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에 없던 일주일 사용법
맥주 두 잔 정도를 가볍게 마신 모임이었다. 별일 없는 밤이었고, 늦지 않게 집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수가 없었다.
상황은 빠르게 응급실로 이어졌고, 나는 CT라는 대형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조영제를 투여한 채, 내 몸이 통째로 돌아가는 동안, 기계는 조용히 내 몸속을 훑고 있었다.
결과는 단순했다. 몸속 기관 어딘가에 커다란 혹. 그리고 덧붙여진 한 문장.
수술만이 답입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오른팔에 수술을 위한 굵은 바늘이 꽂혔다. 준비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간호사님의 말에 따라, 나는 침대 위에 누운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6층 입원실에서 4층 수술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수술의 총책임을 맡은 분이었을까.
수간호사님은 몇 가지 확인 질문을 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 예쁘네요. / 어떤 상황이었죠....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전신마취하면 아무것도 모르실 거예요. 일어나면 수술은 끝나 있어요.”
수술실 앞 게시판에 두 개의 리스트 아래로 ‘수술 대기 중’이라는 글자와 함께 내 이름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떨렸다.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떨림이었다.
침대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 수술의사 선생님만큼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간호사님들 사이의 짧은 말들이 오가며, GS, OS 같은 의학 부서의 약어들이 공기 중을 떠다녔다.
왼팔에는 혈압계가 감겼고 기압이 점점 조여 왔다. 아플 만큼 꽉.
다리가 고정되는 느낌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한 남자 의사 선생님이 내 입술 위에 호흡 마스크를 올려두며 말한다. “그냥 올려만 두는 겁니다.” 그리고 곧이어, “자, 이제 약 들어갑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입원실로 내려와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추웠던 적은 없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세상에서 가장 추운 도시’— 러시아 시베리아의 야쿠츠크(Yakutsk)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추위는 환경이 만든 것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내 몸 자체가 추운 거였다.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너무 추웠다. 추위는 거대한 떨림이 되어 찾아왔다. 손과 발을 붙잡고, 이빨 사이에 무언가를 물어야 할 만큼. 다행히 마취에서 깨어날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했다.
나는 한 시간쯤 지난 것처럼 느꼈지만 실제로는 20분 남짓이었을까..... 그 시간이 지나자 몸의 떨림은 서서히 사라졌다.
무통주사도 맞았고, 커다란 진통제 주사도 맞았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수술 후 열두 시간이 지난, 새벽 두 시쯤 눈을 떴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액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그제야 실감 났다.
수액과 수많은 작은 병들이 매달린 링거가 쉼 없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항생제와 진통제 같은 이름의 약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었다.
복강경에 부분적인 개복이 더해진 수술 부위는 보통 수술 다음 날 통증이 가장 또렷해진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이렇게 많은 약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스쳤다.
'혹시 나는 죽어도 썩지 않는 건 아닐까?' 통증 속에서 떠오른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잠깐 웃음이 났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수술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걷는 것이 좋다고. 나도 말을 잘 듣는 모범생 환자가 되고 싶었다. 회복이 빠른 사람, 교과서 같은 환자. 하지만 오늘 하루는 걷기는커녕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간호사님이 말했다. “나오셔서 체중 한 번만 재실게요.”
체중계는 침대에서 서른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침대 끝과 체중계 사이에 시간이 하나 더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