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장 일기29 : 사형제도의 비합리성에 대하여
합법적인 살인이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피와 살육, 혼돈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를 지나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는 사형제도는 여전히 인류와 함께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형제도는 이미 유명무실하여 실제 사형 집행이 되지 않는 국가들이 대다수에 가깝다.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을 끝으로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미래의 사형 집행 여부도 불확실한 전망을 보인다. 여기에 윤리, 정치, 행정 등 여러 이유가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사형제도 존폐 논의와 관련하여 어려운 점은 이성과 감성 사이의 치열한 대립,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고개를 저어야 하는 모순에 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사형제도는 근거가 비약한 비합리적인 제도다. 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국가가 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만 권리를 가진다. 노예제 철폐를 위한 인류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만을 보더라도 그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노예의 삶이 아닌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바란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다. 국가라는 것이 개별 인간들의 집합체가 확장된 형태라면, 개와 개 사이에서 새가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국가 역시 개별 인간들의 권리를 초월한 권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설령 그것이(사형제도가) 개별 구성원들의 동의를 포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동의는 애당초 자신에게 주어진 적 없는 권리에 대한 동의이기에 논리적으로 긍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은 사형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설령 사형제도가 근본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주는 실질적 효과가 분명하고, 사회 전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형제도의 범죄예방효과와 사회 정의 집행 등이다. 먼저, 사형제도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실질적 연관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특히 사형제도의 존재가 과거의 범죄를 좌절시켜 범죄를 가능했던 수준보다 축소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당연히 증명 불가능한 영역임에 확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형이라는 ‘확실한’ 행위를 추측에 근거한 ‘불확실함’으로 옹호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미신에 불과하다. 사형제도가 사회 정의를 집행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역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으로 집행되었던 사형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20% 이상이 사회 정의 확립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집행되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단적으로 말하여 잘못된 국가 권력이 과도한 힘을 얻게 되면, 오히려 정의가 아닌 불의가 신속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집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심의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 없는바, 그것이 아주 작은 확률이라 할지라도 사형의 비가역성을 고려하면, 그 결정적인 행위에 선뜻 동의할 수 없음이다.
그러나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악무도한 범죄를 목도하노라면, 그 불합리성의 필요성에 대한 부르짖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기도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진정으로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다. 국가가 선고하는 합법적 살인이 불가능하다면, 올바른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인자의 죗값을 어떻게 치르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를 넘어선 전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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