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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bert Yang Jan 29. 2020

'꽌시' 를 이해하는 또다른 방법

고대 로마의 '클리엔텔라'와의 비교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인민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재학중인 '양한수'입니다.

  저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북경에서 박사유학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중국에서 보고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첫 순서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한국인 분들과 유학생들이 많이 접하게 되는 '꽌시(关系)'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1. 왜 '꽌시'가 한국인들을 답답하게 하는가?

  한국에서 중국에 관심이 있거나 중국 시장에 도전하고자 하는 분들이 항상 많이 듣는 말이 '꽌시'라는 겁니다. 그분들은 대체적으로 중국인 바이어를 만나거나 동업자를 구할 때, 그리고 중국인 직원들을 고용했을 때 이 '관시'라는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한국인 사업가들이 이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외국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기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중국인들이 사업의 동반자로써 한국인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도록 만들 수 있을지 그 문화적인 실마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느끼기에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인맥 리그'를 만들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 - 한국인이나 안면이 없는 중국인 - 에 대한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인맥 관계를 유지하고 보호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관시' 문화를 적절하게 해석해 줄 역사적인 비교 사례를 전해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대 로마의 인맥 관계인 '클리엔텔라'(피호제)입니다. '클리엔텔라'는 고대 로마 사회에서 '파트로네스(후원자)-클리엔테스(피후원자)' 간의 사회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 관계를 맺은 두 사람 혹은 가문은 상대방에게 신의와 성실을 원칙으로 삼아 서로 도와야 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중국의 '관시' 문화도 '친구' 사이에 마찬가지 원칙을 지켜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만 봐도 유사한 점이 눈에 보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클리엔텔라'에 대해서 소개하고, 두번째로 중국의 '꽌시' 문화를 소개한 다음 마지막으로 유사한 점을 비교해보겠습니다.


2. '클리엔텔라'가 뭐지?

  '클리엔텔라'는 고대 로마인들의 사적이고도 사회적인 관계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제가 이 용어에 대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국내 신학분야 학술지에 2006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이 '클리엔텔라'의 7가지 특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왕인성 (2006). 신약성경에 반영된 그레코-로마 사회의 후원자-피보호자 관계. 신약논단, 13(3), pp 535-564)

 

첫째, '클리엔텔라'는 교환적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서 후원자는 피보호자가 필요로 하는 돈 혹은 땅과 같은 유형의 재화를 제공하며, 반대로 피보호자는 후원자에게 각종 정보나 정치적인 지지 등을 제공합니다.


둘째, 불균형적 관계입니다. 후원자와 피보호자는 힘과 권력의 관점에서 동등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후원자가 항상 부족한 재화와 자원에 접근하는 능력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학 입시 때 강남 학군에 다니는 학생들이 비 강남 학군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입시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셋째, '클리엔텔라'는 보통 특수하고 비공식적 관계입니다. 특권 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 셈이죠. 한국에서도 정관계의 고위층 자녀들이 공기업에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이유가 그들 사이에 특수하고 비공식적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클리엔텔라'는 보통 법 규정을 초월하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후원자-피보호자 사이의 상호 이해와 신의, 성실의 의무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계약이 국가의 공식적 법령에 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섯째, 이 관계는 자발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장기적 관계입니다. 


여섯째, 이 관계는 수직적입니다. 그것은 다른 후원자들을 배제한 채, 후원자와 개별적 피보호자들 혹은 피보호자들의 조직 전반을 묶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는 자발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재화와 봉사의 상호 교환으로 형성되는 후원자-피보호자 관계가 유지되려면 상호 간에 약속한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출처: 왕인성(2006), pp 548-550 발췌 정리)


3. '꽌시'는 대체 뭐지?

  그 다음에 이 글의 주제인 '꽌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유통학회에서 지난 2009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꽌시'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꽌시'란 가족, 씨족, 혈연, 고향, 직장, 교육 배경 등 연고 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 사람 사이의 인맥 관계입니다. 그리고 상호 간에 지속적인 호의와 친분이 교환되는 우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관시가 형성되고 유지되려면 선물, 연회, 도움 및 편의의 제공 등 상호 간에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책무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어디까지나 소수의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만 유지됩니다. 그런만큼 관시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 실질적인 혜택이 오가게 됩니다. (출처: 문연희, 김용철, 박만석, 최지호 (2009). 관시와 신용, 충성도간의 관계 : 대안적 모형 검증. 한국유통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pp 149-160, pp 149-150 발췌 요약)


4. '관시'와 '클리엔텔라'를 상호 비교하기

  관시와 클리엔텔라는 이러한 관계가 성립된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정치과학자인 웨인그로드(Weingrod)는 이러한 관계는 한 국가의 통제력이 일정 범위 안에 제한되고 정치적 권위가 분산되어 소속 지역 공동체들이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상당히 분리되었을 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출처: 왕인성(2006), pp 539-540)  중국의 경우 수 천년 간의 고대 왕조 시대에서 황제로 상징되는 중앙 정부가 전 국토를 완전하게 통치할 수 있었던 시대는 명나라 때부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각 지방의 호족들이 황제를 대리하는 관료로써 통치했었지요. 예를 들어 삼국지의 원소와 원술 형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에 등장하는 명문 귀족들은 중앙정부의 관료가 될 정도로 가문의 위상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이 당시 중앙정부는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는 호족들을 관료제 안에 편입시켜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삼국 시대 이후 동진 시대 왕도, 왕돈 형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고대 중국은 웨인그로드의 주장에 가장 들어맞는 정치적 및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도시 국가 시절 형성되었던 사회적인 관계가 로마가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지중해 세계를 지배함에 따라 확대 재생산되었습니다. 이처럼 관시와 클리엔텔라는 탄생 배경이 서로 비슷합니다. 그리고 앞서 제시한 클리엔텔라의 7가지 특징은 관시의 특징과도 부합되는 면이 많습니다.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관계를 앞선다는 점, 그리고 상호 간에 강한 도덕적, 사회적 의무가 존재한다는 점 등이 상당 부분 유사합니다. 


5. 결론

'관시'는 중국의 수천년 역사 속에서 중국인들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 관계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스스로의 생존을 도와주지 않았던 시대적 환경 때문에 사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인맥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정부와 관료들이 자신의 생존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의존할 것이라고는 '관시'뿐이었던 겁니다. 고대 로마의 '클리엔텔라'도 가문과 부족이라는 사적 공동체의 상부상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형성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인들이 그토록 '관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요즘과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안전판을 만들려고 하는 욕망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출처: https://inquirychina.tistory.com/23 [중국경제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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