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eon Jan 26. 2020

필름카메라 사용하기

지난해 내내 조금씩 찍었던 필름사진을 현상했다. 정말 가끔 찍었었는데, 어쩐지 요새 필름카메라에 자꾸만 손이 갔다. 작년 말 몸과 마음이 한바탕 아프고 나서, 뭐 아마도 내적 평안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과 관련 있으려나. 아무튼 여름쯤 사 두었던 필름 여러 통을 며칠 사이 야금야금 모조리 찍어댔다. 그러면서 서랍 곳곳에 고이 들어 있던 필름들을 다 꺼내 모아 보니 여덟 개가 되었다. 어떤 사진들이 들어 있을까. 휴일인 월요일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모아 놓은 필름들을 보며 좀 들뜨는 마음에 계속 사진을 찍었다. 달리랑 봄이, 승리와의 일상, 우리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찍고, 출근길에 보이는 것들을 찍었다. 찍은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없고 인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필름사진은 늘 무엇을 하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나와 오히려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고 혼자 의미를 부여해 본다. 메일이든 문자든 답장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나의 몇 마디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그냥 좀 느린 나의 속도에는 카메라가 느린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비로소 월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빈둥대다, 승리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필름을 모두 작은 파우치에 넣어 승리와 함께 충무로의 K사진관으로 갔다. 이 사진관에서는 현상된 필름을 직접 스캔할 수 있다. 이전엔 여기에 그냥 필름을 맡기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셀프 스캔을 해 보기로 했다. 사실 현상도 아니고 스캔 직접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리 싶었는데, 뭐 하나라도 내가 직접 해 볼 수 있는 건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스캔기와 모니터 앞에 앉으니, 현상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1년 동안 간간이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맞아 이런 사진을 찍었었지, 여기에서도 찍었었구나, 이건 꽤 잘 찍었는데, 이건 좀 망했네, 실내에서 이렇게 찍으면 어두워지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사실 사진의 색을 보정하고 밝기를 조정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한장 한장 들여다보는 시간은 내가 찍은 내 사진에 대해 더 잘 알도록 해 주었다.


내가 찍은 필름을 직접 기계에 넣고 파일로 저장하고 다시 필름을 차곡차곡 잘라 정리한다는 행위는 사진에 대한 내 몸의 감각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내가 스캔한 사진들에는 그전의 사진들과는 다른 내 몸의 노동이 배어 있다. 사진찍기(사진을 만들어내기)에 대한, 그리고 일상에 대한 나의 달라진 태도가 들어 있다.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는 어떤 것을 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하기’는 나의 무엇을 달라지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달라진 어떤 것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도록 한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 같은 것 말이다. 일상에 임하는 나의 태도의 변화가 카메라를 사용하게 했고, 카메라 사용은 다시 나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직접 현상을 해볼 수 있는 곳도 찾아 가보려 한다. 이러한 마음은 내가 찍은 사진에, 나의 일상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내가 사용하는 필름카메라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그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나중에 그의 초대로 독일의 작은 도시에 놀러갔을 때, 사진찍기에 관심이 있다는 나에게 그는 자신이 쓰던 미놀타 필름카메라를 선뜻 선물해 주었다. 이제 잘 안 쓴다며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던 그를 지금도 가끔 한국에서 만난다. 그러니까 내 카메라가 내게 온 것도 순전히 우연이다. 그와 내가 같은 시기에 같은 경로로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것, 그의 초대에 응하여 독일에 놀러갔던 것, 그와 나와의 인연의 아주 작은 확률 같은 것을 내 카메라는 간직하고 있다. 카메라를 사용할 때마다 사실상 많이든 조금이든 그를 떠올리게 된다. 카메라는 어떻게 사신 거예요, 하는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할 때면 아주 많이, 필름을 갈 때나 사진을 찍을 때는 아주 조금,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사용 초기에 필름을 제대로 끼워 넣지 못해서 필름 한 통을 통째로 날렸을 때에도 조금.


그런 카메라와의 인연을 요즘 좀더 끈끈히 만들어 가고 있다. 곧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필름에 박힌 상을 다시 건져내는 과정이 필요한 필름카메라로 무엇을 찍을까를 생각하면서, 내가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해 작고한 영화감독 요나스 메카스의 사진과 영상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반 년간 머물렀던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내게 카메라를 선물한 이를 만난 것도 리투아니아 시절이었다.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들이 마음에 계속 머물러서 두 번이나 전시를 보았던 까닭은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한 따듯한 시선이 계속 신경쓰여서였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매일의 아주 작은 순간들을 카메라로 찍다 보면 그 속에 나의 지금도, 영원하지 않을 존재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도, 그들과 나와의 가늠 못할 인연도,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준 사람의 마음도 거기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2020.1.7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의 출발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