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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ug 17. 2022

헬로우, 우리 펜팔 할까요?

"호주와 한국을 잇는 느린 기다림"

To. 은주 언니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 게 벌써 1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어요.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세월이 참 빨라요.

천청 부지로 치솟는 한국 집값을 개탄하며 한국 돌아가면 벼락 거지라고 핏발 세우던 그때의 언니가 떠올라 웃음이 나요.


언니와 멜버른에서 만나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내는 동안 나는 왜 이 예정된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았을까요.

호주에 살면서 한국으로 돌아간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조금은 무던해졌다고 짐짓 나를 방어하고 있었을까요.

가끔 우리 추억이 담긴 장소와 주인을 잃은 빈자리를

볼 때면 쓸쓸함이 밀려와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요.


나는 한국으로부터 떠나와 호주에 남고
언니는 호주로부터 떠나와 한국에 남았네요.

 

마흔 중반의 아줌마가 된 나는 여전히 펜팔이란 단어가 수줍어요. 아마도 볼 빨갛고 조잘조잘 말 많던 어린 내가 불쑥 튀어나와 그런 게 아닐까 해요.


그때, 문방구에서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심사숙고 골라

펜팔을 했어요.  우리 반 아이에게 보낼 편지에 또박또박

써 내려가던 글들이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나요.

참 유치했지만 너무 순수해 입꼬리가 말아 올라가는 귀여운 이야기가 넘쳤어요. 누가 보면 복숭아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냅다 도망쳐 버릴 것 같은 내용들..


나는 꿈 많던 몽상가였나 봐요.


TV 만화 영심이처럼 나의 왕자님은 누굴까,

내 미래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창가에 턱을 괴고 궁금해했어요.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담아 소원을 빌었어요.

그때의 어린 나는 지금은 까무룩 잊혀진 이름들에게

내 고민과 고백을 꾹꾹 눌러 띄웠어요.


한 번은 우리 집에 잘못 도착한 연인의 이별 편지를 읽고

그 편지를 제 주인에게 보내준 일도 있었어요.

" 우체부 아저씨의 실수인지 잘못 온 편지를 읽어 미안하다"라는 짧은 메시지도 동봉한 채 말이죠.


나는 어떤 연인의 존대로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마음을

본의 아니게 훔쳐본 것이 되었지만 그 남자분에게 답장을 받으면서 애매모호한 이별의 참관자가 되었더랬죠.

1990년대는 낭만이 살아있었어요.

당시 펜팔이 꽤 유행했는데, 그때는 몰랐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래요.


주로 편지를 통해 친분관계를 맺는 사람들간의 공간적인 거리가 클 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펜팔은 이 시대의 유물로 아날로그의 역사 속으로 장렬이 사라진 걸까요.​


언니,

세상은 너무 좋아져서 이제 물리적인 거리만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요. 난 가끔 그 편의성을 위해 사라진

셀럼과 느긋한 기다림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핸드폰이 나오기 전엔 큰 시계탑 앞에서 약속한 친구를 기다리고, 혹시 장소가 엇갈렸을까 서점 게시판 노란 포스트잇에 휘갈겼던 메모들.

문이 열릴 때마다 온전히 너를 기다리는 나의 시간들은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한 구절처럼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삐쭉 내밀었죠.

어쩌면 그 기다림은 니가 나를 향해 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기다림에 동반되는 불확실성은 그 순간 그 사람으로

나를 빼곡히 채우게 해요​.


지금 내 몸에 붙어살고 있는 핸드폰은 너무 편한 세상을 열어줬어요. 우리고 톡톡 몇 자 치면 물리적인 거리쯤은

문제가 되지 않죠. 그래서 가끔 더 공허해요.

카톡 뒤 이모티콘 문자에 숨어 내 마음을 감추고

딱딱한 문자에 오해가 쌓여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죠. 

보내는 사람의 의도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문구도 해석이 달라지는 게 참 이상해요.


내가 미워하겠다고 작정하면 그 사람 손등에 난 솜털

한가닥 한가닥이 껄끄럽고, 좋아하겠다고 작정하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솜털이 보송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우리는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네요.


언니,

국가 날인이 찍힌 우표를 보면서, 우체통을 열고 닫았다

선물 받는 아이의 설렘으로 우리 다시 연결될까요.

이제 오십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

느린 기다림을 다시 연습하면 어떨까요.


언니와 나의 교차점이었던 호주, 그 과거의 기억을 앉고 펜팔로 지금 이 시간을 채워나가고 싶어요.


이제 호주는 봄이 와요.

봄날 햇살이 따갑게 늘어져 분홍 꽃을 물들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나무 잎사귀를 간지럽혀요.


이제 한국은 가을이 오죠?

그 뒤집힌 계절의 온도를 서로 촉촉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답장 기다릴게요.


호주에서 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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