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PLITHUS 인터뷰/Nomada Studio
게임이 반드시 많은 대사나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나의 장면과 색의 변화,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스페인 인디 스튜디오 Nomada Studio가 만든 <GRIS>와 <Neva>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손으로 그린 듯한 섬세한 비주얼과 감정 중심의 서사를 통해 전 세계 플레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두 작품은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 Nomada Studio는 어떤 철학으로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결과에 도달했을까.
Nomada Studio는 Roger Mendoza, Conrad Roset, 그리고 Adrián Cuevas 세 사람이 한 파티에서 만나 게임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된 팀이다. 이후 프로젝트에 따라 팀 구성은 조금씩 변했지만 아티스트와 애니메이터, 프로그래머 등을 포함해 현재 약 10~15명 규모의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Nomada Studio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청각적 표현과 예술성, 그리고 이야기가 전달하는 감정이다. 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규칙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다.
Nomada Studio는 <GRIS>를 한 문장으로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예술적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아트 디렉터 Conrad Roset이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흑백으로 시작해 점차 색이 추가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팀이 합류하면서 색이 돌아오는 과정을 개인이 슬픔과 상실을 극복해 가는 감정의 변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그 결과 <GRIS>는 플레이어가 감정을 직접 체험하는 조용하면서도 섬세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GRIS>는 전 세계적으로 3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발팀은 이 성공의 이유를 기존 게임과는 다른 경험에서 찾는다. <GRIS>의 모든 장면은 디지털로 손으로 그려졌으며, 실제 수채화 이미지를 스캔해 게임 속에 적용했다. 잉크가 물에 떨어지는 영상을 참고해 효과를 구현하는 등 시각적 표현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접근은 게임을 단순한 플레이 경험을 넘어 예술 작품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해석의 여지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명확한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설계돼 있어, 많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삶과 감정을 작품 속에 투영하게 된다.
Nomada Studio의 또 다른 작품 <Neva> 역시 감정적인 서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GRIS>가 개인의 내면적인 감정에 집중했다면, <Neva>는 동반자와 함께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GRIS> 개발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프로젝트의 시작 자체였다. 첫 작품이었기 때문에 예산도 제한적이었고, 게임이 실제로 플레이어에게 사랑받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개발을 이어가야 했다. 반면 <Neva>에서는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바로 높아진 기대치였다. <GRIS>가 큰 성공을 거둔 만큼, 후속 작품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투 시스템과 캐릭터 간 협력 메커닉을 새롭게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Nomada Studio의 개발 과정은 창작 중심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방향을 정한 뒤, 종이 위에서 콘셉트와 디자인 문서를 만들고 스케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게임 테스트는 내부 테스터가 매일 게임을 플레이하며 진행되고 개발의 중요한 단계에서는 외부 QA 회사와 협력해 모든 플랫폼에서 집중적인 테스트를 진행한다. 또한 일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체험하게 하고 피드백을 받는 테스트도 진행하며, 프로젝트 후반에는 각 언어가 제대로 표현되는지 확인하는 로컬라이즈 테스트도 진행된다.
개발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피드백 중 하나는 출시 전 들었던 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인 “이 게임은 걸작이다”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로 남은 것은 플레이어들이 보내온 개인적인 메시지였다. 어떤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가족의 죽음을 떠올리게 됐고,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 개발팀에게는 무엇보다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Nomada Studio는 별도의 아시아 전략을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퍼블리셔인 Devolver Digital과 함께 지역 마케팅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도 작품은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개발팀은 특히 한국 팬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게임을 지지하는 인상적인 커뮤니티라고 전했다.
Nomada Studio는 앞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플레이어에게 오래 남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다. <GRIS>와 <Neva>가 전 세계 플레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Nomada Studio는 화려한 설명 대신 강한 작품으로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