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장님은 명탐정

(본문 중 역할극)

by 백승곤

우리 대장님을 소개합니다

우리 아파트와 가까운 구립 스포츠센터에는 오늘도 대장님께서 그 모습도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바로 관리소장님 김태동 할아버지이십니다. 우리 대장님은 35년 경찰 공무원을 정년 퇴임하고 스포츠센터 관리소장으로 근무하시죠. 관리 업무는 물론 이곳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까지 척척 해결해 내고 계십니다. ‘대장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사라진 열쇠 꾸러미

지난봄이었어요. 수영장 열쇠 꾸러미가 사라져, 퇴근하려는 코치님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 있었어요. 열쇠 꾸러미는 보관함이 있는 사무실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사무실을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 묵직한 열쇠 꾸러미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면 ‘떨그럭’ 큰 소리가 났을 텐데, 사무실에는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었어요. 도대체 열쇠 꾸러미는 소리도 없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바로 그때 35년 경찰 경험에서 나오는 우리 대장님의 놀라운 추리력이 발휘되었죠. 대장님께서 추리해 내신 것은 열쇠 보관함 아래 있던 물 양동이였어요. 열쇠함에 있던 열쇠 꾸러미가 어쩌다 ‘풍덩~’하고, 물이 절반쯤 들어있던 양동이에 떨어졌고 영문도 모르는 청소 아주머니는 그 양동이를 청소 물품 창고로 옮기셨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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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떨그럭’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을 리 없고, 바닥을 훑고 또 훑어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실마리는 항상 현장에 있지.” 사건 현장의 어떤 단서도 놓치지 않고, 상황을 예리하게 추리하고 분석하는 우리 대장님의 수사력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대장님은 현역 시절 광역수사대에서 수많은 강력 사건을 해결한 베테랑 형사였을 것 같지만, 사실은 동네 파출소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셨다고 합니다.


치매 할머니가 사라지셨어요

우리 스포츠센터에는 매일 따님과 함께 오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 성함은 김순영으로 초기 치매가 시작됐는데, 이곳에서 하는 여러 활동이 치매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대요. 내가 인사를 하면 항상 웃어 주는 할머니는 어디 편찮으시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건강한 모습이에요. 아마 하루도 빼먹지 않는 운동과 인지 훈련 때문이겠죠. 그날은 할머니가 음악체조를 하는 날이었어요. 내가 수영장으로 가기 위해 스포츠센터를 들어서는 데 할머니 따님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셨어요.


(따님) “관리소장님, 저희 엄마가 안 보이세요! 통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음악체조 시간을 기다리다 잠깐 화장실에 가셨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거예요. 화장실에 가봤는데 거기에도 안 계세요.”


대장님은 먼저 센터 내 할머니가 자주 가던 곳들을 가 보셨어요. 물론 우리 대장님의 오른팔인 저와 제 친구 제민이도 이 사건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죠. ‘이건 분명한 치매 할머니 실종 사건이거든요.’


(태동) “혹시… 어머니께서 스포츠센터 주변에 따님과 자주 가시는 곳이 있나요?”

(따님) “공원 산책을 자주 하시고 꽃을 좋아해서 저랑 꽃집에 자주 들르세요.”


대장님은 곧장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호수를 품은 공원은 평소에 할머니가 자주 산책하고 꽃을 감상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원 어디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주 꽃을 사러 들른다는 꽃집에도 가보았지만, 할머니는 오지 않으셨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태동) "요즘 어머님께서 자주 찾는 사람이 있나요?"

(따님) "그러고 보니까… 엄마가 요즘 예전 친구들 얘기를 자주 하시는 것 같아요.”

(태동) “그럼, 예전에 어머니가 그 친구를 만나시던 곳이 있나요?"

(따님) "아! 여기서 버스로 세 정거장 가면 <로사>라고 하는 조그만 카페가 있어요. 우리 가족이 그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친구들을 자주 만나던 카페도 그 동네에 있어요. 제가 그 카페를 잘 알아요. 그런데 엄마가 그 멀리 가실 수가 있을까요?”


기억이 이끄는 발걸음

대장님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 따님과 우리 졸병 둘도 뒤를 따랐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 창가에 얌전히 앉아 있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대장님이 다가가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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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 “김순영 어르신, 여기서 뭐 하세요?”

(순영) “누구세요? 우리 친구들 기다리고 있는데… 영애, 순옥, 정임이…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아무도 안 오네요.”

(태동) “순영 어르신, 이제 집에 가셔야 해요. 친구들은 오늘 안 와요. 나중에 오기로 했어요.”

(순영) “왜요…? 오늘 걔네 못 와요?... 우리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따님) “엄마, 그 이모들은 안 오셔. 오늘은 나랑 집으로 가셔요.”


할머니는 무척 혼란스러워했지만, 뒤따라온 따님을 보고 마음이 놓이셨나 봐요. 할머니는 아쉬워하며 따님 손을 잡고 카페를 나서셨어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 따님은 대장님께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또 했어요. 물론, 대장님의 추리력에 몹시 놀란 표정을 제가 눈치챘지요. ‘흠~’ 저 역시 아주 뿌듯했답니다. 동네 파출소장으로 오래 있다 보면 이렇게 집을 나와 배회하는 치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는 일이 자주 생긴 대요. 아무리 오래전에 은퇴하셨어도, 대장님의 그 경험과 수사 실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 일 뒤로도 순영 할머니의 기억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이 부쩍 잦아졌대요. 방금 들은 이야기도 곧 잊으시고, 물건 둔 곳도 잘 모르시고… 따님은 할머니가 또 집을 나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 큰 모양이에요. 치매 어르신들은 이렇게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 다시 나아지곤 한대요.


서툰 목수의 비밀

하루는 센터 뒷마당에서 제민이와 공을 차며 놀고 있던 저에게 대장님께서 물으셨어요.


(태동) “정호야, 혹시 스포츠센터 뒤에 있던 커다란 판자 못 봤니?”

(정호) “아뇨, 못 봤는데요.”

(태동) “사무실 공사를 하고 남은 건데, 어젯밤에 없어진 것 같구나. 거긴 CCTV도 없는 곳이라…”


이튿날, 경비실 앞을 지나가는 저에게 대장님은 또 말씀하셨죠.


(태동) “정호야, 어제는 센터 공구 창고에 있던 톱이 안 보이는구나. 누가 가져간 거 같은데…”

(정호)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난 사건이 발생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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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다음 날, 수영장으로 가는 저에게 대장님께서 말씀하셨죠.


(태동) “정호야, 어제는 각목이 두 개나 없어졌구나. 아마 내일은 못과 망치가 없어질 거야. 그다음에는 지난해 월동 작업을 하다 남은 보온 덮개가 사라질지도 모르겠구나…”

(정호) “그럼, 대장님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태동) “아니, 아직은 몰라…. 정호야, 혹시 아파트 근처에 버려진 개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 있니?”

(정호) “네… 아파트 조금 떨어진 공터에 주인 없는 개들이 몇 마리 돌아다녀요. 그곳은 등산로가 이어지는 곳이에요.”

(태동) “그러면 퇴근하고 나랑 그곳에 같이 가볼까?”


대장님은 넓은 판자, 톱 그리고 각목이 차례로 사라진 것을 보고 이 도난 사건은 서툰 목수의 짓이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이 서툰 목수가 판자, 톱, 각목을 가져다 만들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장님은 강아지들이 살 집을 떠올리셨어요. 서툰 목수는 보는 사람이 없는 센터 뒤편 공구 창고를 노렸고, 한 번에 모두 가져갈 수 없으니까 하나씩 가져가려 했던 거라고 추리하셨죠.


(태동) “작은 판자는 놔두고, 옮기기 힘든 큰 판자를 가져간 것은 개 한 마리가 살 집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는 증거야. 그러니까 새끼 강아지가 더 있는 가족이라는 뜻이지. “

(정호) ‘아~ 이 놀라운 추리력! 대장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죠.’


공터의 강아지 가족

우리는 등산로가 이어지는 공터로 가 보았어요. 그때 개 두 마리가 나타나 사납게 짖으며 우리를 경계했어요.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를 휘둘러도 짖지 않던 개들인데 말이에요. 그때 공터 입구에서 상훈이와 호영이가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났어요.


(태동) “강아지 집 바닥에 깔 거 가져왔니?”

(상훈) “어? … 죄…죄송해요.” 흠칫 놀란 상훈이가 오던 길로 다시 내빼려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대장님이 상훈이와 호영이를 앞세우고 간 곳은 공터 뒤에 있는 허물어진 담이었어요. 대장님의 추리대로 그곳에는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 다섯 마리와 어미 개 그리고 다른 개 두 마리가 더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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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을 분양합니다

상훈이는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는데 아빠가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해요. 호영이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궁리 끝에 생각한 것이 이곳 공터에 강아지 가족의 집을 만들어 키우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 와서 강아지 가족과 함께 놀려고 했죠.


대장님은 짓다 만 강아지 집과 남은 판자, 각목과 연장을 가지고 센터로 왔어요. 그리고 서툰 목수가 짓던 집을 다시 지으셨어요.


유기견 분양

예쁜 강아지들이랍니다.

잘 키워주실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희망하시는 분들은 관리실로 연락 바랍니다.


추리력 좋은 우리 대장님께서는 손재주도 좋으세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개집이 강아지 가족의 아늑한 집으로 변신했습니다. 이튿날 대장님은 센터 게시판에 ‘유기견 분양’ 공고를 올리셨어요. 아쉽지만 상훈이와 호영이도 강아지들이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랐지요.


지금도 현역이십니다

대장님은 경찰을 은퇴하고 조그만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경험이 없어서 오래 하지는 못하고 폐업하셨대요. 그리고 다시 하게 된 것이 스포츠센터 관리소장님이죠.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이곳 센터에는 분실, 도난 사건이 간혹 일어나는데, 놀라운 추리력과 수사력의 대장님은 명탐정처럼 척척 해결하십니다. 우리 대장님이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리기 딱 좋은 일이 아니겠어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김순영 할머니의 기억력도 대장님이 다시 찾아줬으면 참 좋겠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제 상상이겠죠? 다른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인데,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과 인지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참, 그러고 보니 시골에 계신 저희 외할아버지도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집과 노인정만 오가다가 지금은 ‘집 → 햄버거 가게 → 노인정’ 이렇게 하루가 더 바빠지신 거죠. 바빠지신 만큼 더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신다는 뜻이겠죠. 저는 요, 대장님도 저희 외할아버지도 우리가 함께했던 이야기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마음 깊이깊이 바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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