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포털에 갑자기 박원순 서울 시장의 실종에 관한 기사가 뜨더니, 오늘 아침에 시신을 발견해 안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루 전날인 8일에 원순 씨의 전 비서가 성추행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한다.
이런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원순 씨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00만 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또한 몇 년 전 노회찬 의원은 정치자금 몇천만 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자살했다.
사람들 마음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와 같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뒤 검거되어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을 죽인 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에 평온함이 묻어 있고 오히려 당당해 죄책감이란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처음에 한번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가슴이 요동치고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지만 여러 번 같은 일을 저질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거나 심지어 그로 인해 더욱더 잘살게 된다면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죄책감, 양심의 가책 등은 점차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의원 그리고 박원순 시장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한 번의 잘못 혹은 잘못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모든 언론이 집중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삿대질함과 동시에 국민의 비판적인 여론을 받기 시작하면서 극심한 양심적 가책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이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언론은 애초에 대통령이 받은 걸로 기정사실화하여 집중 보도했다. 노회찬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과정이 드러났고 죽음 이후에 정치자금을 준 이가 의도적으로 속이고 전달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은 의혹을 제기했을 뿐인데 자살했다고 한다.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마음에 처음으로 깊이 공감했을 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언론과 포털의 댓글이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비판 속에 있을 때는 나를 감싸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체감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나를 감싸주는 그 사람조차도 나를 비난한다고 느낀다.
포털의 댓글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여당이 잘못한 건가?'
'여당이 이런 일을 꾸민 건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까지 여당 의원들이 하나같이 문제구만'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런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이 댓글을 통해서 얻고 하는 것은 여당에 대한 나쁜 여론을 만들려는 것인가? 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여당에 나쁜 여론을 만드는 걸 여당 스스로 할리는 없고, 그렇다면 여당에 나쁜 여론을 만들어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되는 개인 혹은 집단은 누구일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나는 SNS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노무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노무현은 노무현을 싫어하던 권력을 지배하던 집단으로부터, 그리고 그 권력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던 언론으로부터 또한 그 언론과 권력집단이 보여주는 대로 믿고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던, 그들이 '개돼지'라 치부하던 국민들(나를 포함한)로부터 한 발 한 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고, 결국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려 떨어지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절벽 앞 벼랑 끝에서 끝없이 다그치며 밀어부친 뒤에 그 사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떨어졌다면, 그것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노회찬 의원도 마찬가지다. 늘 바른말만 하고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을 시원하게 대변하던 정치인이었던 그를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원순 씨까지.
잘못이 없는 사람도 누구든 잘못한 걸로 만들 수 있다는 검찰과 검찰이 만든 잘못을 국민에게 알려 그들이 원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지난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60% 이상의 국민은 지금까지 잘못되었던 것들을 바로잡으라고 여당에 180석 이상이라는 힘을 부여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나는 여전히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언론이 저렇게 난리치는 거겠지'하고 생각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노회찬 의원까지 보내고 다량의 마약을 반입하다 걸린 홍정욱 의원의 (증거가 명확한) 딸은 집행유예를 받고, 표창장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의 사건을 보며
마약보다 무서운 표창장
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게 만들 정도로 우습게 돌아가는 검찰과 언론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노회찬 의원을 보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생각하고 지난 선거에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순 씨가 또 이렇게 떠나게 되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세빛 둥둥섬을 만들고, 동대문에 그럴싸한 건축물을 만들어 부동산 가격 올리는 정책만 해오던 정치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있지 않은 20대도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원순 씨라서 그렇다.
정말 내 생활 곳곳에 원순 씨가 실행했던 많은 것들이 도움이 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정책을 내놓을 그가 없다니 벌써 아쉽고 아쉽다. 원순 씨가 서울 시장을 그만둔다고 말하고 물러설 때까지 그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와 같은 사람이 다시 올 수 있도록 의미 있는 한 표를 또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듯하다.
#지켜주지못해미안해요 #원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