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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Oct 18. 2020

N.K. 제미신,  상상력과 사상에 다가가기

N.K. 제미신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감상평

읽기 쉽지는 않았다. 제미신이 친절한 작가가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은 초반 장벽만 넘으면 정신없이 읽혔지만, 제미신의 단편은 힘겹게 분위기를 파악하면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다음 이야기를 읽기 위한 각오만 여러 번 다졌다. 두어 번 읽고서야 이해한 글도 있었고, 몇 편은 이해를 포기했다. 그렇게 걸러 담은 이야기는 소중했다. 내게 남은 귀한 이야기의 감상을 남긴다.


표지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6862946)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하 [오멜라스])의 오마주이다.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멜라스를 알아야 한다. 르귄이 그린 낙원 오멜라스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단 한 명에게 불행을 떠넘긴 곳이다. [오멜라스]를 읽은 독자는 자신이라면 오멜라스에 남을지, 떠날지를 고민하지 감히 오멜라스를 파괴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오멜라스에는 선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도시의 마법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조차 오멜라스를 파괴할 자격은 없다. 제미신은 정답 없는 객관식 도시를 밀어버리고서 희생양이 없는 새로운 낙원, 움헬라트를 만들었다. 다수를 위해 희생당하는 존재가 없는 대신, 존엄성을 잊는 자는 사살당하는 곳이다.


오멜라스의 시계탑 지하에는 모든 이의 불행을 업은 소녀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오멜라스라는 낙원에 딱 하나 있는 결점처럼 보이지만 소녀는 도시의 사소한 결함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세상 어떤 낙원도 오멜라스 꼴을 벗어날 수 없다. 제미신의 세계에서 지하 감옥에 가둘 대상은 어린 소녀가 아니라 사람 목숨으로 줄을 세워도 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움헬라트를 벗어나고 나면 제미신의 세계 어디에도 낙원은 없다. 작가가 빚은 인물들은 낙원이 없는 세상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시작은 '어떤 이유로든 우리 모두 죽어 마땅한 존재(p401)'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폐수 엔진]: 경향 서평이 언급했듯 '끝내주는 퀴어 로맨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8281136001)

이전에 친구와 BL과 오메가버스 장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 있었다(대화라기보다는 귀한 강의 시간이었다.). 여성 독자들은 이성애 로맨스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대상화를 참지 못해 모두가 남성인 로맨스인 BL(Boy’s love) 장르를 만들었다. 작가는 BL 속 인물들에게 온갖 폭력과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지만, 독자는 둘 다 남성의 일이기에 죄책감없이 이야기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BL의 주인공이 어떤 질펀한 사랑을 나눈들 그들은 ‘임신’을 겪지 않기에, 여성 독자와 괴리감이 생긴다. 해결책은 ‘남성도 임신할 수 있는 세계관’인 오메가버스다. 사람들이 BL을 보는 이유가 정말 그렇다면, 백합이나 GL이라고들 하는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장르는 주체와 대상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해 이 문제를 훨씬 건전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내가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좋아하지.


물론 [폐수 엔진]은 단순한 백합물이 아니다. 이야기 속 세상은 현실과 비슷하다. 남성은 여성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며, 이성애만이 자연스럽다. 주인공 두 사람은 차별적인 환경에서도 애국심을 발휘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으며, 그 와중에도 눈이 맞아 둘이 함께 맞을 내일을 속삭인다. 얼마나 운 좋게 피어난 사랑이며, 또 얼마나 보기 힘든 깔끔한 해피엔딩인지.


[졸업생 대표]: 단편선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지늘은 자신이 노예임을 아는 노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예임을 망각하며 살고 있다. 삶에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데도 저항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지늘을 적대한다. 사람이 장벽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전사를 지지하는 것이지만, 그들 자신이 노예임을 포기하지 않기에 졸업생 대표만 사라지는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사회의 튀어나온 송곳들이 생각났다. 죽은 이후에도 '건방지다고' 오르내리던 연예인, 일은 안 하고 주목만 받고 싶어한다며 욕을 먹는 국회의원. 현실 속 우리는 세상에 장벽도 없는데, 자신이 노예임을 잊기 위해서 사회와 맞서던 전사들을 끌어내리고 죽이고 있다.


[이야기꾼의 대리인]: [폐수 엔진]과 더불어 장르의 문법에 맞게 잘 쓴 이야기. [폐수 엔진]이 담백한 퀴어 로맨스라면, [이야기꾼의 대리인]은 남성의 허세를 비웃는 우화다. 옛날 이야기에 남성의 허세와 욕망은 잘 나오지 않았고, 나오더라도 무마 가능한 실수 정도로 얼버무려져왔다. 한 사람의 허세가 어떤 파국을 낳는지 감안하면 안타까운 무관심이다. 다행히도 제미신이 이런 귀중한 이야기를 만들었으니, 어린 아이들부터 읽혀서 사람이 사람에게 민폐를 덜 끼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와 관련한 자료가 있나 찾다 나온 기사의 자료사진(?) 이런거 먹어봐야 스테로이드라 발기부전만 온대요.

(https://mindgil.chosun.com/client/board/view.asp?fcd=F1027&nNewsNumb=20200869648&nCate=C02&nCateM=M1003)



[천국의 신부들]: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이나 [졸업생 대표]에서 제미신은 자신의 사상을 가득 넣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반면 이 이야기에서는 제미신은 인물의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묵묵하게 사건을 묘사할 뿐이다. 작가는 종교적 다양성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사상을 존중해야 된다는 뜻으로 이 단편을 쓴 것 같지만,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우주 식민지. 남성이 사라진 공동체에서 여성들은 다음 세대를 잇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간다. 근본주의자 다히야는 계시를 받아 공동체가 마시는 물에 외계 생명체의 정수를 섞는다. 다히야의 계시 덕분에 공동체는 맥이 끊기는 대신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다히야의 믿음을 인정하고, 행동을 용서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 대부분은 일찌감치 아이를 포기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인간과 다른 존재를 낳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히야를 움헬라트에 초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소중하지 않다'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공동체를 가장 잔혹하게 옥죄었다. 상대방의 사상을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을지는 어려운 문제다.


[스톤 헝거]: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외전.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보니다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고 보님을 묘사한 덕분에 둔치 독자들은 보니는 감각이 어떤 건지 마침내 상상할 수 있다. 주제 의식은 본편과 조금 다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묻는 이야기다.


[렉스 강가에서]: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묘사. SF다움을 잃지 않는 결말. 

'사유가 남아있는 한, 사유한 자는 중요하지 않았다(p425)' 멋진 아이디어.


[수면 마법사]: 원제가 The narcomancer로, 네크로맨서와 narcoma(마취성 혼수상태)를 섞어 기묘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표현할 한국어 단어가 없어 아쉽다. 폐수 엔진과 더불어 이 단편집에 몇 없는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폐수 엔진>의 여성들이 '여성스럽지 않아' 설렌다면, 이 이야기 속 남성들은 ‘남성적이지 않아’ 말랑말랑하다.   


[연금술사] & [퀴진 드 메므아]: 음식의 모습과 향과 맛을 제미신의 방식대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퀴진 드 메므아에서 아쉬운 설정은 음식을 시키는 데 정확한 날짜와 장소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메종 라보에 갈 수 있다면, 더블린 어느 펍에서 혼자 먹었던 (또는 친구와 함께 먹었던?) 완두콩 소스를 뿌린 피시 앤 칩스를 다시 먹고 싶다. 어두운 식당에 핑크색 조명만 있어서 완두콩 소스의 색깔이 이상하게 보였다. 며칠이었는지도, 정확히 어디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니, 아마 다시 더블린을 가더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메종 라브라도 긴장보다 설렘이 앞섰던 교환학생 학기 초반의 시간, 그날 저녁의 맛을 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제미신은 장편에서도 먹고사니즘을 빼놓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에 의식주가 걸리면 긴장이 떨어질만도 한데, 작가는 먹고사니즘을 주제로 가져와 이야기를 진행한다.


소설을 읽는데 어려웠던 점 또 하나는 시각화였다. 모든 주인공이 흑인인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기란 낯설었다. 그렇기에 제미신의 단편은 더욱 소중했다. 모두의 지평을 늘리기 위해 제미신의 작품은 더 한국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 황금가지 보고있나요 석조 하늘 빨리 좀 내주세요..!!!


10월 1일에 내준다고 올렸으면서!!



원서 표지 출처 아마존 (https://www.amazon.com/How-Long-Black-Future-Month/dp/031649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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