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심화과정에 들어와 머무는 중.
가사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가 정리된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지금의 내가 어느 주소인지.
나는 생각보다 이 일과 일체가 되어있다. 심적인 무게는 정말 그래.
여간 좋아하지 않으면 이렇게 살 수 없지 않을까?
육각형 삶에 비해 너무 기울어 있는 밸런스. 나는 이미 이 다사다난한 양파에게 먹힌 지 오래되었다.
모두가 이 구간을 지날 땐 생각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서로 알아본다. 그 구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겐 특유의 냄새가, 눈빛이, 낯빛이 있기 때문.
예전에 오랜만에 만난 음악 하는 후배가 " 요즘 작업 열심히 하나 보네요. 눈이 그런데? "라고 툭 건넸을 때, ' 맞다. 그런 얼굴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응시했다. 퉁퉁 불은 흑색 혹은 귤색 얼굴과 흐리멍덩한 동태눈깔에 새집머리 뭐 그런 상태의 후배도 마찬가지.
내 안의 못난 것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겨우 예쁨을 찾아내고, 물론 이쁘고 잘하는 건 계속 잘해야 하고, 어떤 어조로 어떤 태도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펑펑 울지, 크게 웃을지, 약간 웃으며 한 방울 눈물만 또르르 흘릴지, 아니면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회한에 잠긴 사람일건지. 뭐 말하자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뭐 잘 못하는 인간일수록 엄살이 심하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심한 거.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