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by 라프

# 첫 번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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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우울증 같아. 정신과 상담 한 번 받아봐.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요즘 기획 중인 일로 SNS 전문가인 그녀의 도움을 받아볼 생각으로 나간 자리였다. 저 말을 듣고 화가 나지는 않았다. 친구도, 나도 이미 우울증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었고, 우울증인 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친구가 내게 직접적으로 저런 말을 할 정도라는 것은 그녀의 눈에 내가 엄청 걱정스럽게 보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친구가 1년 만에 만나게 된 다른 친구와 만나 80%의 시간 동안 내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뜨악했다. 이런 친구의 걱정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친구들을 걱정시키게 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가 나를 걱정하는 정도를 들어보니 내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가? 싶기도 했다.


친구는 내게 정신과 상담받아보라는 말 하려고 나왔다며, 다시 논문을 쓰러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가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글을 남겼다.


너한테 권하는 2권의 책이다
피로사회와 긍정의 배신
요즘 열심히 책 읽는 거 같은데 한 번 봐.

# 두 번째 시선

어느 금요일, 카페에서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가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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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를 사야겠어! 아이디어를 정리하기에 노트는 너무 작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문구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지 두 장, 테이프와 풀을 하나씩 사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기진 배를 대충 채우고, 내 방 한쪽 벽에 전지 두 장을 붙였다. 그리고 우선 머릿속에 있는 것들부터 하나둘 적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고갈되자 책을 꺼내어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몇 시간째 종이 앞에서 이것저것 하는 중에 엄마가 퇴근했다.


"딸, 오늘 웬일로 집에 있어?"라며 방문을 연다.

"응, 할 일이 있어서"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다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것 봐. 나 지금 사업 계획 정리하고 있어."

그러자 엄마는 종이를 쓰윽 보고 내게 한 마디 한다.

"이게 다 네가 쓴 거야? 잘해 봐~"

큰 칭찬도 아닌데 5살 꼬마처럼 엄마의 말에 으쓱해져서는 신이 나서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줘야 할 과년한 딸이 돈도 안되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어도, 엄마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가 내 노후는 책임질 거라고 점쟁이가 얘기했어."라며 지금 투자하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잔소리를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무슨 친구를 맨날 만나? 만나자고 하면 시간 있다고 무조건 나가지 말고, 니 인생에 도움이 될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고 만나. 네가 지금 그렇게 좋다고 만나도, 너 어려워져 봐라. 지금 만나는 사람 중에 도움 줄 사람이 있는지!"라고 오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해 주시곤 한다. 물론 엄마 말대로 살면 인간관계가 너무 삭막해질 것 같아 그 말을 믿고 싶진 않다.


# 세 번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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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게 무한 신뢰를 주고 계신 그분. 그분 덕분에 내가 꿈꾸고 있는 '아이디어 컴퍼니'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잘 해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매일 쉽지 않지만, 그래도 행복한 고민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물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내가 그분께 물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대답을 너무나 바로 해주셨는데, "모르지."였다.


아주 명쾌한 대답이다. 사실 나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은 어찌 알리오.

하지만 이럴 때면 가끔 엄마가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나곤 한다. "신치, 쟤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라는 말. 사실 내가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 고민으로 나올 결과물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일은 '나를 신뢰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믿고' 기회를 준다는 것.


이것이 진짜 아무것도 없는 내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보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일 뿐인데, 왜 내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이토록 다른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나를 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겠지만,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 봤다.


친구가 나를 불안하게 보고 의미심장한 책 두 권을 추천해 준 것.


보험영업을 할 때 나는 항상 내가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행복하고 만족하는 모습만 보이려고 애를 썼다. 영업을 하는 동안 실적을 맞추기 위해 지인에게 계약해달라고 부탁을 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있었는데, 부탁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이 친구였다. 그리고 부탁을 거절한 날 그 친구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날 이후 친구는 내게 더욱 강력하게 '일을 그만두라'라고 얘기했다.


얼마 전 고객들에게 보낸 메일에 대해서도 친구는 내게


행복하지도 않은데, 행복한 척하는 메일 좀 보내지 마.


라고 얘기했다. 사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메일을 보내던 당시에 나는 진심을 담아서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연구원 생활이었다. 친구의 대학원 공부만큼이나 내 인생에 중요한 시간이었던 지난 1년간의 연구원 생활. 얼마 전 친구에게 사부님 프로필을 보냈다가


사이비 단체 교주 구만?


이런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만날 때마다 내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나의 선택을 너무 뜬구름 잡는 것으로 보고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친구와의 만남이 뜸해지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가 하는 일들에 있어서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친구도 인정할만한 성과를 내기 전까지 하는 일들을 드러내지 않고 거리를 좀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역시 푸르덴셜에서 겪었던 나의 이중적 감정-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주는 게 좋으면서도 영업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친구와 다르게 생각한 점은


비록 돈은 못 벌고, 오히려 빚만 잔뜩 남겼어도, 어린 나이에 보험영업을 한 건 대단하고, 그 경험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라고 믿어 준다는 것이다. 연구원 생활에 대해서도 연구원 생활하면서 더 늘어버린 빚을 보고 잠시 '버럭'하긴 하셨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의 연구원 기간 동안 술을 멀리하고 매주 과제를 해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봐 주신 분. 지난 1년간의 시간만큼은 그동안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보여준 그 어떤 것보다 진솔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한으로 쏟아 주시는 그 신뢰가 내게 정말 큰 힘과 용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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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많이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이 더 다양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너무나 다른 시선을 느끼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삶에 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물론 상대방에 따라서는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너무 많이 흔들리지는 말자. 나는 나를 믿고 갈거니까.


2012년 5월 12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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