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나에 대한 자비로움으로 자유를 주는 삶의 자세

by 즐거운 분기탱천

일주일의 여름휴가가 마무리되는 토요일

이른 아침 일어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집 근처 사찰로 나섰다.

벌써 이번 주에 세 번째이다.


매주 부처님을 찾은 지 2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 나를 불자라고 부를만한지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더 부처님의 말씀이 우주의 진리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다고 자신한다.


2년 전 이제 막 나이 오십을 넘길 무렵, 그전 수년동안 삶을 지탱해 내려고 버둥대다 지쳐서 그 절을 찾았을 때, 탁 트인 전망과 산새소리와도 조화로운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그리고 법당에 들어섰을 때의 목재에서 나는 나무향과 부처님에게서 나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엄숙함과 인자함에서 나오는 그 신비로움에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겼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머리 숙여 본 적이 없던 나는 합장하고 절을 하였다. 제발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을 때, 태풍과 같은 소용돌이가 치고 있던 마음에 순간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주말이 되면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어떤 다른 종교가 가진 종교적인 것들보다는 내 마음이 잠시라도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종교적인 신에게 머리 숙임으로써 내 마음은 편해지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잠시이지만.

그때 나는 신에게 머리 숙임으로써 자아가 초자아에게 머리 숙임을 느낀 것이 아닌가 한다. 온갖 사회적인 기준과 편견에 기울어져 있던 자아가 진짜 나에게, 이제까지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진짜 나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처님도 모든 중생이 부처다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세상의 보잘것없는 것에 집착하던 자아가 부처, 초자아인 참나에 머리 숙임은 집착하지 않음, 내려놓음, 받아들임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허무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여전히 자아와 초자아 사이를 늘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기도를 했건만, 결국 자아가 가지고 있는 소원을 빌게 되었다. 허무하다. 내일 일요일, 내일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참회, 참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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