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하는 과학 글쓰기

욕심은 버리고 쓰고 싶은 글을 쓰자

by 캬닥이

작년 말에 APCTP에서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스쿨을 수료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글쓰기 및 프레젠테이션에 능숙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는’ 자리였다. 당시 석사 3학기차였던 나는 연구실을 쉬며 ‘연구를 하지 않으면서도 과학 언저리에 머물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과컴스쿨은 존재만으로도 희망을 주었다. 몇 명 안 되는 합격자 목록에 들어갔을 때는 당장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사흘 간 과학과 컨텐츠 전달을 아우르는 강의를 들었다. 밤을 새며 실습에 옮겼다. 고작 사흘이었지만 체감 상 일주일은 지난 양 밀도가 높았고, 그마저도 좀 더 했으면 싶을만큼 재밌고 유익했다.


apctp.jpg 여기서 쓴 글을 조금 고쳐서 브런치에 올리기도 했다 (https://brunch.co.kr/@playkids55/36)


하지만 과컴스쿨은 막연히 꿈만 꾸던 나에게 뼈 아픈 교훈을 남겼으니, 세상에 딱 맞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니, 과학에 대한 글을 쓰면 용돈 정도는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생각보다 어려운 직업이었다. 그들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나처럼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일 하리하라 작가에게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과학 글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눈에 재미있어야 한다. 과학 선생님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다. 국어 선생님이 이해할 글이여야 학교 추천 도서가 된다는 농담이었지만,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은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 책 읽고 교양 쌓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글은 독자를 고려해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해서 글을 쓰고 출판해도 과학 전문 서점 책장에나 박히지, 독자의 손에 들어가지 못한다.


당신의+‘진화’는+틀렸다_font-1.jpg '진화' 용어에 오해가 많으니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는 도발적인(?) 주제였다. 함께 열심히 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때도 '과학'은 충분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은 충분하지 못했다.


쓰고 싶은 글만 써오던 나는 그 이야기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은 소용이 없다. 과연, 내 글에 달리는 극소수의 댓글이라고는 대학원생의 서글픈 공감뿐이었다. 문과 전공의 친한 동생을 데려와 억지로 내 글을 읽혔다. ‘통계 극혐!’이라는 비명만 듣고 끝났다. 이후 나는 과학 글은 줄이고 누구나 공감할 단상을 자주 올렸다.






<스켑틱 18 호: 가짜뉴스에는 패턴이 있다>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작가가 쓴 <과학, 소통해야 힘이 된다>는 글이 있다. 저자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이유 셋를 제시한다. 좋은 과학 컨텐츠는 과학 꿈나무를 키우고 대중의 과학적 사고력을 키운다. 여기에 생각해본 적 없는 요소가 하나 있었으니, 대중이 과학을 많이 알수록 국가의 과학 정책도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는 10년 간 6억 2천만 달러 (7,300억 원)이 들어간 초대형 프로젝트였지만, 중력파라는 생소한 개념을 대중에게 잘 홍보한 덕분에 큰 반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Cap 2020-08-28 14-58-25-692.jpg 표지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2306218)


그러나 위 세 가지 기준은 ‘어떤 과학’을 알릴 이유는 되더라도, ‘모든 과학’을 퍼트릴 당위는 되지 못한다. 과학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수백 권의 과학 교양 서적을 읽을 필요는 없다. (과학자라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아니라는 글을 브런치에 올린 바 있다.) 여론에 좌우되는 과학은 과학 분야에서도 소수이다.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과학이 대형 과학 프로젝트보다 덜 중요한 과학인 것도 아니다.


첫 번째 이유였던 과학 꿈나무에 대해서만 동의한다. 확장해서 말하자면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과학을 재미있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어떤 분야에 흥미가 생긴 개인에게 교양 서적만큼 좋은 길라잡이도 없다. 한단계 더 깊게 파고들 전문서가 다양하다면 더할나위 없다. 사회에 과학 꿈나무가 늘어 이공계 전공이 많아진다면 기술산〮업이 더 발전하긴 하겠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여느 문화 사업의 가치에 과학 꿈나무의 효용을 더한 만큼 중요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소통을 바라지 않는 과학 글'을 쓰는 데도 의의가 생겼다. 설령 대학원생만 이해할 협소한 내용이라도 (논문을 읽기에도 바쁜 대학원생들은 인터넷에서 전공 글을 읽지 않겠지만), 그 분야에 흥미가 있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과컴 스쿨에서 배운 교훈도 잊지 않았다. 널리 읽히는 글은 되지 않을지언정, 정보가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쉽게 읽고 이해할 글을 쓰고 싶다. 내용이 협소해도 전달은 친절한 글을 쓰고 싶다.


언제나 내 바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우울한 대학원 글은 브런치 북으로 엮어서 쫓아냈으니, 더 많은 글감을 찾아야겠다. 과학에 대한 글도 더 많이 써야겠다. 언젠가는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많이 쓸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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