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준 만화와 읽힐 글

작가라는 정체성을 준 사람들

by 캬닥이

브런치에서 작가가 된 것을 환영한다는 메일이 왔으니 기념으로 정체성에 대한 글로 시작해본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브런치 작가로 넣어주었으니, 오랜만에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세상에는 스스로 정하는 정체성도 있다. 멍냥이를 사랑하는 사람, SF 독자, 콘솔 게이머 등은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이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정체성은 '작가 지망생'까지다. 작가란 누군가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줄 때만 비로소 되기 때문이다.


작가로 불린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살면서 시간이 넘쳐흐를 때 나는 만화를 그려 인터넷에 올렸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시작한 연재는 대학에 입학해서 중단되었다가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홀로 있을 때 재개되었다. 결국 취업 준비 시기에 완결되었다. 게임의 2차 창작이라 이제는 나도 이해하지 못할 드립도 많았고, 어릴 때 그려 '빻은 장면'도 있다 보니 스스로 보기에도 부끄러워 찾지 않는 만화다.


277F3542544A496205.png 그렇지만 인생 중 가장 그림을 열심히, 잘 그리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댓글에서 나를 작가라고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작가임을 자각한 때는 한두 해 지난 다음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트위터를 했다. 만화를 그릴 때와 같은 닉네임을 썼지만 TRPG(사람들과 탁상 위에서 셀프 예능을 찍는 게임)를 하기 위해 만든 계정이라 TRPG에 관심있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었다. 어느 날 닉네임만으로 나를 찾아낸 어느 분이 내게 왜 만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는지 물어봤다. 그 트윗을 보고서 TRPG로 만난 트친이 트윗을 올렸다. '세상에, 누구 님이 무슨무슨 만화 작가셨다니! 예전에 엄청 재밌게 봤었는데!'


누군가에게 작가로 불릴 수 있음을 깨달은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가 그린 무언가를 작품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벽돌공 이야기가 있다. 벽돌공 세 명이 벽돌을 쌓고 있었다. 첫 번째 벽돌공에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으니 벽돌을 쌓고 있다고 했고 두 번째 벽돌공은 돈을 벌고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 벽돌공은 그 질문에 신에게 바칠 성당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직업을 가졌어도 정체성은 마음먹기 나름이란 이야기다.


자기계발서에는 이 이야기를 같은 일을 해도 얼마나 성공할지는 자기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세 벽돌공이 혼자 일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적어도 세 번째 벽돌공 옆에는 일을 응원하고 새로 지을 성당을 기대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성당에서 기도할 사람 없이 벽돌을 쌓는 사람은 벽돌 쌓는 이상의 정체성을 자신에게 삼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정체성은 절대 마음속 독백으로만 생기지 않는다.

construction-257326_1280.jpg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내 글이 심심한 누군가의 시간을 채워준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거기에 마침 그의 삶에 맞는 이야기를 해주어 도움이 되고, 나나 그 스스로에게 물을 질문이 생긴다면 다시 불릴 작가라는 정체성에 그만큼 보람된 일도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매일 크로키 한 달 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