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버티는 기둥
누군가는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허리를 짚는다.
어떤 날은 이유도 모른 채 등이 뻐근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몸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나는 가장 먼저 척추를 떠올린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기둥이 무너지면, 몸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척추는 총 33개의 뼈(척추뼈, Vertebrae)가 정교하게 층을 이루며 세워진 구조다.
목뼈 7개, 등뼈 12개, 허리뼈 5개, 그리고 골반과 이어지는 천추와 미추까지.
모양도 역할도 모두 다르지만, 이 작은 조각들은 서로를 받치고 당기며 균형을 유지한다.
더 깊은 곳에서는 척수(Spinal Cord)가 흐르며 온몸의 감각과 운동을 관찰한다.
33개의 뼈가 흔들리면 우리는 걸을 수도, 뛸 수도, 심지어는 손끝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인간의 척추가 특별한 이유는 직립 보행을 위해 진화한 S자 곡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똑바로 선다는 말은 ‘일직선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미세한 굴곡 속에서 균형을 찾아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의사들은 말한다.
세상에 완벽하게 곧은 척추는 없다고.
모두 조금씩 휘어 있고, 그 휘어 있음으로 중심을 유지한다고.
태어났을 때의 척추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척추는 단순한 C자 형태로,
누군가의 품에 안겨야만 유지되는 가장 유약한 곡선이다.
그러다 아이가 고개를 들고, 뒤집고, 기고, 일어서고,
세상을 향해 두 발로 서기 시작하는 순간,
척추는 비로소 중력을 견디는 S자 모양으로 다시 태어난다.
즉, S자 곡선은
우리가 스스로 세상 앞에 서기 위해 몸이 터득한 첫 번째 생존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삶에서 중심을 잡아내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울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
척추는 매 순간 그 일을 하며 우리가 쓰러지지 않게 한다.
마음이 매일 조금씩 균형을 되찾는 것처럼.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지치면 어깨가 앞으로 쏟아지고,
과거의 후회는 등을 뒤로 젖히게 만들며,
예기치 못한 시련은 옆구리를 세게 가격해 몸을 비틀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척추는 말없이 충격을 흡수하고, 보정한다.
조금 기울면 안쪽 근육이 잡아당기고,
너무 지치면 주변 인대가 대신 버텨 준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세워 준다.
의학적으로도 척추는 일상에서 가장 큰 하중과 반복적 스트레스를 견디는 부위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유연하고 회복력이 뛰어난 구조이기도 하다.
수천 번 몸을 굽히고 펴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단단한 하나가 아니라, 연결된 다수이기 때문이다.
견고함이 아니라 ‘연결된 유연함’ 이 우리를 지탱한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와 비슷하다.
허리가 아파왔던 날들이 있었다면,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충격을 묵묵히 흡수하며 버텨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의 결심이 나를 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넘어지는 날과 다시 일어서는 날들이 반복되며,
마침내 나만의 곡선이 완성되었다.
지금 나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다시 나를 바로 세워 왔을까.
척추는 내 등 뒤에서 조용히 묻는다.
아주 조용하지만, 결코 흐려지지 않는 목소리로.
“지금 너를 버티게 하는 기둥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