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창조성

부러우면 하면 되는 거예요.

by 김담요

프린지 홍보 메일 속에서 '예술가 엄마의 육아일기'라는 웹진이 있다는 소식을 보고 클릭해보았다.


주로 연극 쪽에 종사하던 엄마들의 육아일기였는데, 엄마로서의 삶을 연극이나 인형극으로 실현한 모습도 보였고 아이의 성장에 대한 예술적인 고찰을 한 글도 있었다.


역시 예술가 엄마들은 사고의 차원이 다르구나 하면서 이런 공동체가 있으면 진정으로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그런 실천을 할 용기가 없지.' 하면서 물러섰다.


그저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을, 일상을 이어가고 명을 이어가고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되는 것을 현재의 상태에 충분히 행복해하지 못하고 예술가들을 부러워 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싶다는 욕구를 이루지 못하여 안달인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드러누워서 굴러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신의 유전자가 들어있단 말이지.'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있다가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이것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한 언제나 소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아 내 목을 마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신이 나에게 창조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신을 닮고 싶다는 신도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주제 넘은 생각이고 진심 없는 형식적인 소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이나 사람의 육신이 너무 좁아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영혼의 노래에 감탄하게 되고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고갈되지 않는 것은 이미 나의 유전자에 신으로부터 물려 받은 창조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해보라고 채찍질하는 내 자신 속의 자유로운 아이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고민하고 갈망하는 것은 내가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감사의 마음이 적거나 내가 결핍된 상태라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 속에 창조의 유전자가 숨길 수 없게 숨어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도 하루 종일 새로운 것들을 생산해내는 아이들처럼 나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글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기로 했다. 아이들 같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행하는 일을 자연스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해내는 아이 같은 사람이 사는 일상은 아마도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낙원과도 비슷하리라.



http://youtu.be/h2Nh_tB_VSY


나탈리 머천트는 아이를 가지고 나서 자신의 창조성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고 아이에게 읽어주던 시를 가지고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의 음반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녀의 음악 작업을 보면서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이라도 기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한 것이 나의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지름길을 닦아놓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실천해본다.


종잇장 한 장보다 못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