 이번 가족 통화 때는 엄마의 자서전을 완성하겠다고 미리 얘기를 했다.
그리고 여행 둘째 날 아침. 가족 통화를 시작했고, 간단한 서로의 근황을 전한 뒤에 첫 번째 여행 장소인 순천만 습지로 이동하면서 엄마에게 자서전에 있는 내용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름 : 지나씨
신체 사이즈 : 상의 95 M 하의 28 발 사이즈 245
좋아하는 영화 : 완벽한 타인
좋아하는 색 : 흰색
좋아하는 계절과 날씨 : 4계절, 비 오는 날
요즘 기분은 어때?
A+야. 딸들이 와서 즐겁게 해 주니까.
요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무릎 안 아프고 예전처럼 촐랑촐랑 다닐까.
노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안 아프고 건강하게 여행만 다니면서 살고 싶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산티아고 순례길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은 게 있다면?
바이올린. 근데 손이 말을 안 들어
엄마의 취향 : 짬뽕, 탕수육 소스 찍어먹기, 비빔냉면, 커피, 찍어먹는 양념치킨, 맥주, 계란 반숙, 닭고기, 회는 된장과 와사비, 여름, 자유여행, 호텔에서 편하기 쉴 땐 쉬고 온 김에 다 보고 가는 여행.
어릴 때 자주 가서 놀았던 곳은?
학교 운동장 마당에서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놀았어.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조개껍질 묶어
학창 시절 별명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서 별명 같은 건 없었어.
학창 시절 좋아했던 연예인은?
남진, 나훈아
학창 시절 장래희망은?
체육 선생님
제일 자신 있었던 과목과 어려웠던 과목은?
자신 있었던 건 수학, 어려웠던 건 역사.
어릴 때 드시던 추억의 음식은?
6살 때 방앗간 할 때는 부자여서 쌀밥을 매일 먹었어. 그런데 망하고 나서는 쌀밥이 먹고 싶었지만 보리도 없어서 밀밥을 먹었어. 귀리처럼 길쭉하게 생긴 밥 있어.
젊을 때 하지 못해서 후회한 것이 있다면?
성공하려면 하기 싫었던 공부를 진득하게 했어야 했어.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할 때 말을 잘 들었어야 하는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
할머니 친구가 이모 옆집에 살았어. 이모가 자기가 소개해주는 사람 아니면 결혼하지 말라고 했거든. 이모 소개로 대구에서 만났어.
보자마자 결혼하게 될 것 같았어?
아니. 근데 그전에 선을 스무 번 넘게 봤어. 아빠 보러 갈 때는 어디 아픈 거 아니면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지.
프러포즈는?
처음 만난 날 아침 10시에 만나서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대구 곳곳을 돌아다녔어. 일주일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매일 만났지.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결혼하자고 하더라.
누가 먼저 반해서 따라다녔어?
서로 합의 하에 만났지. 합의하고 보니 너네 아빠 온 동네에 썸씽이 많더라고. 주변에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그때 좀 괜찮았지, 서울 사람이기도 했고. (웃음)
기억에 남는 데이트가 있다면?
멸치 잡아서 빙어튀김처럼 해 준 데가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
아빠의 매력 포인트는 뭐였어?
없었어. 돈 많은 집 아들이라서 한 거야. (ㅋㅋㅋ)
우리 태몽은 뭐였어?
막내는 아들 낳으려고 했는지 벼 사이로 뱀이 휙 지나갔어.
우리 임신한 거 알았을 때 어떤 생각했어?
첫째 때는 세계 최고 천재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둘째 때는 또 딸이구나 싶었고, 셋째는 또 딸이면 어쩌지 했는데 아들을 낳고 기분이 괜찮았어. 사실 엄청 좋았어.
우리 배속에 있을 때 뭐가 가장 먹고 싶었어?
입덧이 심했어. 첫째 둘째 때는 멍게만 먹으면 입덧이 사라졌고, 막내 때는 비빔 쫄면을 먹으면 입덧을 안 하더라고.
우린 어떤 아기였어?
애들 다 착했어. 말 안 들으면 맞으니까. (ㅎㅎㅎ) 엄청 잘 먹었어. 귤 한 박스 사면 이틀이면 없어지고, 오렌지 8kg도 금방 사라지고, 김치도 많이 없어졌지.
우리 키우면서 미안했던 건 없어?
많이 때린 건 미안하게 생각해. (왜 때렸어?) 아빠 몸이 아팠잖아. 다른 집은 아빠들이 잡아주는데. 건들건들거리는 걸 내가 싫어했어. 그래서 애들이 '저런 아빠 때문에 저렇다' 이런 말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많이 때렸어.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공부도 잘하고. 가장 평범하게 살아주는 거. 범사에 감사한 게 감사한 거야.
엄마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야?
금보다 중요한 존재.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항상 보고 싶지. 결혼해서 힘들 때 집에 혼자 있으면 엄마랑 매일 통화했어. 할머니 편찮으실 때 목욕을 자주 못 시켜드려서 죄송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꼭 하고 싶었지만 못 해 드린 것?
할머니 차멀미가 심해서 여행을 거의 못 갔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세 드셨다고 느꼈을 때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말씀하실 때, 어디 아플 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못다 한 말이 있다면?
좀 더 좋아한다고 얘기할 걸.. 왜 안 했을까.
우리랑 같이 해 보고 싶은 거 있어?
다리 안 아플 동안 맛집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고 싶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면 좋겠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 마음껏 펼치면서 살면 좋겠어. 혼자도 좋고, 둘도 좋고, 셋도 좋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면 좋겠어.
차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60개의 질문을 했고, 엄마는 신이 나서 대답을 해 주었다. 끝나고 나서 소감은 엄마는 질문해 주어서 고맙다 했고, 아이들 셋은 모두 엄마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재미있어 했다. 엄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니, 엄마가 하는 행동들에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죽은 후에 제사는 안 지내도 되니까 살아 있을 때 매달 한 번씩 같이 여행 가자고 했던 말, 무릎도 아픈 엄마가 테니스를 가르쳐 주고 있어서 무리되니까 계속 그만두라고 했는데, 왜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지, 어릴 때 왜 그렇게 우리 셋을 엄하게 키웠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고 물은 그 질문에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대답이 역설적으로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며 살아온 것'으로 들려서 왠지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2박 3일의 여수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