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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Sep 21. 2018

업데이트. 하셨나요?

사용자를 위한 업데이트는 없다.

서비스나 앱의 업데이트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두려운 일이다. 앱스토어 아이콘에 배지 숫자가 커지면, 뭔가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디자인을 하고, UI를 바꾸는 직업이라도 업데이트 앞에서는 사용자가 된다. 방금 전까지 익숙하게 쓰던 기능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다른 것이 된다. 제품을 새로 사는 것이라면 각오라도 하겠지만, 늘 쓰던 것이 눈 앞에서 변해버린다. 원했던 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예상하지 못한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가 선 줄이 항상 길게 느껴지는 것 같은 상황이다.


기능만 변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디자인도 멋대로 바뀐다. 바꿔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주 보던 항목, 자주 쓰던 기능, 좋아하던 아이콘이나 그림이 바뀐다. 좀 더 직업적으로 말하면, 이미지만 변하는 업데이트나, 제스처만 변하는 업데이트나, 정보 구조만 변하는 업데이트는 매우 드물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모두 변한다. 기능과 디자인과 정보와 사용성이 모두 한꺼번에 변한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에 '옳다.'라는 개념을 포함시키고 있다. 사용자 경험이라는 디자인 분야에 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분야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사용자를 존중한다.'라는 말이다. 앱스토어의 업데이트를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은 '더 편리해졌습니다.'이다. 하지만 업데이트의 의도가 항상 사용자를 위해서 이루어지진 않는다.


실제로 사용자 경험이나 기타 디자인 분야에 포함된 윤리는 낭만적인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의 경험을 통제하는 형태가 되기 쉽다. 디자인 분야는 심리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에 그럴싸한 심리학 상식 하나를 붙이면, 루시퍼 이펙트로 유명한 스탠퍼드 실험을 인용할 수 있다.


UI를 디자인하거나 제품의 UI의 업데이트를 결정하는 사람은 아주 손쉽게 간수의 역할에 서게 된다. 간수의 역할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택권을 통제하거나 제한하게 된다. 사용자는 서비스나 제품을 장기간 사용하면서 쌓은 아이덴티티와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쉽게 서비스를 쉽게 이탈할 수가 없다. IT 제품의 세계는 극단적이라, 1위와 2위의 차이가 극심하고, 한 번 1위가 되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현명한 사람은 디자인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라는 개인이 가진 한계에 갇힌 상식을 조심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사람은 큰 조직에서는 드물다.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행동력이 결여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사소한 부분에 신경을 쓰는 사람보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 보는 것이 더 편하다. 그들이 말하는 의견은 빛난다. 효율과 수익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디자이너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말 아래서 사용자는 콘텐츠를 모아 오는 수단이고 되고 수익 앞에서는 슬롯머신이나 다름없는 프로세스에 갇혀서 끝없이 지출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확신은 쉽게 편향으로 흘러간다.


확신에 찬 디자이너는 회의를 주도권을 확보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예술하지 말라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거나, 아직 경험이 없다거나, 그런 사례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논쟁이 오가면, 뭐가 중요한지는 쉽게 흐려진다. 이런 경우가 되면 대부분은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표현하기 어려운 불쾌감이 목구멍으로 솟구칠 것이다. 원하지 않는 업데이트를 대면한 사용자도 아마 비슷한 기분이 들 것이다.


오늘도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돈벌이에만 급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싫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혐오의 감정이 묻어났다.


나는 대답했다.


"저는 돈벌이는 밥 먹는 거랑 비슷하다고 봐요. 음식을 먹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해요. 하지만, 배가 고픈 것만 생각하면 안 되겠죠."


이 말을 마치자마자,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을 밟은 기분이었다. 내 신발에서 나는 구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교묘하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의 앱들은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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