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장 일기30
메일링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아니, 늦어도 1월부터. 기획은 간단하다. 신청자에 한해서 일주일에 세 번 내가 쓴 글을 메일로 보내는 것. 이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데 구독 경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시대의 흐름이 글쓰기 분야에도 적용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여러 작가들이 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있고, 연재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물론 나의 경우 당장 구독료를 받을 생각은 없다. 그저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니)
작가의 입장에서 메일링 서비스의 장점은 명확하다. 안정적인 수입 발생.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말이 결코 풍족함을 의미하지는 않겠고(평균 임금이 낮은 직업 최하위권에 괜히 작가가 있는 게 아니다), 작가의 불안정한 수입 구조를 조금 더 예측 가능한 형태로 개선시켜 글쓰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의미겠다. 물론 이외에도 다른 장점도 있다. 과거 작가는 출판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독자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상당히 추상적이었던 것이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를 파악해보려 해도 극히 제한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작가가 만날 수 있는 독자는 어찌보면 그저 데이터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이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를 통해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독자와 직접 말을 주고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메일링 서비스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어떤 특별한 방식이 아닌, 그저 직접 메일을 보내는 간단한 방식으로. 단점이야 뭐 잦은 마감에 시달리는 것이 있겠으나 원래 작가에게 마감은 숙명과도 같은 것 아닌가?
독자의 경우도 작가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메일링 서비스의 아주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사적인 메일을 주고받거나 하지 않아도 작가의 이메일로 도착하는 한 편의 글은 이미 나에게 작가가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이는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신화 속 동물이 나의 일상 속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 아닐까.
그렇다고 메일링 서비스가 완벽한 방식이라거나 유일한 구원책 같은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분명 감당하기 힘든 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작가 나름대로의 고충이,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의 부담이. 그럼에도 나는 메일링 서비스가 작가가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고 믿는다. 글쓰기에 수반되는 고독한 여정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나의 기획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간단하다. 지난 4개월간 글을 써왔던 것처럼 매일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다만 어떤 글을 써야하는지 독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은 어차피 지금의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써가며 맞춰나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창피하지 않을까? 부담스럽지 않을까? 무슨 소리. 진짜 창피했고 부담스러웠던 건 내 지난 삶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앞서는 법. 그건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더 세세한 부분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그저 글만 띡하고 보내고 싶진 않다. 어쨌든 이게 성실과 성의 및 진정성의 문제라면 더더욱 최소한의 틀을 갖추고 싶다. 그런데 정말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내가 그것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창틈으로 스며드는 우풍처럼 회의가 스치운다. 솔직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못하겠다는 말은 아니니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다. 어차피 시작은 먼저 낚시대를 이리 저리 던져보는 것이니. 언젠가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베테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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