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 잘 다니다가 왜 굳이 외국계로 가?", "S사에 왔으면 정착해야지 또 다른 꿈을 꿔?"
지난 13년간 4번의 사직서를 내고 5번째 명함을 파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늘 간결했다.
내 커리어의 병목(Bottleneck)을 뚫기 위해서.
1. 영업 사원, 물류의 답답함을 느끼다 (L사)
첫 커리어는 해외 영업이었다. 매달 수천톤의 제품을 팔며 깨달았다.
"파는 것보다 제때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영업(Sales)이라는 점을 찍고 나니, SCM이라는 다음 점이 보였다.
그래서 사내 SCM 부서가 신설될 때 손을 들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중후장대 산업 특유의 긴 호흡이 점차 아쉽게 다가왔고, 더 넓은 글로벌 무대에서 내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어 외국계 기업으로 향했다.
2. 글로벌 톱니바퀴, 권한의 중심을 갈망하다 (I사)
L사 이후 선택한 곳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외국계 I사였다. Logistics Manager로서 독일, 미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흩어진 생산 기지와 소통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거대한 스케일을 체득했다. 하지만 곧 '한국 지사'라는 태생적 한계에 부딪혔다. 고객의 긴급한 요구를 해결하려 해도 본사의 의사결정과 피드백을 받기까지 하루 이틀이 꼬박 걸렸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글로벌 협업을 배우긴 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공급망을 쥐고 흔드는 '통제권'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톱니바퀴의 일부가 아닌, 시스템을 직접 통제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낼 수 있는 엔진이 필요했다.
3. 속도의 전쟁터, 빅테크로의 다이브 (C&K사)
지사에서의 답답함을 뒤로하고 커머스라는 야생에 던져졌다. 이곳은 전쟁터였다.
새벽 배송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기획하고, 각종 설비를 도입하고 레이아웃을 변경하며 물류 센터의 생산성을 40%씩 끌어올렸다.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 '맨땅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치열한 속도전 속에서 '빠른 실행과 확장'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거대하고 정교한 '글로벌 표준 시스템'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야생을 경험했으니, 이제는 전 세계 단위의 복잡한 공급망을 통제하고 최적화하는 진짜 '글로벌 거버넌스'를 내 손으로 다뤄보고 싶어졌다.
3. 다시, 세계 1등의 시스템으로 (S사)
현재 회사의 전 세계 재고와 프로세스 최적화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속도에 글로벌 기업의 규모를 더하니,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커리어 지도'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빅테크에서 경험한 '속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글로벌 스케일의 '디테일과 거버넌스'를 이곳에서 채워가고 있다. 빠른 실행 속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시스템적 통제권과 비용 최적화의 뼈대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중이다.
도망이 아닌 최적화의 과정
첫 이직 전에는 나 역시 막연한 불안감이 컸다. '안정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건 아닐까?', '새로운 곳에서 내 가치를 증명해 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5개의 회사를 거치며 확신했다.
이직은 도망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최적의 공급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