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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n 15. 2017

희망에 손을 뻗는 남자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https://youtu.be/ixiBHLLAv9M

희망에 손을 뻗는 남자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있다. 그중 첫 번째는 개츠비의 미소다.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섯 번쯤밖에 마주치지 못할 특별한 성질의 것이었다. 잠깐 전 우주를 직면(혹은 직면한 듯)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대체 누가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누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이런 미소를 짓는 사람에게 눈을 뗄 수 있겠는가? 개츠비는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개츠비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그의 돈? 사랑? 능력? 그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다며 간과하고 넘어가기 어렵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향해 보이는 사랑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쉬이 떠올리게 만들 만큼 맹목적이고, 화려한 집과 그곳에서 열리는 현란한 파티는 이 젊은 남자에 대한 괴소문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유례없는 경제 호황.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던 시대. 지나친 음주에 대한 우려로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대였지만 모두들 언제나 술에 취해 있던 시대. 절제는 보기 힘들고 가진 모든 것을 표출하기에도 모자란 그런 시대였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개츠비는 이에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 인물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매주 쏟아부어 향락의 결정체인 파티를 열고 초대하지도 않은 방문객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내는 개츠비에 대해 좋은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그의 미스터리함은 시대의 이미지에 맞게 갖가지 의혹만을 증폭시킨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개츠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취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향락을 베풀면서도 자신은 절제하고 정도를 넘어 즐기지 않는다.


  개츠비와 가장 많이 비견되는 톰 뷰캐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른바 뼈대 있는 가문에서 자란 톰은 요즘 말로 금수저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톰은 금지된 것 없이 사치를 부리고 그를 숨기지 않는다. 톰의 위협적일 정도의 강인한 육체와 데이지가 톰을 놀려대던 ‘괴물’이라는 표현은 그를 잘 나타내는 이미지다. 그런 톰이기에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닉을 데려다가 자신의 정부를 보여주기로 하고, 평생 두 번 만취했던 닉의 마지막 만취가 그날 저녁이 된다. 이 날의 조촐한 파티는 앞선 개츠비의 파티처럼 거대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은밀하고 퇴폐적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지고 있는 재산의 배경, 태생. 성격 등 톰과 개츠비는 많은 것이 다르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고는 둘 다 돈이 많다는 사실뿐이겠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생긴다. 닉은 왜 개츠비를 그리 높게 평가했을까?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아는 그 제목. 왜 개츠비 앞에는 ‘위대한(The Great)’가 붙었을까?


  여기서 개츠비 하면 떠오르는 두 번째 이미지를 언급하고 싶다.


“나는 그를 부르려고 했다. 저녁식사 때 미스 베이커가 그의 얘기를 꺼낸 바 있었고, 그 얘기만으로도 운을 떼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서 혼자 있고 싶다는 어떤 암시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분명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나도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두의 맨 끝에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초록 불빛을 제외하곤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저 멀리 보이는 초록 불빛에 아련히 손을 뻗는 개츠비의 모습. 그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목표였다. 단계로서 그 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 도착지인 목표였다. 그리고 돈은 데이지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었고, 과거 자신의 가난함으로 성취하지 못했던 데이지에게 찾아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증명하기 위한 도구였다. 필요하다면 데이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던 개츠비였다. 개츠비가 울프심과 같이 다니고 밀주를 팔며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온 인물임을 생각하면 그가 데이지에게 갖는 순수한 열정은 경이롭기 이를 데 없다.



  희망을 정하고, 그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개츠비. 가진 것 없는 무일푼에서 기어코 희망의 앞에까지 다다랐던 개츠비. 그의 위대함은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현실로 이루는 순수한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렬한 열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초록 불빛을 향해 뻗은 그의 손끝과 데이지를 파악하고 나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마음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곤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1925년 출판 이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책과 같이 보면 더욱 좋다. 여러 번 읽었지만 매번 좋았던 개츠비다. 앞으로 또 어느 순간에 다시 집어 들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뻗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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