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까닭

비장하지 않은 사랑

by 즐거운 분기탱천

한용운 시,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올해 11월이면 결혼 26주년이 된다.

우리 부부는 생일은 챙겨도 결혼기념일은 서로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다. 늘 며칠 또는 심지어 몇 주가 지난 후에야 그날이 벌써 지난 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연애기간 동안 그렇게 좋아했건만, 결혼 후 서로에게 새롭게 적응하고, 아이를 키우고, 나이에 맞는 경제력을 확보하느라 결혼기념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이렇게 세월이 지나갔다.


25년 전에는 내가 저 사람의 백발을 사랑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 사람의 눈물에 애처로워 뒤돌아 훌쩍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도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덜 다투며 살고 있고, 젊은 시절 사진과 지금 드문드문 난 흰머리를 보며 서로를 안타까워하면서 "에구... 당신도 저때는 정말 여리여리했네"하고 위로를 해준다.

여전히 험난한 세상, 이만큼 같이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귀가하는 차 안에서 오늘은 내가 걸레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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