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일 금요일의 기록
손꼽아 기다리던 팟캐스트 "문학이야기"에서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것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를 최선을 다해서 다루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고 했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세상이 이렇다고 한탄만 하지 않고 개개인이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대로 더 열심히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살 것 같은 이 사회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에는 분명히 '나'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내가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하여 보호하거나 변화를 시도할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세상은 천지개벽하듯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아주 작은 먼지 같은 움직임들이 모여서 큰 그림을 바꾸게 되는 것 같다. 매일같이 조금씩 습관처럼 적어 내려가던 나의 페이지들이 벌써 세 권이 넘게 쌓여 가듯이, 매일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를 깎아내리듯이. 내가 그냥 묵인하고 있는 비도덕적인 일들이나 비정상적인 일들, 몰 인간적인 일들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는 것. 나뿐만 아니라, 아니 나 자신도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종이에 먹물이 퍼져 나가듯 점점 더 바깥쪽으로 그 소중함을 실천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일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 내 수중에 있는 돈 한 푼,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을 최대한 신중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몸을 움직이기 싫어서 시간을 그냥 죽여 버렸다. TV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진심인지 아닐지도 모를 표정들과 말들로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입과 머리를 채우는 가십들과 농담들은 나 자신과의 소통을 막아버린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입에 달고 몸에 편한 일만 해.
미루어도 괜찮아.
그냥 가볍게 웃어넘기고 말아버리면 되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일들을 모두 골치 아픈 일들이야.
그곳까지 들여다보면 너는 괴로워지고 말 거야.
네가 이루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자기들을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칠 거야.
그러면 넌 죄책감과 후회에 휩싸여서 아주 지루하고 무기력하고 어둡고 어깨가 짓눌린 하루를 보내게 될 거야.
그러니 가벼운 농담들과 웃음들과 다른 사람들의 표면적인 슬픔과 사건과 음모로 네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해.
끊임없이.
이루지 못한 네 자신이 떠오르지 않도록 말이야.'
이런 목소리.
달콤하고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정리를 하고 할 일들을 하고, 재빨리 노트와 펜을 들었다. 나에게는 펜과 종이와 나와 마주하여 나의 머리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한 올씩 거두어내는 작업이 구원으로 다가온다. 나를 마주하면서도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는 길이다.
어제 잠깐 펼쳐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가졌던 실타래처럼 미궁 속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만나도 미노타우르스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다시 무사히 살아서 나올 수 있는 길이다. 미노타우르스는 미궁 속을 거닐고 있는 나를 언제라도 잡아먹을 수 있다. 내가 미궁의 출구에 있는, 나를 향하는 실타래를 놓아 버리면 세상-미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노타우르스만큼 파괴적이고 악한 뱀 같은 생각들-은 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이다. 나와의 연결을 한 순간도 인지 말자. 그것이 내가 최근 몇 년간 고민해 왔던 '카르페 디엠'에 대해 내가 도달한 결론이다. 내가 위대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진정한 내면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원초적이고 원형의 나라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후회와 죄책감을 가지지 않은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