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해 주실 방문요양보호사 선생님을 구합니다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어르신동화 5
어느 어르신과도 바로 친해지는, 친절하고 쾌활한 김나윤 요양 보호사는 복지센터에 게시된 공고를 보고 이 어르신의 방문요양을 맡기로 했습니다.
나윤 씨는 80년생으로 할머니와는 서른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어르신을 모시는 일에는 자신도 있고,
남다른 보람도 느끼고 있었거든요.
방문요양 첫날, 나윤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박예분 할머니 댁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아이고, 젊은 아가씨 같은 선생님이 오셨네… .” 박 할머니는 나윤 씨를 무척 반겼습니다.
할머니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팔과 다리가 좀 불편하십니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나윤 씨가 특별히 도와드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댁에는 유난히 액자가 많았습니다. 벽에도 걸려있고 탁자 위에도 크고 작은 액자가 가득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슬그머니 일어나 탁자 위 액자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계셨죠.
“이 사진 봐! 우리 영감이야. 우리 결혼한 지 1년 됐을 때인데, 우리 신랑 보고 다들 영화배우 뺨친다고 했어.”
“정말 미남이시네요.” 나윤 씨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우리 남편이 8남매의 맏이야. 시집오니까 시동생, 시누이가 줄줄인데 막내 시동생이 국민학교 4학년이었어. 나는 하루 종일 밥상 차리느라 부엌을 한 걸음도
벗어나질 못했지.”
“한 번은 내가 감기에 지독하게 걸렸는데, 우리 남편이 시어머니 몰래 새벽에 죽을 끓여주지 뭐야.
그때 밤늦게 신랑이 끓여 준 죽이 얼마나 맛있던지… .”
“할아버지께서 참 자상하셨네요.”
“그럼! 우리 큰아들도 참 자상해.”
할머니는 이번에는 탁자에서 큰 아들 초등학교 때 사진 액자를 가져 오셨습니다.
“우리 큰아들 국민학교 때 사진이야. 공부도 잘해, 인사도 잘해, 운동도 잘해, 못 하는 게 없는 아이야.”
“우리 며느리가 첫 애를 낳고 몸이 아파서 회사에 못 갈 지경인데 우리 아들이 끓여준 죽을 한 사발 먹고
벌떡 일어나 출근을 했다지 뭐야.”
“죽 끓여주는 집안 내력이 있었나 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큰아들이 뒤죽박죽 섞인 이야기는 1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나윤 씨는 할머니의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신이 더 나신 할머니는 이번엔 둘째 아들 액자와 다른 액자를 더 가져왔습니다.
나윤 씨는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는 “죽 말씀하시니까, 죽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제가 아주 죽여주는
김치 죽을 맛있게…”
“ 아냐, 아냐! 우리 큰 며느리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걔가 퇴근하고 와서 다 해놓고 가. 김 선생님! 우리 집에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필요 없어~.“
할머니는 단번에 나윤 씨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둘째 아들과 딸, 손주들 이야기는 2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나윤 씨는 귀청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벗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 편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뱅뱅 도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튿날, 할머니는 환한 웃음으로 방문요양 온 나윤 씨를 반갑게 맞아 주셨지요.
이미 할머니의 손에는 액자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청초한 모습의 할머니 사진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내가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를 봤는데 남자 직원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았어.”
“우리 회사에 김 계장이라고 있었어, 이름이 김철민인데 그 사람이 나를 많이 따라다녔지 뭐야.”
갑자기 할머니께서 목소리를 낮추더니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어느 날 내 친구가 우리 회사에 왔는데, 그때 키가 훤칠한 김 계장을 보고 완전히 반해 버렸어!”
“그날부터 걔가 점심때만 되면 매일 회사 근처로 찾아오는 거야. 그러고는 내 눈치를 보면서 계속 묻는 거야.
김 계장 어디 사냐? 가족은 어떻게 되느냐? 또 뭘 좋아하느냐? … .“
“그러다 어떻게 된 줄 알아?”
“배가 불러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지 뭐야. 아휴~ 망측스러워. 걔 이름이 경자야.”
“가만, 경자 사진이 어딨더라?”
거동이 좀 불편하신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재빠르게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액자를 한 보따리 들고 나오셨어요. 그 액자에는 젊은 경자는 물론 미애, 옥경, 숙자, 옥분, 애자가
화사한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나윤 씨는 남은 2시간 반 내내 그 친구들의 이름을 100번도 넘게 들어야 했습니다. 방문 요양을 마치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는데 나윤 씨는 하늘이 ‘노오~~래 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말리셔도 꼭 대청소를 해드리고 탁자 위 액자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 놓아야지.’
나윤 씨는 이렇게 마음을 먹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번호 키를 누르고 아파트로 들어가자, 안방 TV에서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들렸습니다.
‘옳거니! 오늘은 할머니께서 잘 모르시는 아이돌, K 드라마 얘기를 내가 먼저 해서 할머니한테 말려들지
말아야겠다. 아주 좋은 꾀야.’
나윤 씨는 속으로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이대로는 고막이 너덜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려 못 살 것 같았거든요.
안방 문을 여는 순간, 졸고 계시던 할머니는 슬며시 눈을 뜨셨습니다. 물론 손에는 액자가 들려 있었지요. 나윤 씨는 할머니 손에서 액자를
살짝 빼내고 할머니를 TV 앞에 다시
앉혀드렸습니다.
“어르신은 아이돌도 좋아하시고…
신세대 할머니시라니까요. 저 댄스 그룹 아세요?”
박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꺼냈습니다.“아이고, 참 예쁘기도 해라. 노래도 참 잘하네. 우리 젊었을 때는 한명숙, 윤복희, 박재란이 저랬는데!"
“아니, 저 아이돌 댄스 그룹은 뉴진스예요. 지금 노래는 슈퍼네츄럴이라는… ”
갑자기 나윤 씨가 말할 틈도 없이 할머니의 노래가 이어졌어요.
“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할머니는 가사를 기억해 내려는 듯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한 곡을 더 부르셨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남자 목소리 같은… 그 누구더라… 아 문주란! 문주란도 있었는데,
지금은 뭐 하나? 테레비에도 안 나오고”
럭키 모닝, 동백아가씨, 호반의 벤치, 밤안개, 산 너머 남촌에는…
할머니께서는 1980년에 태어난 나윤 씨는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셨습니다. 나윤 씨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죠.
노인 복지관 노래교실에서 갈고닦은 실력이었지만, 예전만큼 실력이 안 나와 할머니는 좀 답답했나 봅니다.
오늘은 방문요양 3시간 동안 이야기가 아니라 노래가 이어 졌습니다.
할머니는 가물가물한 가사는 몇 번이고 다시 불러보며 가사를
기억해 내려 애를 쓰셨어요.
나윤 씨는 할머니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갔습니다.매일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일이 신체 장애와 인지 장애로 일상에서 불편을 겪는 어르신들을 돕는 것이죠. 나윤 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할 때 마음을 다시 다짐하며 할머니 아파트 현관 번호 키를 눌렀습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오늘은 할머니 손에는 설악산을 배경을 한 가족사진이 들려 있었죠. 단아한 차림을 한 30대의 할머니와 남편 그리고 2남 1녀 자녀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할머니 여행 이야기로 3시간을 보내겠구나.’ 나윤 씨는 생각했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할머니의 여행 이야기는 경주,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거쳐 인천 월미도, 자연농원, 남해, 울릉도,
난생처음 다녀온 일본 가족 여행과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7박 8일 유럽 여행을 마치고야 겨우 끝이 났습니다.
방문요양을 마치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할머니께서 편지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참… 김 선생님, 우리 큰 며느리가 잊지 말고, 이 편지를 전해주랬어.’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한 나윤 씨는 아파트 공원 벤치에 앉아
그 편지를 꺼냈습니다.
고마우신 김나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박예분 할머님의 큰며느리입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김나윤 선생님이 편안하게 돌봐줘서
항상 고맙다고 하세요. 저도, 제 남편도 감사드립니다.
시어머님이 쉴 새 없이 말씀하시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방문요양을 그만둔 요양보호사가 두 분이나 계세요. 그런데 저희 시어머니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작년에 병원에서 초기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기억이 매일 사라지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걱정하면서 누굴 만나면 쉬지 않고 당신의 기억을 꺼내시는 거예요.
그게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이유 입니다.
저희 어머니의 이야기가 점점 맥락도 없어지고 이 얘기 저 얘기가 뒤섞여서, 듣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주 힘들다는 것도 잘 압니다.
제가 퇴근을 하고 어머니 댁으로 가면 또 2시간을 훌쩍 넘겨 김 선생님께 한 얘기를 다시 하세요. 저도 많이 힘들지만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것
말고는 달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뵙고 이 말씀을 드리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이렇게 편지로 대신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박예분 어르신 큰 며느리
편지를 읽는 동안 나윤 씨의 마음 저 끝에서부터 찡해져 오는 것 같았습니다. 박 할머니는 기억이
모두 사라질까 봐 당신의 모든 기억을 꺼내 확인하고 또 확인하려 하셨던 겁니다.
할머니의 끝날 기미 없는 이야기가 언제 끝나려나 생각하며 허투루 듣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나윤 씨는 내일부터는 할머니 이야기를 열심히 듣기로 아니 희미해져 가는 할머니의 기억을 단단히 붙잡아 드리기로 다짐 또 다짐했죠.
그냥 말벗이 아니라 할머니의 기억력을 함께 되찾아
드리는 진짜 ‘말벗’이 되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