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drienne Rich
여자, 여인, 여성을 칭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W가 말할때 자주 쓰곤 했던 "여자"는
다분히 거리가 먼 대상이고
성적인 뉘앙스를 풍겼으며
약간은 비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여인"은 존중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단어는 중년 여성들의 모임에서
억지로 서로를 존경하는 척 하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높임말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어떤 한 여성을 칭하는 말로
어떤 단어가 좋을까.
친근하기도 하고
대상화되지 않았고
선입견 없는 말을 찾아내고 싶다.
내가 어떤 특정인을 "여자"라고 부를 때
낯선 거리가 느껴진다.
가령, K가 내 꿈에 나왔을 때
술자리에서 그가 토를 하고
그의 옆에 앉아 있다가
나에게 와서 물티슈를 부탁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비교를 하자면,
"그 남자가 말이야,"라고 이야기를 꺼낼 때
"남자"에게 느껴지는 느낌과
"여자"라는 말에 대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남자"라는 단어는 중립적이다.
말할 때 멈칫하게 되거나
들을 때 귀가 예민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라고 말을 하면
그 자체로 가벼운 욕설같은 분위기가 난다.
어쩌면 내가 경험 속에서
이 단어가 들어 있던 콘텍스트가
비하적이고 비난적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느낌들이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단어에도 이렇게 복잡한
인식의 그물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것을 하나씩, 상처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떼어 내어야,
아니, 떼어내기 이전에
현미경으로 그것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따라가 보아야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작업,
고통스럽고 지루하며 머리가 깨질 정도로
복잡한 작업일 것 같지만
꼭 해야하는 일 같기도 하다.
원래의 모습,
혼자서도 온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의 모습을 찾아야만
현재의 고통 속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에이드리안 리치의 "난파선으로 다이빙"을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신화를 들고
우리는 난파선을 향해 뛰어들어야 한다.
도정일은 신화를 일컬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이해가 담긴 이야기,
당위성을 만들어낸 역사라고 했다.
History,
그 안에는 우리가 없다.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신화를 부여잡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존재의 당위성,
그 뿌리에서부터 우리는 흔들렸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상황의 희생양이 되고
발 붙일 곳 없이 떠돌며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아
정처없이 방황한다.
여성의 신화부터,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이야기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2017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