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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 Jun 27. 2016

모든 존재는 사라지고

외할머니 구술생애사: 프롤로그

외할머니 인터뷰 녹취록을 보다 보니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그리워진다. 외할머니 인터뷰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시작되었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옛 이야기를 읊조리듯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이야기 속에는 할머니라는 조각배가 이리저리 떠밀리며 부딪혀온 상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언젠가 녹음기를 앞에 두고 할머니와 마주앉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늘 미루는 사람이었고, 그 이야기를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다.



얼마 전 선배 아버지의 빈소에 다녀왔다. 나의 옛 친구가 죽은 것은 더 최근의 일이다. 내 나이에 흔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점점 부고를 듣는 빈도가 늘어난다. 부고는 갑자기 찾아온다. 결혼이나 돌잔치는 미리 정해 두고 알릴 수 있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장례식장이란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게 되는 곳임을, ‘어른’이 되어 가며 알게 된다.



재작년인 2014년 나는 두 번의 이별을 겪었다. 그 해 가을에 외할아버지가, 겨울에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아흔이 넘으신 외할아버지는 봄에 방광암 판정을 받으셨다. 연로하신 몸에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어 가을을 넘기지 못하셨다. 반 년은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할아버지가 급격히 쇠약해지셨던 마지막 한 달 가량이 사실상 우리에게는 준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작별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음에도 작별은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절만 넘겨 찾아왔던 또 한 번의 헤어짐은 갑작스러웠다. 친할머니는 어떠한 마지막 인사의 시간도 주시지 않은 채, 어느 날 혼자 계시던 집 안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가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프다. 그 해 두 번의 이별은 죽음은 늦출 수는 없지만 예고 없이 올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앞으로 겪어야 할 무수한 이별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 나의 부모도 조부모처럼 언젠가는 세상을 뜰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모든 존재는 사라진다. 삶에서 맺었던 인연들은 언젠가 모두 놓아야만 한다. 나는 다시 ‘그녀’들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의 뿌리인 여인들. 내가 그때 왜 할머니의 이야기를 녹음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때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본능 같은 것이 계속 그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내 곁에 있을 때 그녀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녀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듣고 그녀를 추억할 수 있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발화자의 감정의 물꼬를 트이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은 내 세계 안에 그녀에 대한 지평을 새로 열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의 때가 오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니 지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소중한 그녀에게 물음을 건네는 것. 기록은 그 자체로 의미있지만, 지금 그녀 앞에 앉아 물음을 던지는 그 행위가 기록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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