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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pr 09. 2021

"지구를 구해줘"

"더 이상 까마귀가 얼어 죽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사진출처 - 성문출판사


얼마 전 멜버른에서 서쪽으로 약 3시간가량을 차로 달려
Great otway national park에 있는 홀리데이 하우스로 가족여행을 갔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따라 구불구불 휘어지는 산기슭을 지나자 검게 그을린 나무들이 보였다.

몇몇 나무들은   타버린 껍데기가 벗겨져 허연 속살을 을씨년스럽게 드러내 고 있었다.  

가는 길에 초록색 티셔츠를 고루 나눠 입고

산불 복구 기금을  모으는 지역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2년 전, 끔찍한 재난이었던 호주 산불은 나에게도 공포였다.

당시 매캐한 연기가 내가 사는 주택가까지 바람을 타고 넘어와 혹시 하는 불안을  안겨 주었다.

TV에서는 잔혹하게 활활 번져가는 불길 속에 지쳐 보이는 소방관이나 검게 그을린 코알라나 캥거루가 주민이 주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무려 넉 달 동안 계속된 산불로 서울에 100배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12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재난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고 안도해도 되는 것일까.
그때 배출된 4억 톤이 이산화탄소는 아직도 지구에 남아 최악의 기후 시나리오에 힘을 보태고 있는데 말이다.




지구 평균기온 1도 상승,그 작은 변화가 지구를 엄청나게 달라지게 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 해수면이 높아졌고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 지독한 폭염과 가뭄.

미 동부는 이와 반대로 영하 30도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한파가 찾아왔고, 영국은 25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대기권에서 흐르는 공기를 우리는 나눠 쓸 수밖에 없다. 저 먼 이웃나라의 자연재해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 만은 아닌 것이다.


초록 살림이 파괴됐고, 과한 에너지 사용은 탄소 배출량을 위험수위에 도달하게 했으며, 한계를 모르고 끌어다 쓴 자원은 점차 고갈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편리함을 끝없이 추구한 우리의 이기심이 나은 결과이다

 

거의 반세기 만에 환경운동가나 기후학자들의 근심 어린 예견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는 없다.


넘치게 펑펑 쓴 자원은 결국 우리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부채로 남았다.




어릴 적, 내가 즐겨보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는 간혹 시사적인 콩트를 보여주었다.
터미네이터가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자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뛰어간다.  그러다 곧 기둥에 부딪혀 넘어진다. 터미네이터가 다가와  그 남자의 이마에 총을 겨누면 숨이 멋을 듯한 공포로 사내는 혼절한다.
그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뛰어 들어온 엄마가


“ 경제야 경제야. 정신 차려.

 "아이고, 우리 경제 좀 살려주세요”  


그 위로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살립시다" 
맥락 없는 자막이 내레이션에 덮여 아들을 안고 오열하는 엄마 위에 흐른다.
어릴 때 본 그 콩트는 내게 참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경제라는 것이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들, 옆집 아저씨 같았기 때문이다.
애타게 오열하는 엄마의 눈물이 머릿속에 잠식돼

아들 경제를 꼭 살려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이런 경제 살리기 캠페인은 온 국민을 동요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의인화된 경제는 더 이상 희미하게 바라봐야 할 먼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어 신음하는 지구에게도 이런 마음이었으면 한다.  우리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어벤저스급 슈퍼히어로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90년대, 경제를 살리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처럼
오늘날 우리의 김지구, 이지구, 최지구같은 누군가의 친구이자 남편이자 아들, 혹은 딸인 지구를 꼭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찔끔찔끔 매일같이 먹을 만큼 장을 봐도 좋고
매일 두 개 쓰던 플라스틱 컵을 한 개로 줄여도 좋다.
일주일에 단 하루, 한끼만이라도 고기 먹지 않은 날을

정해도 좋겠다.


미세한 나의 지구 살리기 실천이
겨우 한 방울일지라도 그 방울방울이 모이고 모여
장엄하고 거대한 폭포가 될 것이다.


인류를 구원할 나비효과의 작은 몸짓이
에게서 비롯되기를
지구를 살릴 우리가 연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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