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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12. 2020

저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너일리는 없겠지만

낱장 일기25

며칠 전 만났던 군대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평택에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닌 밤중에 평택이라니. 일하러 가나? 생각이 들어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친구 동생 상이라고 했다. 나와 동갑인 군대 동기보다 어린 친구라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을 텐데.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마음이 아팠고, 옛 생각이 났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고, 그날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예비군중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퇴근이 얼마 남지 않던 오후 5시였을까. 당시 다른 곳에서 공익근무를 하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야, A 알지?”

“어. 알지.”

“A 죽었다 한다. 오늘 장례식이래.”

나는 전화 너머로 친구의 말을 분명하게 들었지만, 그 의미만큼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주 상투적인 장면. 나의 반문. 뜬금없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친구의 대답. 진짜야. 나도 조금 전에 소식 들었다. 성모병원 장례식장이래. 진짜야? 어. 올 수 있냐? 가야지.

A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A는 어떤 미화도 없이 새하얀 피부에 미소년 같은 얼굴, 얇은 미성을 가진 친구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A는 나의 라이벌이었다. 우리는 매번 성적으로 반에서 1, 2등을 다투었으니까. 그런 A는 공부에 있어서 다소 예민했던 친구였다. 쉬는 시간에도 귀마개를 끼고 공부를 하는 학생은 우리 반에서 A가 유일했고,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던 A였다. 돌이킨다고 하여도 나는 A처럼 공부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나 A는 항상 아쉬워했고, 때로는 분해했다. 그 많은 노력을 한 A였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고2를 올라가면서 A가 자퇴를 결심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스물셋이 될 때까지 나는 아주 간간히 A의 소식을 들었고, 그보다 더 가끔 A로부터 연락이 오고 만나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 서글서글한 새하얀 눈웃음이 기억에 선하다. 여전히 잘생기고 하얀 피부의 A. 어린 마음에 그게 참 부러웠었는데.

그날 저녁 A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내 머리는 계속해서 A의 잔영을 불러왔다. 장례식 예절조차 익숙하지 않은, 죽음이라는 것이 아직 너무나 낯선 나이 스물셋.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였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도착해 나와 다를 것 없는 당황한 친구들의 표정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 속 A를 보자 비로소 A가 정말 죽었구나 이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 중 누구도 A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아는바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여전히 당황한 채로 A의 죽음에 대해 하나 아는 거 없이 장례식장을 나왔다. 그리고 이후에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나는 A를 떠올렸다. 문득 구급차 소리가 들리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이 드는 순간이면, 사실은 저 앞에 걸어가는 저 사람이 A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장례식장까지 다녀왔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A의 죽음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오늘 어쩌면 당시 A의 나이와 같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나는 다시 A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는 저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A일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해본다. 살아있다면, 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을까.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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