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순간으로 되돌아가기

유전체에서 초기 발생 과정을 예측하다

by 캬닥이

세상에 나온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아마도 분만실의 형광등 조명에 눈을 찌푸리며 첫 울음을 열었겠지요. 산도를 나오기 직전에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갓 태어난 아기들은 청소기 소리를 들으면 얌전해진다는데, 청소기 소리가 자궁에서 들은 소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그보다 뒤로 돌려봅시다. 우리는 귀는커녕 뇌조차 제대로 생기지 않은 세포 덩어리였습니다. 최초의 순간, 우리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난 딱 하나의 세포였고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우리는 우리가 되었을까요?

발생은 수정란이 개체가 되는 과정입니다. 사람 기준으로 지름이 0.2mm인 점 하나가 9달이 지나면 3kg짜리 아기가 되는 일입니다. 발생학의 역사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합니다. 워낙 신기한 현상이다보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여러가지 동물의 알을 뜯어보며 어디가 손이 되고, 어디가 심장이 되는지 관찰했습니다. 개구리 알이 어떻게 갈라져 두 개, 네 개의 세포가 되는지 확인했고, 달걀을 조심스럽게 깨서 반투명 막에 쌓인 배아가 병아리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쁜꼬마선충 같은 단순한 동물로는 알에서 시작해 세포 하나하나를 눈으로 따라가며 세포의 족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그나마 성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900개밖에 되지 않아 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1960년 Gosner가 연구한 개구리의 초기 발생 과정. 병아리는 따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족보. 수정란에서 시작한 세포는 분열하며 몸의 여러 부분을 구성합니다. 실제 족보는 이보다 더 자세한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왜 발생학자들은 동물을 연구했을까요? 근본적인 궁금함이야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였겠지만, 사람의 발생 과정을 직접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수정란은 밖으로 꺼내서 볼 수도 없고, 자궁 속에 들어있는 배아와 주변 기관을 세포 수준에서 보기도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쉽거나 사람과 비슷한 모델 동물을 통해 사람의 발생 과정을 넘겨짚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 동물은 생쥐입니다. 생쥐는 포유동물이니 예쁜꼬마선충보다야 인간과 가깝습니다. 하지만 한 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다태동물이라 인간과는 자궁의 구조부터 다릅니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꾸어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하되 발생 과정을 간접적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식의 얼굴에서 부모를 읽듯, 성체가 되어버린 제 세포에서 수정란 시절을 추측할 수 있을까요?

2021년 9월 21일자 학술지 네이처에 ‘체세포 돌연변이로 추측한 인간 초기 배아 발생 시의 클론 역학 (Clonal dynamics in early human embryogenesis inferred from somatic mutation)’ 이라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786-8). 연구진은 기증된 시신의 여러 조직에서 세포를 추출해 세포에 담긴 유전체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얻은 유전체 정보를 토대로 사람의 발생 과정을 역추적하는 데 성공했고요. 별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별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별이 어떤 성분으로 되어있는지 밝혔듯, 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수정란을 꺼내서 헤집어보지 않고도 발생 과정을 알 아낸 것입니다.


연구진이 사용한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은 세포의 유전체(genome), 세포에 담긴 유전 정보 전체를 통째로 읽어내는 기술입니다. 유전체에 유전 정보가 들어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떻게 발생의 비밀까지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답은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 라는 현상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몸 곳곳에서 추출한 세포의 유전체를 알아낸 후, 유전체에 담긴 돌연변이 정보를 바코드처럼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수정란 단계에서 수십억 개의 세포로 나뉘는 과정을 재구성했습니다.


체세포 돌연변이로 재구성한 세포 족보. 위 예쁜꼬마선충의 족보와 비교해보세요. Park et al, 2021.


수정란은 수 없이 분열하며 개체를 만듭니다. 세포 하나가 둘이 되는 동안, 원래 있던 DNA도 두 배로 복제되어 각각의 세포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DNA 서열이 한두 글자씩 틀리면 ‘돌연변이’가 됩니다. 돌연변이는 다음 세대 세포의 유전체에도 보존됩니다. 다음 세대 세포가 분열하면 이전에 생긴 돌연변이 정보도 두 배로 늘어나 각자의 딸세포에 들어갑니다.

수정란 단계에 돌연변이가 있었다면, 몸을 구성하는 세포 전부 돌연변이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세포를 붉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수정란에 생겼다면, 태어난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붉은 색이 될 거예요(수정란에 있는 돌연변이는 부모의 난자와 정자 중 하나에 있던 ‘생식 세포 돌연변이(germline mutation)’로, 세포 분열 중 생긴 ‘체세포 돌연변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수정란이 첫 분열을 하다가 한쪽 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겼다면 갈라진 세포 둘의 유전체가 달라집니다. 두 세포가 분열해서 몸을 구성한다면 얼추 절반에는 돌연변이가 있고, 남은 절반에는 돌연변이가 없을 겁니다. 다음 세포 분열에서 생긴 돌연변이도 몸을 구성하는 비중만큼 세포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요.

연구에서 알아낸 배야의 발생 과정 (카이스트 보도자료에서 발췌)


세포가 분열하며 돌연변이를 만듭니다. 세포 분열 과정은 지금도 수없이 계속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 몸은 돌연변이 투성이일텐데,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을까요? 유전체 정보는 상상 이상으로 방대하지만, 실질적인 생명 활동에 쓰이는 유전자 부분은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세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세포마다 담고 있는 DNA의 길이는 2 m가 넘습니다. ATCG 염기 개수로 세면 64억 개입니다. 이중 1-2%만이 3만 개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64억 개짜리 글자로 된 책에 의미있는 글자는 1억 개 정도인데, 글을 옮겨적는 과정마다 오타가 한둘 생기는 상황입니다. 웬만하면 큰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유전자는 익숙해도 유전체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맨 위 그림의 DNA의 색깔 한 줄이 염기입니다. 염기가 모이고 모여 염색체가 되고, 23쌍 염색체 전체가 유전체입니다.

경이로운 지점은 64억 개짜리 글자책을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입니다. ‘전장 유전체 서열 분석 기술’은 20년 전만 해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불리던 인류의 과제였습니다. 한 사람의 유전체를 해독하는데 전세계 과학자들이 10년 동안 달라붙었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발달해 개인의 유전체 서열을 10만원 정도면 분석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쓴 연구진은 한 사람 유전체를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 각각의 유전체를 분석한 후 한두 글자 차이를 잡아낸 것이고요. 이만큼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돌연변이를 바코드로 사용해 발생 과정을 역추적’하겠다는 발상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전체 정보 속 체세포 돌연변이는 어떤 발생의 비밀을 알려주었을까요? 논문 중 알기 쉬운 지점만 요약했습니다.


돌연변이는 발달 초기에 제일 많이 생겨납니다. 세포 분열이 지속될수록 돌연변이 발생률은 떨어졌습니다. 최초의 분열에서 돌연변이가 4개 정도 생겼다면, 4세포기 이후부터는 분열 한 번에 돌연변이 한 번 정도만 일어났다고 하네요. 연구진은 발달 극초기에는 수정란의 유전체가 완전히 활성화하지 않은 탓에 돌연변이를 수리하는 메커니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초기 분열하는 세포 중 몸이 되는 부분은 절반도 안 됩니다. 수정란이 세 번 분열하면 2세포기, 4세포기를 거쳐 8세포기에 이릅니다. 이 단계의 8개 세포 중 3개 정도만 몸을 구성하고, 나머지 세포는 태반 등 아기를 보조하는 부분이 됩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마다 8개 세포 중 어느 세포가 몸이 되는지가 다 달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복잡한 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세포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매번 같은 양상으로 분열하는 개구리 알이나 세포의 운명이 정해진 예쁜꼬마선충의 족보와 대조적이죠.

초기 발생 다음 단계에서도 세포는 골고루 분열하지 않았습니다. 발생 초반에 분열을 빠르게 해서 몸 이곳저곳으로 불어나는 세포가 있는 한편, 필요한 만큼만 분열해서 비교적 동질한 세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부를 구성하는 세포는 다양하지만 간이나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는 종류가 비슷합니다. 인간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온 선조(수정란)를 두었지만, 어떤 지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한편, 비교적 민족 단위로 모여 사는 지역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착수한 시절, 사람들은 유전정보를 해독하면 생명의 비밀도 밝혀지리라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유전체 정보만 확실히 알면 그것을 토대로 사람을 조립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런 결정론적(?) 기대도 ‘유전체 정보가 전부가 아니다’는 후성유전학의 발전으로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유전체 분석 기술은 꾸준히 발전했고, 덕분에 인류는 다른 관점에서 생명의 비밀을 풀어가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기술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모릅니다. 병원에서 질병을 예측하는 데 쓰이는 유전체 분석 기술로 사람의 발생 과정을 되짚기도 하니까요. 연구의 최전선에 있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학자의 새로운 시도를 알아주고 응원하는 일뿐입니다. 연구진이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을 많이 하길 바랍니다. 산업적으로 활용되어도 좋겠지만, 생명의 비밀을 조금씩 풀어가는 재미도 다 같이 즐길 수 있으니까요.




원 논문은 이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쉽게 원하시면 카이스트 보도자료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Park, S., Mali, N. M., Kim, R., Choi, J. W., Lee, J., Lim, J., ... & Ju, Y. S. (2021). Clonal dynamics in early human embryogenesis inferred from somatic mutation. Nature, 597(7876), 393-397.


제 짧은 발생학 지식은 2020년 들었던 학부 발생학 수업이 전부입니다. 최고의 수업이었습니다.

Gilbert, S. F. (2000). Early development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In Developmental Biology. 6th edition. Sinauer Associates. (2019년에 12판이 나왔습니다)


대충 알던 지식을 확실히 하기 위해 찾아본 곳

인간 DNA의 길이

인간 유전체 중 유전자의 비율

인간 게놈 프로젝트

개인 유전체 분석 100달러 시대 (4년 전 기사니 더 싸졌겠네요)


이미지 출처

https://www.nature.com/scitable/topicpage/eukaryotic-genome-complexity-437/

https://www.virginiaherpetologicalsociety.com/amphibians/amphibian-development/amphibian-developmen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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