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가 학교에서 숙제나 글짓기 대회 같은 공식적이고 강제적인 상황에서 글을 쓰는 것 외에 나름은 자발적으로 처음 글을 쓴 것은 대학생 때였다. 학생회 활동을 했고, 방학 때 '가족'이란 키워드로 소책자를 만들기 위해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되었다.
가족…
선미에게 '가족'이란 단어는 결코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불안 #불행 #얽매이는 #자유롭지 못한 #함께하고싶지않은
온통 부정적인 단어들만 다 나열하면 되는 곳이 바로 선미에게는 가족이란 테두리였다. 선미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첫 번째 글쓰기가 바로 이때 시작됐다. 여러 개의 단어들을 조합해 하나의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들이 모여 다시 하나의 단락 그리고 글이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미의 것이 아닌 게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성을 담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엄마와 동생들. 그때 선미가 느낀 십여 년이 지나 글을 쓰는 그 순간까지 바로 어제 경험한 듯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감정들. 그것들을 컴퓨터 모니터에 꾹꾹 눌러 담았다.
처음 쓴 글을 여러 번 읽으며 고쳐 썼다. 고쳐 쓰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써도 되는 걸까? 실명으로 실리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고민하며 쓴 선미의 첫 글이 종이에 인쇄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A4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책이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가방에 책 몇 권을 구겨 넣고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아버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색하고 인사한 뒤에 곧장 지나에게로 갔다.
"엄마, 이거"
"이게 뭐야?"
"시간 될 때 한번 읽어봐. 내가 쓴 것도 있어."
다음 날이었던가. 지나는 선미가 건넨 책을 남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여보, 자기 얘기가 여기 실려 있네. 선미가 썼다네."
쓰고 있던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아버지는 선미가 쓴 글을 읽어 내려갔다. 다 읽은 뒤에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자 지나가 한 마디 했다.
"어이구. 그 거봐. 왜 그랬어."
선미는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과 '글'이란 매개를 통해 소통을 시도했다.
대학에 가기 전 선미가 고3 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는 시간 즈음은 늘 지나가 치킨 집 문을 닫고 정리를 할 시간이었다. 그때 가끔 아니 자주 선미와 지나는 맥주를 한 잔씩 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어떤지, 대학은 어떻게 할 건지, 치킨집에서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 피상적인 대화들을 주로 주고받았다.
선미의 가슴속 깊이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던 아픔이랄까 상처랄까.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어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글로써 처음으로 그렇게 소통을 하게 되었을 때 선미는 왠지 모를 기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쌓아 온 분노, 불만의 감정들을 글에 한 겹, 두 겹씩 발라 보여주고 그때의 상처를 드러내고 부모님들이 그것을 알아주자 쌓여있던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부터 선미에게 글쓰기는 선미의 마음을 대신 드러내 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그렇게 활동가로써 글 쓸 기회가 주어지면 쓰곤 했다. 그리고 첫 직장을 다니면서 선미가 쓴 유일한 글은 매달 고객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거의 전부였다.
첫 직장생활을 마친 뒤에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 1년간 매주 책을 읽고 칼럼 하나를 완성해야 하게 되면서 선미의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됐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쓸 수밖에 없었다. 매주 읽어야 하는 책을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이 건드리는 선미의 과거의 기억과 상처, 아픔들이 글이 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만, 선미가 써 내려가는 글들을 돈을 주고 사봐야 하는 책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일관성도 없고, 공감하기도 힘들고, 그저 선미의 과거를 가감 없이 토해내는 토사물과 같았다. 그렇게 2년간 선미는 많은 것들을 글 속에 게워냈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생활을 하던 선미에게 다른 삶이 펼쳐졌다. 선미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나타난 것이다. #명상이었다. 명상을 시작한 뒤에 4년간은 명상에 매진했다. 글도, 책도 모두 멀리한 채.
4년의 휴식기를 가진 뒤에, 선미는 문득 다시 글을 아니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4년 전과 4년이 지난 지금 선미의 글쓰기가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많이 변했다. 4년 전에 글을 쓸 때는 글을 쓰는 순간조차 글에 파묻혀 마치 글과 하나가 된 선미가 거기 있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는 선미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선미가 여기 있다. 조금 더 멀리서, 한발 떨어져 볼 수 있어 이전보다는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객관적인 글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어떤 감정이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때론 울림을 주기도 하는 문장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선미의 글은 선미의 성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아마 지금과 미래의 어느 시점에 선미가 쓴 글을 비교하면 과거와 지금의 글을 비교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과거에 선미가 쓴 글은 선미가 스스로를 비출 수 있게 해 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고, 지금의 글은 선미라는 존재 자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주어 선미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시간이 지나 선미가 조금 더 성숙하게 된다면, 그때는 선미의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지도 않을까? 선미를 선미답게 해 주는 것, 그리고 선미가 선미답게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선미가 쓰고 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