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주/일차 배양/줄기세포 배양 경험담
생명과학 전공자로서 운이 좋게도, 가방끈에 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어디에도 써먹지 못할 대학교 실습수업부터, 월급 받고 살만큼 반복한 실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포 배양을 많이 했다. 생명의 구성단위는 세포이므로, 건강히 살아있게만 할 수 있으면 인공적인 환경에서도 생명 현상을 관찰하고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복잡한 생명 활동을 세포 덩어리로 재현하는 것이 와 닿지 않았다. 직접 실험을 하고서도 결과를 믿지 않은 적도 많았다.
세포 배양이 가능한 이유는 세포가 분열하기 때문이다. 모든 세포의 꿈은 세포 두 개가 되는 것이다. 배양 접시에 떨어진 세포 하나는, 몇 시간 후 두 개가 되고 다시 배로 늘며 접시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세포의 분열 수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몸도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니 밥만 잘 먹으면 끊임없이 커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는 제 꿈을 과도하게 펼치지 않도록 자제하는 기작이 DNA에 담겨 있다. 가령, 세포 노화(senescence)란 세포가 분열을 반복할수록 DNA를 감싸는 텔로미어가 짧아져 분열이 멈추는 현상이다.
바이오제약 공장에서는 20,000 L 배양기에 세포를 넣고 단백질을 뽑아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가 마을버스 크기만 한 배양기를 가득 채워야 하니 몇십 번 분열 후 멈추는 보통 세포 대신 무한히 분열하는 세포주(cell line)를 이용해야 한다. 보통 세포주는 암세포에서 유래했거나, 암세포의 세포 분열 유전자 (텔로미어 길이를 보존하는 효소 등)를 주입해서 만든다. 단, 사람에게 쓰이는 약을 만들 때는 암세포 유래 세포주를 이용하지 않는다. 암을 유발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첫 직장에서는 제약에 필요한 세포주를 키웠다. 햄스터의 자궁에서 유래한 세포주라는데,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포가 사람에서 유래했든 햄스터에서 나왔든 세포 하나에서 단백질을 얼마나 많이 뽑아내는지가 관건이었다. 약을 만드는 DNA를 세포에 넣은 후, 가장 생산 수율이 높은 세포 하나를 골랐다. 세포는 무한히 분열하지만 세포가 만드는 단백질은 변할 수 있다. 생산 기간 내 세포에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일까지가 주 업무였다.
산업적으로 쓰이는 세포야 생산에 최적화한 세포주를 쓰지만, 보통 세포 배양은 일차 배양(primary culture)으로 시작한다. 생체에서 세포를 떼어내서 배양 접시에서 키워내는 방식이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꺼내는 부위도, 방법도 다르다. 학부 때 실습수업으로 쥐의 골수 세포를 추출하는 실험을 했다. 생쥐를 죽인 후 대퇴골을 발라내 주삿바늘로 골수를 뽑아냈다. 대퇴골이 몸에서 가장 큰 뼈라서 쓴다는데, 생쥐의 대퇴골은 내 새끼손가락 마디 뼈보다도 작고 얇아 보였다. 동물 실험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여린 나는 쥐를 죽이다가 실험실 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대학원에서는 일차 배양한 생쥐 뉴런을 받아서 실험했다. 태어나지 않은 쥐의 신경 아세포를 꺼내서 배양 접시에서 키웠다. 직접 하는 실험도 아니었고, 그즈음에는 무뎌질 만큼 무뎌져 있어 쥐 몇 마리 희생한다고 가슴이 미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취한 어미쥐의 배를 갈라 새끼 쥐를 꺼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일차 뉴런은 최대한 필요한 만큼만 쓰려 노력했다. 생체 내 뉴런은 개체가 죽을 때까지 생존하지만, 실험실에서 키우는 뉴런은 2-3주 지나면 분해되어 쓰지 못했다. 내 손으로는 아무리 좋은 배지(세포를 키우는 데 쓰는 영양과 pH를 맞춘 액체)를 써도 완전한 생체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줄기세포도 키워보았다. 학부 졸업 실험을 줄기세포 실험실에서 했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한 첫 프로젝트에서도 역분화 줄기세포를 배양했다. 실험용 배아줄기세포는 난소를 떼어 수집한 난자에 인공 수정을 해서 얻는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체세포에 역분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주입해서 만든다. 줄기세포는 거의 무한히 분열한다는 점에서 세포주와 비슷하지만, 세포주만큼 안정적이지는 않다. 오랜 기간 자기 특성을 유지하는 세포주와 달리 다른 세포로 분화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배양의 주 업무는 줄기세포 주변에 자연적으로 분화한 세포들을 긁어 없애는 일이었다. 잘 키운 줄기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하고 활성화하면 체세포로 분화한다. 실험실의 줄기세포는 유전자를 주입한 지 2주 만에 뉴런이 되었다. 나로서는 세포가 변하는 과정을 현미경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유전자 하나가 만든 뉴런 모양 세포를 진짜 뉴런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산업에 쓰이는 세포는 생산성이 중요하다면, 생명 활동을 관찰하는 연구소에서는 세포로 생명 활동을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산업과 연구는 칼로 잘리듯 구분되지 않는다. 세포 배양도 생산성과 재현성이 맞물리며 발전한다. 내 손으로 세포를 키울 일은 앞으로 없겠지만, 머지않아 식탁에 올라올, '세포 하나에서 근육 조직을 만들고, 대량 생산한' 배양육을 먹으며 세포 배양의 전체 과정과 재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